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진='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스포츠한국 신영선 기자] AI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원더랜드'가 역경을 이겨내고 4년 만에 관객들과 만났다. 지난 2020년 크랭크인된 뒤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이유로 개봉이 미뤄졌던 김태용 감독의 신작 '원더랜드'가 지난 5일 개봉했다.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김태용 감독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공유 등 화려한 배우진의 연기 앙상블이 만나 '원더랜드'라는 완벽한 작품이 탄생한 가운데, 지난 3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과 김태용 감독이 만났다.

'원더랜드'의 개봉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AI기술은 더 발전했다. 인간처럼 대화가 가능한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티피'(ChatGTP)가 공개돼 선풍적인 화제를 모았다. 결과적으로는 인공지능 기술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공감대를 얻기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김태용 감독은 늦어진 개봉을 탓하기보다 "AI가 핫한 시기에 개봉하게 돼서 더 낫다 싶기도 하다"며 웃어 보였다.

"'원더랜드'는 CG가 많아서 후반 작업이 많았어요. 영상통화를 주로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CG가 정말 많아요. 빈 전화기 화면을 두고 찍으면 각자 찍은 영상을 또 편집으로 맞추기 때문에 연기의 느낌을 살리는데 오래 걸렸죠. 개인적으로는 개봉이 늦춰지는 사이에 공연 몇 개를 연출을 했어요. 제가 연출의 시작을 공연으로 해서 그런지 공연에 대한 애착이 있거든요. 아내 탕웨이도 전공이 연극연출이에요. 공연으로 시작해서 영화배우가 된 케이스예요. 저와 공연 이야기도 많이 해요. 이 작품은 시나리오부터 촬영 후반까지 작업이 길게 걸려서인지 오래 쉬었다는 느낌보다는 한 10년 '원더랜드'만 작업한 기분이에요."

사진='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진='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AI로 구현된 그리운 누군가와 영상통화. 익숙하면서도 모아놓으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이 모여 인간미 넘치는 SF장르물이 됐다. 김태용 감독은 "'원더랜드'는 2016년쯤 그리워하는 사람을 AI로 구현해서 살아있는 것처럼 통화해 보면 어떨까라는 의문과 함께 시작됐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영화관을 나서면서도 곱씹게 되는 진한 여운이 가득한 영화가 탄생했다.

"2016년쯤 '그리워하는 사람을 AI로 구현해서 살아있는 것처럼 통화해 보면 어떨까'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아직 어린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용하도록 주는 게 맞을지에 대한 고민처럼 AI가 우리 삶을 변화시키게 될 텐데 '원더랜드' 같은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어요. 가치판단 없이 그리움이라는 욕망의 끝에서 그런 상품이 나온 거잖아요. 요즘은 군대에서도 얼마든지 전화를 할 수 있고 사람들이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이런 세상에서 '원더랜드'의 기술이 좋은 건지 탕웨이 배우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탕웨이 배우와 원거리에 있으면 영상통화를 자주 해요. 그런데 끊고 나면 '뭐지?' 하는 생각이 들고, 진짜 만난 거 같은 기분도 들거든요. 또 오랜만에 만났는데 영상통화는 계속했으니까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이런 만남이 확장되는 다양한 케이스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죠."

김태용 감독은 탕웨이와 '만추'(2011) 작업을 함께하며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지난 2014년 결혼했다. 탕웨이와는 두 번째 호흡이지만 가족이라는 격의 없는 관계에서 함께 작품을 완성하는 건 김태용 감독에게도 또 다른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른 배우들은 촬영장에서만 볼 수 있는데 탕웨이 배우는 일상을 공유하잖아요. 배역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과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죠. 작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배우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물리적으로는 책을 쌓아 놓고 읽기도 하고, 심적으로는 '바이리' 역할의 엄마, 딸로서 심리적인 접근을 하려고 노력하더라고요. 연출자로서 배우가 질문을 했을 때 곤란하면 도망을 갈 수도 있는데 이건 도망도 못 갔죠. 심지어 청소하다가 배역에 대한 질문을 하더라고요. 워낙 질문이 많은 배우예요.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이기도 한데 '만추'를 할 때 캐릭터가 달랐고, '원더랜드' 할 때의 캐릭터도 달라요. 매번 새로운 배우죠. '원더랜드' 이후 다시 한번 작업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이번에는 제작자의 제안으로 캐스팅을 했지만 선택은 배우가 하는 거기 때문에 그때는 설득의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요."

사진='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진='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원더랜드'는 독특한 설정만큼이나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어린 딸을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직접 의뢰한 엄마 '바이리' 역의 탕웨이, 불의의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태주' 역의 박보검, 연인 태주를 그리워하며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 '정인' 역의 수지,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서비스를 이용해 온 '원더랜드' 수석 플래너 '해리' 역의 정유미, 해리와 '찐친' 케미를 선보이는 신입 플래너 '현수' 역의 최우식, '원더랜드' 속 AI 관리자 공유 등 배우들이 모여 완벽한 연기 앙상블을 이뤄냈다.

"'원더랜드' 속 세 가지 에피소드가 파편화되어 있지만 서로 간에 도움이 되길 바랐어요. 출연하는 배우들이 다 존재감이 큰 배우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각자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기도 할 거 같은데, 저는 배우 각자의 시너지가 에피소드마다 녹아있다고 봐요. 정유미 배우는 '가족의 탄생' 이후 10년 만이에요. 그때도 작은 분량이지만 존재감이 큰 배우였어요. 인공지능 부모님을 자연스럽게 대하는 진실성이 있는 배우예요. 탕웨이 배우는 처음부터 캐스팅을 한 건 아니었어요. 외국 배우가 좋겠다 싶었는데 어떤 성별이나 국적을 떠나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어요. 제작자가 탕웨이 배우를 언급했고, 그때 탕웨이 배우가 처음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싶다고 해서 캐스팅이 됐죠. 가족이라고 해서 캐스팅이 쉬운 건 아니에요. 정식으로 의뢰를 하고 절차를 거쳐야 하죠."

AI와 교감한다는 이야기는 다소 생소하다. 고전 명작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외형의 AI 기계들와 싸우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는 토니 스타크와 인간처럼 소통하지만 정서적 교감과는 거리가 멀다.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라는 독특한 세계관은 "'인공지능'과 '관계'의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라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서 그리움을 해소한다는 가정이 대체 무슨 소린가 하는 분들도 있을 거 같아요. 대부분 AI를 다룬 영화는 AI와 싸우거나 대척점에 서잖아요. 저는 AI와 공생하는 삶이 금방 올 것 같았죠. '사랑하는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해서 계속 살고 있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이 조금은 관념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진짜 우리 이야기처럼 느끼게 하려면 우리 과학 기술과 속도가 맞아야 할 거 같았어요.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게 영상통화이기 때문에 이걸 중심으로 완성해보자 싶었죠. AI 관련해서 과학기술 자문을 많이 받았어요. 데이터는 보통 숫자, 기호로 표현되지 마련인데 테이터를 입자로 표현하는 방식이 많이 연구가 되어 있더라고요. 이 세계가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테이터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보자 싶었어요. 러브 스토리도 아니고 가족 드라마도 아닌 관계의 총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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