서울 서초구 양재도서관에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봤다는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찍어 올린 사진. 사진=디시인사이드 캡처
서울 서초구 양재도서관에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봤다는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찍어 올린 사진. 사진=디시인사이드 캡처

한동훈의 도서관 책 읽기가 주목받는 상황

최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서울의 양재도서관에서 봤다는 목격담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화젯거리가 됐다. 한 전 위원장은 4·10 총선 참패에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한 뒤 공개적 정치활동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간 상태였다.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 뒤 윤석열 대통령이 회동을 제안했지만 “지금은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기 어렵다”며 거절 의사를 밝혔던 한 전 위원장이었다.

칩거 기간이 그리 긴 것도 아니었는데 한 전 위원장 목격담에 대한 관심은 제법 뜨거웠다. 네티즌 A씨는 “며칠 전 봤는데 오늘 또 와 계신다”면서 “2층 열람실에 계셨다. 사람들이 예의 있게 많이 방해 안 하고 사인을 받거나 사진 찍는 사람이 좀 있었다”고 글을 올렸다. A씨가 함께 공개한 사진을 보면 한 전 위원장은 골전도 이어폰을 착용하고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SF 소설을 읽고 있었다. 한 전 위원장은 “좋은 책 읽으시네요”라며 A씨의 책에 사인도 해줬다고 한다. 한 전 위원장은 책 내지에 ‘주말에 도서관 좋죠. 늘 행복하세요. 2024. 5. 11. 한동훈 올림’이라고 적었다. 이 글과 인증 사진은 온라인 곳곳에 퍼졌고 언론에 기사로까지 보도될 정도였다.

대부분은 한 전 위원장 지지자들이 반가워하는 내용들이었지만, 냉담한 비판 기사도 등장했다. MBC 사이트에 5월 13일 정승혜 기자의 이름으로 올라온 ‘한동훈은 왜 집에서 책을 안 읽을까?’라는 기사에서는 도서관에 나타난 한 정 위원장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실렸다. “소설책이 보고 싶었으면 집에서 인터넷 서점에 주문해서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공공 도서관에 온 건 사진을 찍히기 위해 나타난 것이란 얘기이고, 나름 여러 가지 계산을 깔고 한 행동일 것입니다. 본인이 사퇴해서 치르는 전당대회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등판하려니 명분이 좀 부족하고, 그래서 이미지 정치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전 위원장은 물러났고 정치를 중단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여전히 큼을 알 수 있는 광경이다. 그는 변함없이 뉴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주간한국>의 안병용 기자는 ‘황우여 비대위보다 책 읽는 한동훈에 더 주목…왜?’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현재 당대표격인 황우여 비대위원장보다 물러난 한 전 위원장이 더 관심을 받는다는 얘기였다.

더 나아가 한 전 위원장의 정치적 존재감이 다시 살아나는 광경이 있었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국가인증통합마크(KC) 미인증 제품에 대한 해외직구 금지 조치에 대해 “과도한 규제”라며 정부에 재고를 촉구했다. “해외직구는 이미 연간 6조 7000억 원을 넘을 정도로 국민이 애용하고 있고, 저도 가끔 해외직구를 한다”면서 “개인 해외직구시 KC인증 의무화 규제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는 것이 한 전 위원장의 입장이었다.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정부 정책 현안에 대해 그가 공개적으로 입장, 그것도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해외직구를 이용하는 인구가 워낙 많아진 환경에서 여론의 비판은 비등했고, 한 전 위원장뿐 아니라 나경원 당선인, 유승민 전 의원 등 여당의 유력 정치인들도 잇따라 비판 입장을 내놓았다. 그런데 언론이 가장 주목한 것은 물러난 한 전 위원장이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 대해 각을 세우는 입장을 다시 내놓은 부분이었다.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서 판매하는 어린이용 장신구 등에서 유해 물질이 잇따라 검출된 일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어린이 제품, 전기·생활용품, 생활 화학 제품 등 80개 품목에 KC 인증이 없으면 해외직구가 금지되는 것을 골자로 한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지난 16일 발표했다. 그러나 이처럼 여론의 비판과 한 전 위원장 등 여당 정치인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결국 정부는 그 같은 대책을 사과하고 철회한다.

