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왼쪽)과 김정숙 여사가 5월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생태문화공원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 추도식행사장에서 추모사가 끝나자 박수치고 있다. 오른쪽은 한명숙 전 총리.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왼쪽)과 김정숙 여사가 5월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생태문화공원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 추도식행사장에서 추모사가 끝나자 박수치고 있다. 오른쪽은 한명숙 전 총리. 사진=연합뉴스

김건희특검법 발의에 與 '김정숙특검법' 맞불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지난달 31일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21대 국회 때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 요구로 국회로 다시 돌아와 재표결에서 부결됐던 법안을 한층 강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검의 수사 대상에는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7대 의혹에 더해 공무원의 무마, 은폐 등 직무유기, 직권남용, 불법행위 의혹도 포함됐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수사 대상도 단지 ‘명품 가방 수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도이치모터스, 기타 상장·비상장 회사 관련 주식 거래에 있어서의 주가조작, 허위 경력 기재를 통한 사기, 뇌물성 전시회 후원, 대통령 공관의 리모델링 및 인테리어 공사 관련 특혜, 민간인의 대통령 부부 해외 순방 및 사전답사 동행, 김건희 여사 일가의 서울-양평선 고속국도 노선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에서의 특혜 등이 망라돼 있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진리를 김건희 종합 특검법안을 통해 증명하겠다”는 것이 이 의원의 얘기이지만, 법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러 무리함이 눈에 띈다. 전담 영장 법관 지정 및 전담 재판부 집중 심리, 자수·자백 형 감면 등 현행 사법 체계와 맞지 않는 내용도 특검법에 담겨 있다.

법안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특검 2명을 추천해 그 가운데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의힘 추천은 배제됐다. 최장 6개월 동안 100여 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해 수사하도록 했고, 또 이 사건 관련 영장 전담 법관을 따로 지정하고 재판도 전담 재판부가 집중 심리하게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영장 전담 판사를 따로 지정하는 내용은 입맛에 맞는 판사를 지정하려는 사법부 압박이란 평가를 낳는다. 전담 재판부를 지정해 재판을 빨리 진행하겠다는 것도 재판 지연 논란이 계속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대비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관과 법원도 믿지 못하겠으니 모두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사법적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을 위해서라면 현행 사법 체계를 무너뜨리는 상황도 불사하겠다는 모습이다. 서울고검장까지 지냈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더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인 이 의원은 문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으면서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과 전시 기획사 후원금 의혹 수사를 지휘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를 기소하지 못했고, 전시 기획사 후원금 의혹도 무혐의 종결했다. 자신이 수사를 지휘해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해놓고 이제 와서 사법 체계를 초월한 특검을 통해 김건희 여사 관련 모든 의혹을 밝혀야 한다는 것은 자신이 했던 수사가 부실했음을 고백하는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과연 이런 비상식적인 법안이 법률로 공포되리라고는 이 의원도 생각하지 않고 일단 개인적인 복수심이 앞서서 제출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에 맞서 국민의힘에서는 윤상현 의원이 지난 3일 ‘김정숙 종합 특검법’(문재인 전 대통령 배우자 김정숙의 호화 외유성 순방, 특수활동비 유용 및 직권남용 의혹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윤 의원은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방문이 결국엔 셀프 초청, 혈세 관광, 버킷리스트 외유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며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면서 “단독 외교가 아닌 명백한 셀프 초청”이라고 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당초보다 열다섯 배의 혈세를 투입하고, 대통령 휘장을 단 전용기를 띄워 기내식 비용으로만 수천만 원을 탕진했다는 문건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국정농단”이라는 것이 윤 의원의 주장이다.

윤 의원이 발의한 ‘김정숙 종합 특검법’의 수사 대상에는 김정숙 여사의 의상 구매에 특수 활동비가 쓰인 의혹, 김정숙 여사의 단골 디자이너 딸이 부정 채용된 의혹, 김정숙 여사가 경호처 직원에게 수영 강습을 받은 의혹 등도 포함됐다. 이 중 김정숙 여사의 의상 구매 관련 의혹은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김정숙 여사가 수많은 비위를 저질렀다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돼 왔다”는 것이 윤 의원의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물론 윤석열 정부에서도 관련 의혹을 한 번도 제대로 수사한 적이 없다”며 “중립적이고 공정한 특별검사 임명을 통해 문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배우자에 대한 각종 의혹을 엄정히 수사해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대통령 재임 중 배우자 비위와 관련된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아내고자 한다”고 윤 의원은 설명한다.

