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도쿄에서 열린 품질인증 부정행위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도쿄에서 열린 품질인증 부정행위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박현영 기자] 일본차 업계가 또다시 품질 부정 스캔들에 휩싸였다. 올해 초에는 도요타 그룹 계열사에서 품질 부정 논란이 발생했다면, 이번에는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차 본사들이 대거 적발됐다. 그동안 ‘장인정신(모노즈쿠리)’과 안전성을 강조해 온 일본차 브랜드는 연이은 품질 부정논란에 체면을 구기게 됐다.

이달 초 일본 국토교통성(국교성)은 도요타, 마쓰다, 스즈키, 혼다, 야마하 발동기 등 5개 업체의 자동차 성능 시험 부정행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 업체들은 38개 차종의 품질인증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도요타는 현재 생산중인 차량 3종과 과거 차량 4종 등 총 7개 차종의 인증시험 과정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마쓰다는 현재 차량 2종과 과거 차량 3종 등 5종에서, 야마하 발동기는 현재 생산 차량 1종과 과거 2종 등 3종에서 부정행위가 발견됐다. 혼다는 과거 차종 22종의 소음 시험 결과를 허위로 작성했고, 스즈키는 과거 차량 1종의 제동장치 시험 결과를 허위로 기재했다.

특히 이번 부정행위에는 안전에 직결된 에어백 검사도 포함됐다. 에어백이 제때 작동하지 않는 문제와 관련, 타이머를 이용해 터트려 인증을 받은 것이다. 보행자 안전 테스트도 차량 한쪽만 충돌테스트를 한 후, 양쪽 모두에 한 것으로 속여 자료를 제출했다. 엔진 인증 시험에선 연비를 조작하거나 배출가스 양을 허위로 기입했다.

국교성은 현재 생산되는 도요타와 마쓰다, 야마하 발동기의 6개 모델에 대해 출하 정지를 지시했다. 이어 “이번 부정행위는 신뢰를 해치고 자동차 인증제도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다”고 입장을 밝혔다.

품질인증 부정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일본차 브랜드 경영진들은 급하게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다.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은 국교성 발표 직후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혔다. 아키오 회장은 “올바른 인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양산·판매했다”며 “그룹 내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 도요타 그룹 책임자로서 고객과 자동차 팬, 모든 이해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국교성은 이번 품질인증 부정행위가 일본 내 기준 외에도 국제연합(UN) 기준을 위반했다고 보고 추가 조사에 들어갔다. UN 기준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유럽 등 62개국이 채택한 품질 기준이다. 이 기준은 UN의 협정에 따라 각국의 규제 당국 및 산업협회 등이 심의하고 제정한 국제적인 안전 및 환경 기준이다. 이 기준은 세부적으로 브레이크, 소음 등 43개 품목으로 구성됐다.

일본차는 자국에서 차량 인증을 획득하면 같은 UN기준을 채택하고 있는 한국과 유럽 등에서 별도의 시험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번에 부정 행위가 발견된 인증 목록에는 UN 기준에도 적용되는 6개 시험이 포함돼 문제가 됐다. 이 시험들은 오프셋(전면부) 충돌 시 탑승자 보호, 보행자의 머리와 다리 보호, 후방 충돌, 엔진 출력 등 안전과 차량 성능에 직결되는 사안들이다.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매체들은 “일본과 유엔의 승용차 기준은 일치하고 있으며, 동일한 부정이 있을 경우 유럽 등지에서도 대량 생산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기준 미달이 발견될 경우, 일본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리콜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에 업계에선 이번 일본차 품질부정 스캔들로 인해 현대차·기아가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현대차·기아는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도요타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경쟁자다. 현대차 기아는 지난해 730만4000대를 판매하며 글로벌 판매 순위에서 3위를 기록했다. 1위는 도요타 그룹(1123만3000대) 이었으며, 2위는 폭스바겐그룹(924만대) 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 이미 한 차례 품질 부정 논란이 있었던 도요타 자동차는 반년이 채 지나기 전에 또다시 스캔들에 휩싸였다”면서 “연이은 스캔들은 소비자들의 브랜드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곧 현대차와 기아의 판매량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반면 일각에선 현대차와 기아의 판매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차 품질인증 부정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등 최근 자동차 관련 부정 이슈들이 만연해 소비자들이 크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이번 일본차 품질인증 부정논란은 과거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급으로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지 않다”며 “이미 굵직한 사태를 여러차례 겪은 소비자들에게 이번 일본차 논란도 지나쳐 갈 또다른 사건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교수는 “폭스바겐, 아우디, BMW 등 이미 국내를 휩쓴 수입차 논란으로,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비슷한 사건은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만성화됐다"면서 "특히 일본차가 장점을 보이는 하이브리드 차량이 국내서 열풍이 불고 있는 만큼, 오히려 국내 시장에선 일본 차의 인기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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