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나란히 출석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연합뉴스
4월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나란히 출석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안병용 기자] SK그룹이 뒤숭숭하다. 최태원 SK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에서 천문학적인 규모로 재산을 분할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단지 두 사람만의 사생활 문제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재판부는 재산 분할 액수를 산정하며 노 관장의 부친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에 유입됐다고 언급했다. SK로선 ‘정경유착’ 논란으로 그룹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현직 대통령의 딸과 재벌 총수의 아들이 만난 ‘세기의 결혼’은 역대 최대 규모의 재산 분할 금액과 위자료 액수, 정경유착의 민낯을 남기는 ‘세기의 이혼’으로 치닫고 있다. 1심에선 SK 지분에 대해 특별재산으로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란 판단이 나와 최 회장이 사실상 웃었고, 2심에선 노 관장이 웃었다. 이제 3심인 대법원 판결만 남았다. 노 관장은 끝까지 웃을 수 있을까. 마지막에 웃는 자가 최후의 승자다.

세기의 이혼은 재산 분할도 역대급이다. 1심은 최 회장에게 위자료 1억 원과 재산 분할 665억 원을 노 관장에게 주라고 판결했고, 2심은 위자료 20억 원과 재산 분할 1조 3808억 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1심에서 20배가량 금액이 증가한 것인데 2심 재판부는 SK의 성장 배경에 노 전 대통령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덕분에 재산 분할액은 현재까지 ‘쩐의 전쟁터’인 재계에서도 역대 최대 규모로 나왔다.

새로운미래를위한청년변호사모임은 성명서를 통해 “‘혼인과 가족생활의 유지’, ‘일부일처제도’의 가치를 옹호하고 유책 배우자의 위자료를 높게 산정하는 판결이 나와 환영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사실관계가 아닌 법리적 쟁점을 다루는 탓에 결과가 뒤집히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에 SK 경영권을 놓고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산 분할이 SK 후계 구도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이 재계 순위 2위의 기업을 이끄는 총수라곤 하지만 1조 원이 넘는 현금 마련은 쉽지 않다. 현금 확보를 위해 상당한 규모의 지분 매각이 예상된다. 관심이 쏠리는 최 회장의 자산은 주식이다. 최 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SK(주)의 주식 1297만 5472주(17.73%)를 갖고 있다. 2조 원을 훌쩍 넘는 지분 가치를 지녔다.

그러나 지주사의 지분을 매각하면 그룹 지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최 회장의 고민이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주식을 매각할 때 생기는 양도소득세도 5000억 원 이상 발생할 것으로 분석돼 최 회장의 부담은 가중된다. 그룹 지배력을 우려하는 최 회장이 SK(주)의 주식에는 손대지 않을 경우에는 그가 보유한 비상장사 SK실트론(29.4%)의 주식을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향후 최 회장이 그룹을 노 관장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 자녀 중 한 명에게 물려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SK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최근 노 관장 측 법률대리인은 “SK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혼 소송은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룹 차원의 문제로 불거지는 것은 불편하다는 것이다.

변수는 최 회장의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이다. 최 회장이 노 관장과 이혼한 뒤 김 이사장과 재혼한다면 셈법이 복잡해진다. 최 회장과 김 이사장 사이의 자녀가 SK 후계 구도에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최 회장은 경영권 분쟁이 터질 것을 대비해 지분 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 노 관장 역시 최 회장으로부터 받을 재산으로 SK 주식을 사들여 슬하의 자녀들이 활용하도록 대비책을 세울 가능성이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승계 계획에 대해 “만약 제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면 누가 그룹 전체를 이끌 것인가”라며 “나만의 계획이 있지만, 아직은 공개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 회장으로선 일단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이 SK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 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노 전 대통령의 기여와 노 관장의 기여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느냐는 판단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노 전 대통령이 SK그룹에 비자금을 지급한 것과 태평양증권 인수, 이동통신 사업 진출 과정에서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고 판단한 것은 대법원이 법리적 쟁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은 “상고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을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유혜미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주식 상장 등 SK의 사업재편 과정에 이번 이혼 소송이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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