윤 의원이 발의한 ‘김정숙 특검법’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맞불용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윤 의원 자신도 “국민 여론을 보면 김건희 여사는 너무 과대포장 돼 있고, 김정숙 여사 건은 너무 모른다”며 유독 김건희 여사만 특검의 표적이 되는 상황이 부당하다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김정숙 특검법’ 발의와는 선을 긋는 모습이다. 윤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도 당 지도부와의 협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당론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희박한 것으로 판단된다. 성일종 사무총장도 “모든 걸 특검으로 가면 검찰이 필요 없다. 경찰도 필요 없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필요 없다”며 “바로 특검을 간다고 하면 민주당이 가자고 하는 논리하고 똑같은 것”이라고 동의하지 않음을 표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채상병 특검이 걸린 이 마당에 그걸 내놓는 것이 국민들 눈에 타당한 대응으로 보일지 걱정”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정숙 여사 특검이라는 것을 우리 당의 어떤 의원이 발의하는데 국민들 눈에는 이게 물타기같이 비쳐버리면 별 소용이 없는 것 같다”는 입장을 말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가 우리도 (김정숙 여사 특검을) 받을 테니 김건희 여사 특검도 받으라고 ‘묻고 더블로 가라’고 하면 국민의힘은 어떻게 할 건가”라고 지적하며 “굉장히 악수”라고 평가절하했다. 맞불용 특검이라는 시선을 받는 ‘김정숙 특검’은 국민의힘의 당론이 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2대 국회 개원 첫날인 5월 30일 조국혁신당 박은정·차규근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접수센터에서 한동훈 특검 법안을 접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2대 국회 개원 첫날인 5월 30일 조국혁신당 박은정·차규근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접수센터에서 한동훈 특검 법안을 접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혹마다 특검부터 하자는 ‘묻지마 특검’

그렇게 보면 이성윤 민주당 의원의 ‘김건희 종합 특검법’이나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김정숙 종합 특검법’이나 공히 여러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정치적 공격과 맞대응 차원에서 마구 던져진 법안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공수처라는 수사체계와 기관들이 있는데도 이렇게까지 특검법이 무차별적으로 제출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김건희 종합 특검법’이나 ‘김정숙 종합 특검법’이 현재 여야가 보여주고 있는 특검법 경쟁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이다. 22대 국회 개원 5일 차인 지난 3일까지 무려 5개의 특검법이 발의됐다. 특히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개원과 동시에 ‘해병대원 채상병 특검법’을, 31일에는 ‘김건희 여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고, 원내 3당인 조국혁신당은 30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한 ‘한동훈 특검법’을 당론 1호 법안으로 제출했다.

조국혁신당이 발의한 ‘한동훈 특검법’은 고발 사주 의혹,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징계 취소소송 항소심 고의 패소 의혹, 자녀 논문대필 의혹, 피의사실 공표·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 시행령 확대 해석을 통한 불법 수사 의혹 등을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과연 특검을 할 정도로 의혹의 구체적인 근거가 쌓여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따른다. 내용보다는 조국 대표의 원한과 감정에 따른 특검법이라는 시선이 제기되는 이유다. 여기에 국민의힘에서는 김정숙 여사 특검을 꺼내 들었고 다시 민주당은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재수사 특검을 발의하며 역시 맞대응에 나섰다. 가히 ‘1일 1특검’을 능가하는 국회의 형국이다.

특검법 과잉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는 가운데서도 민주당이 발의한 ‘쌍방울 대북 송금 특검법’도 문제투성이다. 민주당은 지난 3일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 전반을 특검을 통해 수사하겠다며 특검법을 발의했다. ‘쌍방울 사건’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이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표의 방북 비용을 대납한 데 관여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건이다. 지난 7일 이 전 부지사의 1심 선고를 불과 나흘 앞두고 검찰 수사 과정에 회유·압박 등이 있었다며 검찰 수사팀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특검법을 발의한 것이다. 이번 특검법도 문재인 정부 때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었던 이성윤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검찰 수사를 대상으로 한 특검법이 발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법안은 검찰이 이 대표에게 불리한 증언을 끌어내기 위해 이 전 부지사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한 의혹 등을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부실 수사 의혹, 김 전 회장과 검찰의 구형 거래 의혹,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의혹 등도 수사 대상이다. 특별검사 추천권도 민주당이 갖는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특검 후보자 4명 가운데 2명을 민주당이 추리고, 대통령은 이 중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하는 식이다.