대통령실 성태윤 정책실장은 브리핑을 갖고 “최근 해외직구와 관련한 정부의 대책발표로 국민들께 혼란과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KC 인증을 받아야 해외직구가 가능토록 하는 방침이 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저렴한 제품구매에 애쓰는 국민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 못 한 부분에 대해 송구하다”는 것이었다. 윤 대통령도 향후 이 같은 혼선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전 의견 수렴과 대언론 설명 강화 등 재발 방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 과정은 당정관계의 소통 부재라는 문제를 여전히 드러냈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달라진 당정관계를 보여준 광경이 됐다. 수많은 국민들의 소비 행태와 직결된 사안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여론 수렴은 물론이고 당정 간의 소통 한번 하지 않았다. 이는 여권의 총선 참패 후 수없이 지적된 고질적인 문제였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의 경우는 대통령실이 여론의 비판과 여당 정치인들의 비판 목소리를 경청해 곧바로 졸속 대책을 거둬들인 것이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당정관계가 재평가받는 한복판에 한 전 위원장이 서 있는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한동훈 비토론에 앞장서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비토론에 앞장서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책임론’ 압박, 역으로 당대표 출마 가능성 높여

이렇게 물러난 한 전 위원장은 변함없이 정치 안에 살아있으며 여전히 가장 주목받는 여권 정치인으로 존재하고 있다. 물론 그의 재등판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동훈 때리기’에 앞장서는 저격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8일 정영환 전 공관위원장이 22대 총선 결과와 관련해 “한 전 위원장이 안 왔으면 판이 안 바뀌었을 것이다. 엄청나게 기여했다”고 평가하자 홍 시장은 즉각 신랄한 반박에 나섰다. 홍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두 초짜가 짜고 총선 말아먹고, 정권을 위기에 처하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뻔뻔하게 하는 말들에 분노한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다시는 그 뻔뻔한 얼굴들이 정치판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면 한다. 조국이 주장하는 특검 받을 준비나 하시고”라며 한 전 위원장을 직격했다. 홍 시장은 이에 앞선 지난 16일에도 “당대표 하나 맡겠다는 중진 없이 또다시 총선을 말아먹은 애한테 기대겠다는 당이 미래가 있느냐”며 한동훈 비토론을 제기한 바 있다.

어째서 유독 홍 시장은 한 전 위원장에 대해 이같이 강력한 반대 의사를 거듭해서 밝히는 것일까. 이에 관해서는 이준석 전 개혁신당 대표의 설명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 전 대표는 홍 시장이 한 전 위원장을 연일 비판하는 것에 대해 “(보수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사람들이 누구냐. 윤석열-한동훈조다. 그런 부분이 불편했던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본인이 (자유한국당) 대표를 할 때 본인이 체감하기로는 본인 주변, 보수 전반의 인사를 거의 1000명 가까이 저인망식 수사를 했다는 것”이라며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당시 당대표를 할 시점이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 전 대표는 설명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홍 시장이 한 전 위원장에 대해 유난히 적대감을 드러내곤 하는 이유로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전반적 기류는 한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를 예상하는 쪽으로 변화해 가는 분위기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전 위원장이 차기 전당대회에 나설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됐다. 비대위원장을 사퇴하면서 본인 스스로 “정교해지기 위해 시간을 갖고 공부하고 성찰하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책임의 소재가 누구에게 있든 패장이 곧바로 당 대표가 되겠다고 성찰의 시간도 없이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을 조급하게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한 전 위원장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제는 꽃길이 아니라 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국민의힘의 당 대표를 맡는 것이 장차 대권이라는 큰 꿈에 도전하는데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알기 어렵다. 지난 대선 패배 직후에 국회의원 선거와 당 대표 경선에 잇따라 출마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적지 않았던 기억도 살아있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곧바로 전당대회에 나서지 않고 시간을 갖고 다음 기회를 엿보는 것이 정상적인 경로였을 것이다.

그런데 한동훈 전당대회 출마론에 불을 붙인 것이 총선백서 준비 과정에서 불거진 ‘한동훈 책임론’이라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국민의힘 총선백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조정훈 의원은 계속해서 총선 패배에 대한 ‘한동훈 책임론’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이어갔다. 지난 17일에는 ‘김현정의 뉴스쇼’ 라디오에 출연해 총선 패배를 놓고 “한 전 위원장과 대통령실의 책임이 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정인을 공격할 의도는 없다. 하지만 책임은 다르다”며 “(선거 패배) 책임은 국민의힘 구성원 모두에게 있고, 권한이 크면 클수록 책임도 더 크다”는 조 의원의 말은 특히 한 전 위원장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한 전 위원장이 본인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총선 다음날)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한 것 아닌가”, “대통령도 ‘책임을 실감한다’고 해서 기자회견도 하고 바꾸겠다고 하신 거 아닌가. 둘 다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주로 윤 대통령 책임론을 거론하던 일반적 평가와는 방향이 상당히 달랐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책임론과 출마론 공존...친윤 분위기도 달라져 

