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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자율신경실조, 신체화장애 환자들은 대개 만성통증이나 만성 질환에 오랫동안 시달리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는데, 몸이 문제일까 약이 문제일까?”라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약을 먹어도 약효를 느끼지 못하는 일이 정말 있기는 한 걸까 싶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런 일이 꽤 흔합니다.

약물을 대사시키지 못하는 몸

어떤 약을 먹어봐도 약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는 분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약물을 대사시키는 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정한 약물을 대사시키는 효소가 없는 경우에 약물이 제대로 대사되지 않아 약효가 없을 수 있고, 또는 간 기능이 떨어지면 약물을 대사하는 힘이 떨어져 약효를 못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복용 중인 다른 약물이 효과를 감소시킬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자율신경실조증이나 신체화장애 환자들은 대부분 상당히 복합적이고 다양한 약물들을 오랫동안 한꺼번에 복용해 온 경우가 많아 이런 약물들이 서로의 효능을 반감시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항상 진찰 과정을 통해 과거에 복용해 온 약물들, 그리고 현재 복용 중인 다른 약물들을 사전에 점검하는 것이 맞습니다.

약물을 흡수시키지 못하는 몸

약이 약효를 내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소화 기능이 약하거나 소화기에 문제가 있어 약물 흡수 자체가 잘 안 되는 경우입니다. 평소에 위가 냉하고 소화력이 떨어져 있는 사람, 평소 항상 소화 불량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가 흔히 있습니다. 또 어떤 약물들은 내성이 생길 수도 있고, 장기간 복용했을 때 약물의 효과가 감소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환자들이 과거부터 각종 증상을 억제하는 대증 치료 약들을 장기적으로 받아오고 있기 때문에 흡수력이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자율신경의 균형을 맞추는 한약을 처방하더라도 흡수율이 떨어질 것을 예상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치료 효율도 떨어집니다. 이런 경우는 자율신경 치료 한약을 처방하기 전에 소화기의 흡수율을 높이기 위한 치료를 먼저 해야 합니다. 위장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조절하는 치료를 먼저 한 후에 자율신경 치료 한약을 처방하면 치료 효율이 훨씬 높아집니다.

제가 진찰할 때 환자 분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치료 방법과 치료약을 사전에 점검하고, 현재 복용 중이기는 하지만 효과가 없는 약물들이 있는지 체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통증이 진통제로 없어지지 않는 이유

자율신경실조증이나 신체화장애로 인한 통증이 진통제로 효과가 제한적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자율신경계는 신체의 무의식적인 기능을 조절하고 있어 심박수, 소화, 혈압 조절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자율신경실조로 발생하는 통증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메커니즘과 맞물려 있어서 통증 외에도 혈액순환 장애, 근육 경련, 내장 통증, 대사 장애 등의 다양한 증상들이 함께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진통제의 작용 메커니즘이 작용하지 않거나 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자율신경실조증이나 신체화장애는 신경 전달이 비정상적으로 이뤄져서 신경이 과하게 흥분하거나 비정상적인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일반적인 진통제는 이런 신경 신호를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만성 전신성 또는 국소성 통증은 대개는 스트레스, 불안, 긴장, 우울, 울화와 같은 심리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고, 이런 심리적인 요인이 통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진통제 효과가 제대로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몸이 바뀌어야 약도 효과가 있어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를 못 느끼는데 어떻게 치료가 가능할까요? 병원에서는 일반적으로 진통제 외에 항우울제, 항경련제, 근육이완제를 사용하거나 신경차단 주사나 신경차단술로 통증을 차단하는 대증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한의에서는 신체의 특정 경혈을 자극해서 에너지 흐름을 조절하고 신체의 균형을 맞추는 침, 약침요법으로 몸 상태를 개선하고 대사 순환을 돕습니다. 그리고 자율신경 약침은 부교감 신경의 활동을 증가시키고 교감신경의 과잉 활동을 억제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자율신경실조증이나 신체화장애는 스트레스, 불안, 긴장, 우울 등의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치료 과정에서도 많은 변수가 생길 수 있는데, 한약 처방으로 이러한 심리적인 울증(鬱症)을 해소하고 기혈순환에 도움을 줍니다. 또 소화기의 흡수력을 회복하도록 돕기 때문에 자율신경 균형 치료를 위해 처방하는 약들이 효율적으로 몸에 작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데 도움이 됩니다.

 

 

 

● 정이안 한의학 박사 프로필

한의학박사, 정이안한의원 원장이며, 자율신경연구소 원장이고, 동국대학교 외래교수이다. 저서로 안티에이징시크릿. 생활습관만 바꿨을뿐인데, 직장인 건강 한방에 답이 있다, 몸에 좋은 색깔음식 50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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