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이 지난 26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이 지난 26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

연금개혁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22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시민토론을 거쳐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높이는 안을 제시했다. 소득대체율은 가입기간 40년 기준 본인의 평균소득월액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이다.

여야는 협상을 통해 보험료율을 13%로 하되, 소득대체율은 44%로 낮추는 방안에 일단 합의했다. 그러나 보다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다음 회기로 결론을 미루게 된 것이다.

국민연금은 1973년 박정희 정부에서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나 오일쇼크로 미뤄졌다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 시행됐다. 보험료율 3%, 소득대체율 70%로 시작됐고, 1998년까지 보험료율을 9%로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낼 사람은 적어지고 받을 사람은 늘어나는 인구 구조 때문에 개혁이 불가피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의 1차 개혁은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2033년까지 수급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조정하는 내용이었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2차 개혁을 시행해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추도록 했다.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연금 수령자에게 기분 좋은 변화가 아니다. 반대로 불완전한 개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가 더 밀어붙이기 어려웠다. 이렇게 엉거주춤한 상태로 17년을 허송세월했다. 그 사이 출산율은 놀라울 만큼 하락했고 누구나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연금개혁 논의에서 보험료율 인상은 쉽게 합의됐지만 소득대체율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토론에 참여한 시민들은 노후 불안 때문에 소득대체율 인상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현재의 소득대체율 40%도 적은 수치가 아니며 합의안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기금 고갈 시기만 뒤로 늦춰질 뿐이다.

기금 고갈 뒤에는 그해 보험료를 걷어서 그해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제5차 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현행 소득대체율(40%)을 유지할 때 부과식 전환 후 보험료율은 2060년 29.8%에 이른다. 합의안의 13%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많고 청구서를 받아볼 미래 세대의 분노한 표정이 눈에 선하다. 2060년에 보험료를 낼 세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연금을 수령할 현재 세대들이 멋대로 정해 통보하는 격이다.

수입과 지출이 엇비슷하도록 맞춰 놓은 수지균형 보험료율은 20%에 달한다. 선진국 대부분은 이 정도의 보험료를 낸다. 그들도 수차례에 걸친 연금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보험료율은 올렸다.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지만, 그 결과 연금 재정의 안정을 달성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1988년에 정한 보험료율 9%를 고수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절반만 내고 똑같은 급여를 받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저출산·고령화 속도는 아찔할 정도다. 두 가지 요인이 겹쳐 우리나라 연금의 재정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비록 현재는 커다란 솥에 밥이 한 가득이지만 이런 식으로 가면 바닥이 긁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떤 이는 국고를 투입하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래 세대의 입장에서 세금을 내건 보험료를 내건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은 똑같다. 지금 논의의 핵심은 연금의 지속가능성이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세대 간 형평성이다. 국고로 충당하건 보험료를 올리건 국민연금은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수준의 급여를 받으면서 세대 간 부담의 격차가 이렇게 커서는 안 될 것이다.

보험료율을 단번에 끌어올리는 것은 저항도 크고 무리도 따르므로 선진국 수준인 20%까지 단계적으로 올려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합의된 13%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소득대체율을 현재대로 유지하면 노후보장이 될까라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2022년 국민연금 월 평균 수령액은 36만 9000원에 불과하다.

낮은 근로소득으로 인해 납부하는 보험료가 적고 가입기간이 짧은 가입자가 많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고 안정적인 직장인의 경우 퇴직급여가 완충장치가 될 것이다. 지금은 일시에 퇴직금으로 찾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향후에는 퇴직연금으로 찾도록 의무화해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낮은 퇴직연금 운용수익률을 높이도록 금융기관을 압박하면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유주택자의 경우에는 주택연금도 대안이 될 수 있으므로 지금보다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가입기간을 늘리기 위해 연금수급개시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점진적으로 늘려야 한다. 물론 노동 시장에서 정년연장과 동반돼 추진해야 할 것이다. 고령화 추세에 따라 불가피할 것이므로 기업에게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출산·돌봄·군복무 크레디트를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하면서 이에 대한 보상으로 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전체 지출의 25%를 국고에서 지원하지만, 그 중 절반 이상을 크레디트에 투입한다. 무작정 세금을 투입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빈곤층에 대해서는 기초연금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세금을 재원으로 기초연금을 주고 있다. 일인당 지급액도 늘어나는 추세다. 고령화에 따라 대상자가 급증하고 있어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나 그에 비해 효율성은 낮다. 중산층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빈곤층의 생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미 받고 있는 것을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지급액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일단 연금의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면 장기적인 운용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연금은 사회적으로 민감해 개혁의 논의를 꺼내기 쉽지 않다. 개혁의 키를 쥐고 있는 집권당은 매우 소극적이 된다. 따라서 기대수명, 경제성장률, 실업률 등 여건의 변화에 따라 급여를 조절하는 자동 조정장치를 탑재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독일, 일본 등은 이미 이런 방식을 도입했다.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문제도 빠질 수 없다. 이들 연금의 평균수령액은 국민연금의 5.5배에 달한다. 가입기간이 길다는 이유도 있지만 차이가 너무 크고 공무원·군인연금의 경우 세금으로 적자분을 메운다는 점에서 형평성에 어긋난다.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범위를 확장할수록 이해관계의 충돌 범위가 넓어지면서 논의가 늪에 빠지기 쉽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머지 문제는 그러한 기준점 위에서 논의하는 것이 순리에 맞을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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