같은 날 열린 특위 회의에서는 총선 평가의 핵심인 공천 관련 논의가 진행됐다. 이 회의에서는 외부 공관위원을 중심으로 특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조 심판론’이나 ‘한동훈 원톱 체제’ 평가 문항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를 가진 편향적 결론이 도출될 것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동훈 비대위 체제에서 사무총장이자 당연직 공관위원을 맡았던 장동혁 의원은 페이스북에 “저는 당일 공수처장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어 참석이 어렵다는 의견을 공관위 단체대화방을 통해 전했다”며 “그럼에도 총선백서 특위는 이번 면담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특위가 한동훈 책임론에 문제를 제기한 인사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드러낸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의 ‘1호 영입인재’로 인천 서구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박상수 당협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조 의원을 향해 “총선백서에 유력한 당권 경쟁자인 한동훈 책임론을 싣고, 총선백서 작성을 명분으로 전국의 조직위원장들을 만나 한동훈 책임을 추궁한 뒤, (한동훈과) 한번 붙어보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 의원님, 당대표 출마가 하고 싶으시면 우선 총선백서 특위 위원장직을 사임하라”고 직격했다. 친한동훈계 인사들은 총선 백서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 의원이 당권 도전을 위해 한 전 위원장을 견제하며 한동훈 책임론을 부각시킨다는 의심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조 의원은 한 전 위원장을 가리켜 “확실한 흥행 카드”라며 “당대표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나오시라”고 전당대회 출마를 권유하기도 했다. 동시에 “누구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자기의 역할을 마다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당대표 출마 가능성도 여는 발언을 했다. 조 의원의 이런 입장은 ‘조 의원이 당대표 출마 의사가 있다면 총선백서 특별위원장직을 먼저 사임해야 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박 당협위원장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는 최소한 중립적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심판이 선수를 하겠다는 말을 이토록 당당히 하는 게 황당하기까지 하다”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당대표 출마 고민에 대해 “안 할 수는 없다”고 대답해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한동훈 책임론을 거론하며 자신의 당대표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는 조 의원의 발언들은 한동훈 팬카페인 ‘위드후니’에서도 뜨거운 비판거리로 부상했다. 이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자 결국 조 의원은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당대표에 출마하지 않는다”면서 “확실히 밝히지 않으면 우리 당의 분열과 혼란이 커질 것이 염려돼 이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총선백서에 대해서도 “절대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을 공격하지 않고 국민의힘만 생각하며 만들겠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며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이런 논란을 만들게 된 점, 국민과 당원들께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말했다. 이어 “총선 백서의 의도와 목적이 왜곡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시는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그 마음 그대로 이 역할을 끝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조 의원이 일단 뒤로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하지만 이미 국민의힘 특위가 작업 중인 총선백서에 한동훈 책임론이 강도 높게 담길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 상태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한 전 위원장도 총선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한 자구책 차원에서라도 전당대회 출마를 적극 검토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게 됐다. 실제로 한 전 위원장의 출마를 예상하는 발언들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정치인은 민심이 부르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고, 민심이 부를 때 거부할 수 없는 게 정치 아니겠나.”(장동혁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 “지지율이 깡패라고 생각한다.”(김용태 비상대책위원).

더구나 홍 시장이 원색적인 언어로 ‘한동훈 때리기’에 나서자 한 전 위원장도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오히려 출마의 명분이 생겼다는 해석들이 확산됐다. “지금 가장 큰 것은 다시 나올 명분이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이제 돌아가는 여러 가지 정황, 현상들이 자꾸 한 전 위원장을 다시 소환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이 가만히 있다가는 지난번 총선의 책임을 혼자 다 뒤집어쓰게 생겼다”고 김영우 전 의원이 말한 상황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안에서도 그동안 ‘비윤’이라는 이유로 변방으로 밀려나 있던 안철수 의원, 나경원 당선인, 유승민 전 의원 같은 경우는 한 전 위원장의 출마가 달가울 리 없을 것이다. 이제야 자신들도 뜻을 펴볼 때가 됐다는 생각일 텐데, 한 전 위원장이 다시 당권을 쥐는 상황이 된다면 자신들의 입지는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 의원은 방송에 출연해서 “총선 전체를 지휘하신 분이 큰 패배를 했다면 성찰의 시간을 가진 다음 나와야 한다”며 한 전 위원장을 견제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한동훈 출마론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국민의힘 안팎의 분위기로 파악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당초 한 전 위원장의 출마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하던 ‘친윤’의 기류도 달라지는 분위기가 된 점이다. 친윤 핵심으로 꼽히는 이철규 의원은 5월 초만 해도 한 전 위원장을 향해 “나는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 선거에 안 나갔다”며 불출마를 압박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오롯이 본인 선택에 달렸다”, “총선 책임은 당원이 투표로 묻는 것”이라며 출마해도 괜찮다는 기조로 입장의 변화를 보였다.