민주당 정치검찰사건조작특별대책단(대책단)은 “검찰의 이번 수사를 두고 검찰권 남용의 종합 선물 세트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며 특검법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대책단 단장인 민형배 의원은 “(검찰이) 이 전 부지사를 회유하고 압박해 이 대표를 끌어들이려고 한 것”이라며 “(검사에 대한) 형사 책임은 물론 탄핵도 동원하겠다”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1심에서 이 전 부지사에게 유죄가 선고될 경우,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재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이 그러한 상황을 예견하고 검찰을 압박하기 위한 특검을 발의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당장 이원석 검찰총장은 민주당이 이 대표가 연관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한 특검법을 발의한 데 대해 “검찰에 대한 겁박이자 사법부에 대한 압력”이라면서 “그래서 이런 특검은 사법 방해 특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치주의 국가라면 상상할 수 없는, 수사 대상자가 검찰을 수사하는,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형사사법 제도를 공격하고 위협하는 형태의 특검이 발의된 것에 대해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 이 총장이 밝힌 입장이다.

이 총장은 검찰 수사를 겨냥한 특검법 추진에 격앙된 듯 자세한 반박을 하고 나섰다. “(이 전 부지사에 대해) 1년 8개월 전에 기소를 했고, 1년 8개월 동안 재판을 받고, 세 차례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그리고 나흘 뒤에 판결 선고를 앞두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수사 대상자인 이 전 부지사와 민주당 측에서 특검법안을 발의해서 검찰을 상대로 수사한다고 하는 것은 목적과 의도가 어떤 것인지 국민 여러분들도 아실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특검법 발의는 입법권을 남용한 것이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것”이라며 “공당에서 특검법 발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고 입법권을 남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의견을 드린다”고 했다. 대검찰청도 즉각 입장문을 내고 대북 송금 특검법에 대해 “형사사법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입법권 남용”이라며 “검찰을 공격하고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정치검찰 사건 조작 특별대책단 위원이 6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대북송금 검찰조작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정치검찰 사건 조작 특별대책단 위원이 6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대북송금 검찰조작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도한 특검법 공세, 22대 국회 시작부터 '찬물'

민주당의 특검법 추진을 향한 이 총장과 검찰의 날선 비판은 검찰 수사에 대한 정당들의 압박 수단으로 특검법이 악용되는 것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총장은 일선 수사팀에 “일선에서 검사들이 여러 가지 사법 방해와 관련된 공격들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저는 검찰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정파와 그리고 이해관계, 신분과 지위와 관계없이 정도만을 걷겠다는 생각을 갖고 일해 주기를 꼭 당부한다”고 했다.

동시에 주목받은 것은 김건희 여사 수사에 대한 이 총장의 입장이었다.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특검법에 대한 비판을 한 직후 이 총장은 김건희 여사에 관한 수사에 대해 특혜도, 성역도 없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 총장은 김건희 여사 소환과 관련된 질문에 “수사팀이 재편돼 준비가 됐다”면서 “수사팀에서 수사 상황과 조사의 필요성을 충분히 검토해 바른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라 모든 사건에 있어 검사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우리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는 원칙과 기준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하고 있다”고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이는 사실상 현직 대통령 배우자인 김 여사에 대한 소환 조사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이 총장의 입장은 오는 9월까지인 자신의 임기 내에 매듭지어야 할 수사 사안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되도록 여야 정치권의 외압을 막고 검찰이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월 29일 단행된 고검검사급 검사 인사에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담당하는 부장들이 모두 유임된 일도 수사 연속성에 방점을 찍은 것이었다. 야당에서 ‘김건희 종합 특검법’까지 나오는 마당에 검찰로서도 수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킨다는 시비를 낳아 검찰을 배제하고 특검법을 정당화시키는 구실을 주지 않으려는 선택으로 판단된다.

개원 벽두부터 벌어지는 이 같은 특검법 마구 던지기의 광경은 22대 국회에 대한 기대에 시작부터 찬물을 끼얹고 있다. 국회 입법에 대한 합리적 판단의 책임보다는 오직 선제공격을 위한 이전투구식 정쟁을 답습할 것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모습이다. 특히 특검법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이 백화점식 특검법 공세를 펴는 모습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따른다. 내용을 불문한 무차별적인, 그리고 정치적 의도가 너무도 뻔히 드러나는 특검법 공세를 과도하게 벌이면 민심의 역풍을 낳게 돼 있다.

