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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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베이비 붐 세대’의 대명사로 불리는 ‘58년생 개띠’다. 통계에 따르면 1958년에는 출생아가 10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동네와 학교에는 늘 친구들이 많았다. 학급당 학생 수가 60명에 가까웠다. 좁은 교실에 짝꿍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은 우리는 책상을 나눠 써야 해서 책상에 선을 그어 넘어오지 말라고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즐거웠다. 하교하고 나서 집에 가방만 던져놓고 어머니가 “밥 먹어라!”라고 부르실 때까지 친구들과 함께 하루 종일 뛰어다니며 신나게 노느라 바빴다.

하지만 요즘은 동네에도, 학교에도 아이들 수가 많이 줄었다. 지난해 출생신고를 한 신생아는 25만 명 가량으로 1958년보다 약 4분의 1정도 감소한 것을 볼 수 있다. 놀이터 옆을 지나가도 빈 그네만 바람에 흔들리고, 뛰어노는 아이들이 없어 적막함을 느낄 때가 많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지난 8월 말,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명을 기록했다. 작년 4분기에도 0.7명을 기록한 적이 있다. 연도별 합계출산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출생아 수는 하반기에 더 줄어드는 경향을 보여 0.6명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경제협력개발기구인 OECD 가입국 38개국 중 유일하게 1명도 되지 않는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최저 출산율이다. 이 추세로면 불과 10년 내에 노동력 부족과 저성장 쇼크로 인한 ‘인구 디스토피아’ 한국의 암울한 모습이 펼쳐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층의 결혼과 출산 기피 현상마저 심해지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10년(2012~2022년)간 19~3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 비율은 2022년 36.4%로 10년 전(56.5%)보다 20.1%포인트 감소했다. 결혼 후 아이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 비율은 53.5%로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18년(46.4%) 이후 최고점을 찍었다.

초저출산 국가가 된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는 늦어지는 결혼 시기와 낮아지는 결혼율, 취업과 내집마련, 양육 비용 등에 대한 경제적 불안정, 끝없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20~30대에게 만연하게 자리 잡은데 그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또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노동 환경,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적으로 부과되는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이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생존이 걸린 불안정한 세상에서 결혼과 출산은 추후의 문제인 것이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2023년 청소년통계 발표' 자료에서는 1983년 1419만 6000명이었던 청소년 인구는 2060년에는 총인구의 10.7%인 454만 5000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80년 동안 청소년은 3분의 1 토막 이하로 줄어든다는 예측이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빠르게 초고령사회에 들어서 생산가능인구(15세~65세) 1명이 노인(65세 이상)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인구절벽 시대가 올 수 있다며 경각심을 일깨운다.

그동안 정부는 '일하며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육아에 대한 다양한 대책들을 마련해왔다. 그중 일하는 부모의 육아지원 강화를 위해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확대와 재택근무 확산 등은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행된 '3+3 부모육아휴직제'와 '육아휴직급여 소득대체율 인상' 등이 남성 육아휴직자 수 증가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분석한다.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2001년 단 2명이었지만, 2022년 전체 육아휴직자(13만 1087명) 중 28.9%(3만 7885명)에 해당해 사회인식도 많이 변화되었다고 보여진다.

지난달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정부와 여당은 내년 예산안에 저출산 대응 예산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당정은 가정의 아이 돌봄 부담 완화를 위해 부모급여지원금을 0세 아동의 경우 70만원에서 100만 원으로, 1세 아동의 경우 35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또한 정부는 육아휴직 사용 기간을 현재 12개월이지만 향후 최대 1년 6개월까지 쓸 수 있게 하고 부모 모두 쓸 경우 아이 1명당 최장 3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늘렸다.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자녀 연령도 8세에서 12세로 높이고 지원 기간도 주 5시간에서 주 10시간까지로 확대했다. 중소기업 사업주가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 근로자의 업무를 분담하는 동료 근로자에게 보상하는 경우 월 20만 원을 지원하는 등 새로운 제도도 신설했다.

이러한 출산·육아 예산의 확대는 부모가 함께 아이를 돌보는 맞돌봄 문화를 확산하고, 육아제도 활용도가 낮은 중소기업 근로자 지원에 힘을 보태겠다는 정부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 영유아를 둔 가정의 경제적 부담이 조금이나마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합계 출산율이 1.08명으로 떨어졌던 2005년 이후부터 정부는 많은 예산을 들여 출산율 견인을 위해 노력했지만,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제 보다 전폭적인 지원과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출산비 지원, 신생아 출산 시 출산장려금 지원, 자녀 양육비 지원 등의 경제적 지원뿐만이 아니라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함께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지원해주는 사회적 통념이 자리 잡아야 한다.

미국과 독일의 경제학 교수가 유럽의 출산율을 연구한 논문 '아기를 둘러싼 협상'(Bargaining over Babies)을 살펴보면 출산율이 낮은 국가들에서는 공통적으로 남성의 육아 참여가 적거나 여성이 육아를 전담한다는 사실, 말하자면 '독박육아' 현상을 발견했다.

이 경우 남성이 재출산을 원하더라도 여성이 거부할 확률이 높은 반면, 출산율이 높은 국가는 남성이 더 많은 육아를 분담하고 있었다. 논문에서 제시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제안은 전체 육아비용을 낮추기 보다 여성의 육아비용을 낮추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건 여성이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와 육아 환경 문제는 가정 내에서의 남녀 간의 공정한 가사 분담, 일·가정 균형을 지향하는 직장문화와 돌봄 관련 제도와 공적 서비스 제고를 통해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남성의 육아분담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 뿐 아니라 의식의 개선 또한 반드시 요구된다. 어린 자녀를 둔 ‘아빠’의 야근과 출장, 근로 시간을 줄여주고 가사와 육아를 함께할 시간을 준다면 양육 환경의 질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현상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통 과제로 저출산 문제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모두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를 들썩이게 했던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의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영상은 우리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우리나라 작년 합계 출산율 ‘0.78’을 보고 이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포용도 여유도 없는 사회에서 세계 출산율 꼴찌라는 오명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뛰어노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출산율이 올라야 대한민국이 산다. 또 한 번의 베이비 붐을 일으켜보자.

● 손연기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1958년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그후 미국 유타주립대에서 사회학과 학사를 거쳐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학과장을 거쳐 한국정보문화센터에서 소장으로 근무했다. 특히 한국정보문화진흥원(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원장을 연임한데 이어 ICT 폴리텍대학 학장 과 행안부 산하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원장도 역임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는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과 한국정보통신보안윤리학회 회장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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