친윤계의 입장에서도 당대표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앞서고 여권에서는 가장 많은 팬덤층이 존재하는 한 전 위원장이 출마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을 인식했을 법하다. 공연히 과거처럼 무리하게 특정인의 당 대표 출마를 막으려 하는 무리수를 동원했을 때 오히려 친윤계가 심각한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윤 대통령으로서도 ‘윤석열-한동훈’ 관계가 전과 달리 냉각됐다고는 하지만,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당대표는 당대표대로 각자의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2020년 2월 13일 당시 부산고등·지방 검찰청을 찾은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이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0년 2월 13일 당시 부산고등·지방 검찰청을 찾은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이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당대표’ 리더십 시험대, 윤 대통령과의 관계 정립

하지만 누가 당대표가 되든, 특히 한 전 위원장이 출마해서 당대표가 될 경우 윤 대통령과의 관계 정립 문제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로 자리한다. 2년 뒤에 지방선거도 치르고, 3년 뒤에는 대선도 치러야 하는 여당으로서는 지지율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 노선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용산과 여당 사이의 충돌이 격해질 경우에는 여권 전체가 혼돈의 늪으로 빠질 위험도 크다. 그렇게 되면 공멸의 위험 또한 크다.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를 맡더라도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해 여권 전체의 안정을 지키면서도 윤 대통령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하는데, 이것이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어려운 숙제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전 위원장이 지금 시점에서 당대표에 출마하는 것은 사실은 상당한 모험이다. 윤 대통령과의 관계, 그러니까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관계를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하지 못하면 여권 혼돈의 책임으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한 전 위원장 입장에서는 당분간은 거리를 두고 지켜보다가 다음 큰 선거판이 벌어질 때 다시 등판하는 것이 안전한 경로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기다리다가는 한동훈 책임론에 말려들어 당내 기반이 불안해질 취약함이 있고, 다른 대안이 부재한 국민의힘이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할 위험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야권이 절대 다수의 의석을 차지한 환경에서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바닥까지 추락했을 경우, 다시 지방선거와 대선이 다가오더라도 이미 회복 불능의 상태로 망가져 버렸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 한동훈은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전당대회에 출마 여부에 대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 그리고 만약 당대표가 됐을 경우 여권의 안정과 쇄신을 동시에 이뤄가는 정치적 능력을 보여야 할 환경이다. 정치를 시작한 지 아직 반년도 되지 않은 한 전 위원장의 입장에서는 무엇 하나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 전 위원장에게는 당내에 확고한 자기 세력이 없다. 총선 이후에 3040 소장파 모임인 ‘첫목회’ 등이 한 전 위원장에게 우호적인 세력이 됐지만 대부분이 원외 인사들인지라 힘이 미약한 상태다. 한 전 위원장으로서는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앞서는 ‘민심’을 등에 업고 전당대회를 치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원투표 100%로 당 대표를 뽑게 돼 있는 현행 방식의 개정은 필수적이다.

사실 당원투표로만 당대표를 선출하도록 한 현행 전당대회 경선 룰은 ‘친윤’의 당권 독점을 위한 장치였고 민심과는 괴리된 여당을 만들어버린 근원이기도 했다. 이미 황우여 비대위에서도 현행 룰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첫목회’ 또한 당원투표 50%·국민여론조사 50%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황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이 요구한 당원 100% 전당대회 룰 때문에 당이 망했다”고 말할 정도다.

국민의힘이 소수 여당인 상황에서 계속 ‘당심 100%’로 당대표를 선출하는 것은 자해행위와 다를 바 없다. 한 전 위원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회생하기 위해서 당 대표 경선 룰부터 개정하는 것이 순서이다.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지에 한 전 위원장뿐이 아닌 여권 세력 전체의 정치적 생사가 달려있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