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 통과했어도 소액사건심판법만 국회 통과...정치권은 여전히 무관심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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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지난해 정부는 법무부 소관의 법률을 내용보다는 표현 위주로 살펴보고 어려운 법률 용어를 알기 쉽게 순화하는 취지의 법 개정을 추진했다. 이는 ▲등기특별회계법 ▲민사소송비용법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 ▲소액사건심판법 등 4개 법률이 그 대상이었다. 법무부는 이들 법률의 조문에서 어색한 표현을 하나하나 다듬어 각각 개정안을 제출했고 그해 1월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실제로 개정으로 이어진 것은 소액사건심판법 한 건에 그쳤고 다른 법안은 묻힌 채 국회에 무기한 계류돼 있다.

국회 상임위 문턱도 못 넘은 3개 법안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은 효력 만료

4개 법의 개정안은 띄어쓰기 등 맞춤법에 어긋난 문구를 옳게 고치거나 어려운 한자어와 일본식 표현들을 쉽고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풀어쓰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등기특별회계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는 ‘수입(收入)할’을 ‘받을’로, ‘기타’를 ‘그밖에’로 고쳤다. 민사소송비용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실비액(實費額)’을 ‘실제 비용’으로, ‘운반에 요(要)한 비용’을 ‘운반에 드는 비용’, ‘이하(以下) 수조(數條)의 규정(規定)에 의(依)하여 산정(算定)한다’를 ‘이 법에 따라 산정한다’로 바꿨다.

이 외에도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은 ‘해태(懈怠)한’을 ‘제때 하지 아니한’으로, 소액사건심판법은 ‘판사(判事)의 경질(更迭)’을 ‘판사가 바뀐’으로 손봤다.

하지만 실제 개정으로 이어진 법률은 소액사건심판법뿐이다. 소액사건심판법 개정안은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이 법은 민사사건 가운데 소송가액 3000만원 이하의 소액사건은 일반적인 민사 재판 대신 절차를 보다 간소화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소액사건은 연간 70만건에 달해 전체 민사 소송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법원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당시 이 법은 판결문에 판결이유를 적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특례 규정이 재판 당사자 권익을 해친다는 논란이 있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판결이유를 적시하도록 수정하는 개정안을 포함해 국회에 발의된 법안들을 심사하고 병합해 처리했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 제출안의 주된 내용들도 다수 반영됐다.

그 결과 당초 한문으로 적혀 있던 소액사건심판법 ▲제7조의2 ▲제8조 ▲제9조 ▲제10조 ▲제11조 ▲제11조의2 ▲제16조의 조문이 한글로 바뀌는 등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3개 개정안은 아직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등기특별회계법‧민사소송비용법‧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의 개정안 모두 법사위에 회부됐지만 지금껏 상정되지 않아 심의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은 기존 법의 효력이 만료돼 개정안 자체가 무의미하게 됐다. 이 법은 토지 등 부동산을 두고 행정관청에 등록된 소유자와 실제 소유자가 다를 경우, 간단한 절차를 통해 실소유자임을 입증하고 등기하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과거 한국 전쟁 등 국가 대소사로 공공기관이 보관하던 토지 관련 서류가 유실되는 사례가 잦았고 이로 인해 자기 땅인데도 등기가 없다는 이유로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피해 사례가 뒤따랐다.

이에 지자체에서 확인서를 발급하면 등기를 쉽게 다시 받도록 규정한 것으로, 지난 2020년 8월 5일부터 2022년 8월 4일까지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적용됐다. 지난해 법무부에서 개정안을 제출할 때만 해도 만료까지 7개월여 시간이 있었지만 심의가 미뤄지면서 법 자체의 효력이 만료된 것이다.

민생 법안이지만 현안에 밀려 뒷전
 "법률용어 순화는 기본권 보호의무" 

“법률용어의 한글화나 순화는 국민들이 각자의 권리와 권리구제수단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과 우리말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헌법 제10조)와 민족문화 창달의무(헌법 제9조)에 부합한다.”

김광묵 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수석전문위원이 지난 2004년 4월 열린 법률용어 순화를 위한 국가기관 합동회의에서 국회 표준화 사업의 추진경과 및 내용을 설명하면서 한 발언이다. 법률용어를 쉽게 고치는 것이 곧 국민 권익에 직결되는 문제임을 강조한 것이다.

법무부에서 개정 추진한 4개 법은 그 내용이 일반 국민 실생활과 관련이 깊은 ‘민생법’의 성격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소액사건심판법의 경우 주로 임금체불 소송 등 국민 삶에 피부로 와닿는 사건과 관련이 깊다.

또 민사소송비용법은 법률 서비스를 받을 때 적정 수임료 책정 등 비용과 직결되고 등기특별회계법은 지역 등기소의 운영 및 공금 관리 기준을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주요 현안사업이나 쟁점 법안에 우선순위가 밀려 국회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행정분야에서도 공문서 등에 적힌 난해한 외래어로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혼동을 겪곤 한다. 대표적으로 설계·제조·시공 분야에서 규격을 적은 설명서인 ‘시방서'(示方書)의 경우 각종 법규나 행정기관의 공문서에서 숱하게 쓰이는 일본식 한자어다. 국립국어원은 지난 2010년 조사를 통해 행정기관의 어려운 공공언어나 정책명 사용으로 연간 280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들은 관련 입법 개정이 지지부진할 경우 비교적 문턱이 낮은 행정지도를 통해 언어 순화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한글문화연대와 국어문화원 등과 협력해 건설현장이나 부동산 업계에서 쓰이는 외국어를 대상으로 우리말 순화 사업을 전개했다. 지난 2021년에는 ‘바른 건설 언어 길잡이’를 발간해 맞춤법 등 우리말 표기법, 일본어 투 용어 등 외래어의 순화어 등을 갈무리해 업계에 배포했다.

서울시는 민간 국어전문가가 참여하는 ‘서울시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를 통해 558개의 행정용어를 시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순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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