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리릭. 사진=안효문 기자
캐딜락 리릭. 사진=안효문 기자

[데일리한국 안효문 기자] 배출가스 감축은 모든 브랜드에 내려진 숙제다. 친환경차의 성패가 자동차 브랜드의 생존과 직결된다. 

내연기관차를 뛰어넘는 성능이나 이전에 접할 수 없었던 혁신적인 기술에 대한 찬사는 종종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차들이 단순히 ‘비싼 차’가 아니라 ‘고급차’로 시장에 자리 잡았는지는 다른 문제다. 테슬라를 위시한 신규 플레이어들과 차별화 요소가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캐딜락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 중 하나로, 링컨과 함께 가장 미국적인 럭셔리 브랜드란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디자인 언어를 ‘아트 앤 사이언스’로 제시할만큼 획기적인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이 전통과 혁신을 성공적으로 담았다고 평가하는 브랜드 최초 전기차 리릭을 서울 잠실과 경기도 포천 일대서 시승했다.

◇ 직선 위주 미래지향적 디자인…실내엔 33인치 화면 

캐딜락 리릭. 사진=안효문 기자
캐딜락 리릭. 사진=안효문 기자

차 크기는 길이 4995㎜, 너비 1980㎜, 높이 1640㎜다. 정통 SUV와 크로스오버를 동시에 연상케 하는 비례감이다. 첫인상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였는데, 제원표를 확인해보니 대형 SUV인 제네시스 GV80보다 길고 넓었다.

실내공간을 좌우하는 휠베이스는 3m가 넘는다. 패밀리카로 각광받는 기아 카니발보다도 길다. GM의 전기차 플랫폼 ‘얼티엄’의 힘이다.

캐딜락 리릭. 사진=안효문 기자
캐딜락 리릭. 사진=안효문 기자

라디에이터 그릴 대신 유광 블랙 패널을 배치했다. 엔진이 없어 공기통로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단순 장식을 넘어 간접조명까지 배치했는데, 운전자가 가까이 다가가면 활성화되는 ‘웰컴 라이팅’ 기능으로 첨단 이미지를 더했다. 트렁크 라인부터 C필러(기둥)를 따라 지붕까지 이어진 리어램프의 파격적인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캐딜락 리릭. 사진=캐딜락코리아 제공
캐딜락 리릭. 사진=캐딜락코리아 제공

실내는 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럭셔리 브랜드의 노하우를 아낌 없이 살렸다. 원목과 나파가죽, 알루미늄 소재로 차 곳곳을 감쌌다. 손이나 등에 닿는 촉감이 만족스럽다.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영역을 통합한 33인치 9K LED 디스플레이를 배치했다. 스티어링 휠을 기준으로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눠 정보를 표시한다. 운전대 안쪽은 속도나 배터리 잔량 등 주행과 연관된 정보, 오른쪽은 내비게이션과 각종 부가기능을 표시하는 식이다. 주행 모드에 따라 테마를 변경할 수 있고, 배터리와 회생제동 등 전기차 정보를 더 강조해서 볼 수도 있다.

캐딜락 리릭. 사진=캐딜락코리아 제공
캐딜락 리릭. 사진=캐딜락코리아 제공

고급차답게 최신 편의·안전기능을 아낌없이 담았다. 이중 단연 백미는 사운드 시스템이다. 하만에서 만든 19 스피커  AKG 오디오 시스템은 미국 브랜드답게 묵직한 저음 세팅에 중고음 영역도 무너지지 않는 균형감이 상당했다. 운전석 헤드레스트에도 스피커를 배치했는데, 생생한 사운드를 제공하는 한편 외부 소음을 줄여주는 ‘노이즈 캔슬’ 기능도 겸비했다.

◇ 미끄러지는 듯한 승차감

캐딜락 리릭. 사진=캐딜락코리아 제공
캐딜락 리릭. 사진=캐딜락코리아 제공

동력계는 두 개의 전기모터로 구성했다. 시스템 최고출력 500마력, 최대토크 62.2㎏f·m, 0→100㎞/h 가속시간 4.6초, 최고속도 210㎞/h의 성능을 발휘한다. 내연기관에선 견줄 차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성능이다.

배터리 용량은 102㎾h, 1회 충전으로 최장 465㎞ 주행거리를 인증받았다. 190㎾급 고속충전기에 대응, 10분 충전으로 약 120㎞ 달릴 수 있다.

제원표 상 숫자보다 인상적인 건 승차감과 정숙성이다. 후륜구동 기반의 최상위 고급 세단의 승차감을 두고 요트가 물 위를 지나가는 느낌과 비슷하다며 ‘세일링(Sailing)’이란 표현을 쓰곤 한다. 리릭은 전기차 특유의 울컥거림이나 모터의 고주파음 없이 말 그대로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나갔다.

앞뒤 서스펜션은 5링크 방식으로, 승차감에 초점을 맞췄다. 대형 세단에서 주로 선택하는 것인데, 2670㎏에 달하는 공차 중량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실력이 대단하다. 에어 서스펜션 없이도 차가 도로 위를 둥실 떠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지간한 높이의 과속방지턱이나 자잘한 포트홀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부드럽게 넘어간다.

캐딜락 리릭. 사진=캐딜락코리아 제공
캐딜락 리릭. 사진=캐딜락코리아 제공

최근 자동차 트렌드에서 이러한 미국식의 부드러움은 다소 뒤쳐진다는 평이었다. 코너링과 직진 안정성이 뛰어난 다소 단단한 유럽식 세팅이 오랫동안 대세였다. 하지만 출발 가속성이 강하고 무거운 배터리를 바닥에 깐 전기차의 특성엔 오히려 미국식 편안함이 더 고급감을 선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압식 리젠 온 디맨드’ 기능 역시 고급 전기차에 대한 캐딜락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기능 자체는 새롭지 않다. 스티어링 휠 뒷면에 패들 버튼을 배치했고, 이것을 왼손가락으로 잡아당겨 회생제동 기능을 활성화한다. 그런데 버튼을 눌러 콱콱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감압식 센서를 더해 마치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듯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 효율과 승차감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솔루션이다.

자동차 소음은 크게 엔진음과 풍절음, 노면소음으로 구분한다. 전기차는 엔진이 없기 때문에 내연기관차보다 정숙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엔진음이 없는 만큼 외부소음 차단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더 두드러지기도 한다.

리릭의 소음억제 수준은 놀라울 정도다. AKG 스피커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과 꼼꼼하게 두른 이중접합 차음유리 덕분이다. 노이즈 캔슬링은 최근 헤드셋 등 음향기기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외부소음과 반대되는 위상의 파형을 만들어 상쇄시키는 기술이다. 

◇ 전동화 시대에 돋보일 ‘아메리칸 럭셔리’

캐딜락 리릭. 사진=안효문 기자
캐딜락 리릭. 사진=안효문 기자

한때 캐딜락은 ‘전세계 표준(The standard of the world)’이란 캐치프레이즈를 쓸 정도로 럭셔리카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유럽 브랜드의 부흥과 내수 위주의 판매정책으로 미국 외 시장에서 존재감은 옅어져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에스컬레이드 외에 다른 차량들의 판매는 미미한 편이다.

리릭은 가격과 성격면에서 많이 판매될 차는 아니다. 하지만 가장 캐딜락다운 차로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할 잠재력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급 전기차에 대한 캐딜락의 대답이 리릭에 있었다. 가격은 1억696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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