특검법은 최대한 여야 합의를 거쳐 통과시키는 것이 이제까지 국회의 룰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21대 국회 막바지부터 이러한 룰은 무시됐고,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권의 일방통행식 특검 추진이 당연한 것처럼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국회는 야권만으로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핑퐁 게임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물론 여기에는 국민 다수가 요구하고 있으며 수사외압 의혹 정황들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는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까지 거부권을 행사한 윤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정상적인 정치라면 젊은 장병이 순직한 경위와 책임의 진상을 가리는 특검법을 여권도 수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더구나 군의 사기와 명예를 중시해야 할 보수정권 아래에서 ‘채상병 특검법’에 집권 세력이 반대하는 모습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오히려 수사외압에 대통령이 연관 돼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여야 공히 협상을 통해 조정할 것은 조정해 합의 처리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서 우려하는 야당이 특검 추천권을 독점하는 문제나 수사 보고 형식의 피의사실 공표 문제 같은 것은 충분히 협상을 통해 합리적인 조정을 해낼 수 있는 사항들이다.

그럼에도 정치가 사라진 21대 국회의 현실은 여야 어느 쪽에서도 협상 의지를 내비치지 않고 서로가 일방통행을 주고받는 모습만 보였다. 결국 의혹의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못한 채 정치 공방만이 남았다.

6월 1일 서울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규탄 및 해병대원 특검법 관철을 위한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관련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월 1일 서울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규탄 및 해병대원 특검법 관철을 위한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관련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채상병특검법' 거부하고 협상 손 놓은 與 책임도

의혹이 있다고 무조건 특검을 하자고 나서는 것은 ‘묻지마 특검’이다. 우리나라에는 수사를 하라고 검찰과 경찰이 있고 공수처도 있다. 특검법 발의를 이어가고 있는 민주당이 고위공직자들의 범죄 혐의를 수사하자고 공수처를 만드는 것에 그토록 매달렸던 것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공수처만 설립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던 민주당이 이제 와서 공수처도 믿지 못하겠다며 오직 특검법만이 살길이라고 하는 모양도 궁색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일단 여야가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협상해 합의 처리하는 길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수용 결단이 필요하고, 민주당도 여권이 제기하는 ‘독소조항’에 대해서는 타협과 조정을 할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젊은 해병대원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지시를 따르다가 순직하고 수사외압 의혹까지 대두됐는데도 그 진상규명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과 정의에 어긋난다.

민주당의 입장에서도 각종 특검법을 남발하는 듯한 현재의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검은 검찰과 경찰, 그리고 공수처가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 수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의혹이나 사건이 생겼다고 해서 모두 특검을 하자고 할 일은 아니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특검법을 마구 던지는 모양새는 특검의 고유한 의미가 아니라 정치공세를 위해 특검을 남발한다는 시선을 낳게 된다. 이는 국민들의 ‘특검법 피로증’을 낳게 돼 있으니 정작 꼭 필요할 때 특검에 힘이 실리지 못하는 상황을 자초할 수 있다. 과거 한동안 ‘특검 무용론’이 여론의 흐름이 됐던 일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야권에서 온갖 특검을 던지는 것은 정작 집중해야 할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주목도와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할 수 있다. 야당은 특검법에 대해 좀 더 절제하고 선별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의 신뢰를 받는 22대 국회의 주역이 될 수 있다. 국회에서 거의 대부분의 의사 결정은 민주당의 손에 달려 있는 현실이 아니던가. 특검 법안을 경쟁적으로 양산하는 야당들의 모습을 보면서 권한만큼의 책임을 의식하는 모습을 주문하게 된다.

물론 특검법 얘기만 나오면 방어 모드로 들어가 반대 입장만 내놓는 여권도 문제가 있다.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 가운데는 설혹 대통령 거부권으로 특검을 막는다 해도 훗날 언젠가는 수사를 피하기 어려운 의혹도 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 임기 중에 털고 매듭짓고 갈 것에 대해서는 선택적으로 특검 수용을 고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검법안의 내용이 비합리적이라면 그에 대한 협상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면 될 일이지 무작정 거부하고 피할 일은 아니다.

22대 국회 개원 벽두에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정치공세의 성격이 강한 특검법들에 대한 관심만 가득하다. 우리 정치의 수준과 현주소를 민낯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 유감스럽다. 무엇이 그렇게 급한지 모르겠다. ‘채상병 특검법’처럼 우선적으로 재론돼야 할 사안도 있지만, 다른 특검법들은 그토록 화급을 다투며 경쟁적으로 보여주기식 발의를 할 일들은 아니다. 자기 진영의 지지자들만 의식한 ‘묻지마 특검법’ 경쟁 속에서 가려지는 것은 민생에 대한 관심이다. 시작부터 민생에는 관심이 없고 정쟁에만 매달리는 국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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