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전문가들도 ‘엄지척’, 박근혜 탄핵 결정문…국민 눈높이 맞춰 쉽고 간결한 표현법 참고해야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논란으로 탄핵 소추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네번째 변론기일인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으로 유남석 헌재소장(가운데)이 입장해 착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논란으로 탄핵 소추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네번째 변론기일인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으로 유남석 헌재소장(가운데)이 입장해 착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최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심판이 있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대통령, 2021년 임성근 판사 탄핵심판 이후 첫 장관 탄핵 사건이다.

이러한 탄핵심판은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상당히 중대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 역사적인 사건을 국민들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법률 용어 때문이다.

헌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 판결문이 비교적 간결하고 명확해 논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편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난해한 법률 전문용어 대신 국민 눈높이에 맞춰 결정문을 쉽고 명쾌하게 서술한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이 판결문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하지만 대부분의 판결문은 난해한 법률 용어는 기본이고 주어와 술어를 구분하기도 힘든 문장으로 구성된다. 그냥 난해한 것이 아니라 원래 쉬웠던 내용도 일부러 어렵게 표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국민 이해 가로막는 난해한 판결문
“길고 복잡하지 않은 단문 작성 필요”

법령이든 판결이든 법률 문장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판결문이 가독성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가 비교적 단문으로 작성해 명확한데다 최대한 한글 문장으로 작성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법률 용어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는데 한계는 있었다.

탄핵과 관련해 일단 대통령, 국무총리, 법관, 검사 등 고위 공무원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국회에서 그들의 위법을 고발하는 ‘탄핵소추’라는 말부터 어렵다. 꼭 탄핵 사건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가처분신청 인용 결정문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가처분신청 결정문만 봐도 거의 암호처럼 느껴진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2020년 12월 24일 당시 윤 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윤 총장이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결정과 추 장관의 제청, 문재인 대통령의 결재를 거쳐 직무에서 떠난 지 8일 만에 업무에 복귀했던 사건이다.

이 결정문 내용 중 “처분 등이나 그 집행 또는 절차의 속행으로 인하여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는지는 처분의 성질과 태양 및 내용, 처분 상대방이 입는 (중략)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부분을 살펴봐도 일단 문장의 호흡이 길고 복잡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장 속 법률 용어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태양’이라는 용어는 ‘모습이나 형태’를 뜻하는 말로 지나치게 어려운 것은 물론, 한 문장 속에서 유사한 의미의 다른 용어가 있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또 내용 중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공공복리 양자를 비교·교량하여, 전자를 희생하더라도 (중략) 공익을 이익형량하여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를 판단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비교하여 헤아린다’는 뜻을 가진 ‘교량’과 ‘서로 충돌하는 기본권의 법익을 비교하고 판단해 결정하는 일’을 뜻하는 ‘이익형량’의 경우는 뜻을 쉽게 풀어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는 지난해 10월 6일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을 상대로 제기한 3·4·5차 가처분 신청을 각하하거나 기각한 바 있는데, 이 결정문에서도 난해한 법률 용어가 많이 사용됐다.

당시 결정문 중 “과거에 완성된 사실을 규율하는 진정소급이 금지될 뿐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사실관계를 규율하는 부진정소급은 금지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시한 내용이 대표적 사례다. 이미 완료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진정소급’과 진행 중인 사실관계·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부진정소급’이라는 표현에서 국민들이 큰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하태영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 판결문에서 법문장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논문에서 “판결문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문장이 길고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용어가 난해한 것도 한몫한다”고 언급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탄핵심판 절차상 언급되는 기초적인 법률 용어부터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면서 “판결문은 국민과의 약속으로, 쉽게 알 수 있도록 단문으로 작성해야 하고 이것이 세련된 판결문 문장”이라며 판결문 속 문장의 3대 원칙으로 ▲명확성 ▲간결성 ▲가독성을 강조했다. 일본식 조사 ‘~의’와 중국식 표현 ‘~적’은 삭제를 요구했고 국문 독해를 방해하는 ‘~아니한다’, ‘아니하지 않을 수 없다’ 등도 판결문에서 퇴출돼야 할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국민 60% “법률 용어·문장 너무 어려워”
판결문 이해 못하면 후속 소송 차질 

판결문은 재판 당사자에게 재판부의 판단을 정확하게 알리는 보고서다. 보고받는 상대방이자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를 직접 알고 경험한 재판 당사자에게 판결의 내용과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판결문의 본질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탄핵심판에서 재판의 내용을 이해하고 판단해야 하는 당사자는 우리나라 국민 모두다.

판결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법률 용어로 구성돼 있고, 그 법률 용어가 대부분 전문 용어인 경우가 많아서다. 특히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추후 국민의 심판이 반드시 필요한 정치인들과 관련한 판결문이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다면 민주주의 정신까지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이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은 “법률 용어와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법률 용어·문장을 이해하기 쉽다”는 응답은 각각 9.7%, 10.4%에 그쳤다. 소득 수준과 학력 수준이 낮을수록 법률 용어·문장을 이해하는 데 더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판결문을 쉽게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법원이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민사 사건 10건 중 7건(68.1%)은 원고나 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소송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원고와 피고 모두가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는 전체의 10.3% 수준이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소송 당사자들이 자신이 받은 판결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근본적으로 소송 당사자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인 변호사를 제대로 선임하지 못하는 현실이 문제지만 소송에서 왜 이겼는지, 왜 졌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후속 소송 등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법제처는 2018년부터 법령에 어려운 용어가 쓰이는 것을 입법예고 단계에서 미리 막고 법령 속 어려운 용어를 찾아 국민이 알기 쉽게 고치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현재까지 1972개의 어려운 용어가 법령에 들어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어려운 용어가 포함된 법률 157개, 대통령령 698개 및 총리령·부령 676개를 고쳤다.

법제처에 따르면 지난해 ‘올해의 알기 쉬운 법령 용어’로 ▲주서→붉은 글씨(행정 분야) ▲일부인→날짜도장(경제 분야) ▲수발→접수·발송(사회 분야)이 선정됐다. 이 용어들은 법제처가 지난해 법령 속 어려운 용어를 정비한 사례로, 국민 설문 조사에서 분야별로 가장 많은 국민이 잘 고쳤다고 선정한 법률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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