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탄소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인류가 공업화를 통해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구를 덮어 기온을 올리고 기상이변을 야기한다는 이론은 오늘날 당연시된다.

확실히 산업화 이전에 비해 현재 지구의 평균 기온은 1.1도 높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농업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1987년 제네바에서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IPCC)가 결성됐고,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채택됐다.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는 국가 간 이행 협약으로, 구체적인 실행계획서인 셈이다.

여기서 지정된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수화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유황 등 6가지다. 이 중 이산화탄소가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탄소’가 온실가스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37개 선진국이 의무감축 대상국가로 지정됐고,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제외됐다.

그러나 재래식 산업을 중시하는 공화당의 반대로 미국은 교토의정서의 의회 비준을 받지 못한다. 그러다 2015년 파리에서 열린 ‘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파리협정’이 체결된다.

환경을 중시하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했다.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한다는 목표가 설정됐다. 개도국도 예외 없이 감축 대상에 포함됐고, 자발적으로 ‘감축목표’(NDC)를 제출하도록 됐다.

2020년부터 5년마다 상향된 목표를 제출하고, 정기적으로 이행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 탈퇴하더니, 조 바이든 정부가 다시 가입하는 등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이 협정은 상당한 구속력을 가질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감축 목표는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의 26.3%를 줄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21년 10월 목표치를 40%로 올리고, 2050년까지 ‘탄소제로’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탄소제로는 탄소 배출과 포집을 합쳐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뜻이다.

이러한 목표치가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성화하기 어려운 산악 지형을 장애 요인으로 꼽는다. 또한 신재생에너지는 전기의 안정적 공급이 어려우므로 다른 나라에서 전기를 사오거나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또는 원전의 도움이 필요하다.

모두 만만치 않은 대안이다. 제조업 강국이자 신재생에너지 모범국인 독일은 육로로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할 수 있지만, 사실상 고립된 섬인 우리는 불가능하다. ESS의 대규모 설치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원전은 오랜 건설 기간, 조 단위의 건설 비용,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현 정부는 신재생에너지보다 원전을 온실가스 감축의 주요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기존 30.2%에서 21.6%로 대폭 낮추고, 원전 비중을 23.9%에서 32.8%로 크게 올렸다.

이와 함께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책이 철회되고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반대로 기존 원전의 사용 기간 연장, 신규 원전 건설 추진 등 원전의 비중을 높이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은 방사능 유출의 우려를 높이며, 신규 원전 건설은 계획 확정부터 준공까지 25년이 걸려 온실가스 감축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방사능 폐기물 처리에 대한 물리적, 법적 준비가 부족하다. 현재는 원전 부지 내부의 습식 저장 시설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으나 곧 포화될 전망이다.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시설(방폐장)의 건설은 특별법이 필요하다.

원전에 대한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법 제정이 원만하게 이뤄질지 의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의 확산을 억제한다면 우리가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감축 목표는 국가 간 약속이며 국제기구에 의해서 강제된다.

더구나 유럽연합(EU)에서는 2021년 탄소국경세를 도입해 탄소를 무역 장벽으로 활용하고 있다. EU로 수입되는 제품 중 자국산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제품에 대해 배출량 차이만큼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일종의 관세인 셈이다.

올해 10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철강·알루미늄·비료·전기·시멘트·수소제품 등 6개 품목의 수출에 대해 탄소 배출량을 고지해야 하고, 2026년부터는 탄소국경세가 부과된다. 인증서의 가격은 EU의 탄소배출권 가격과 연동될 것으로 보인다.

탄소 배출의 감소가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있음에도 우리의 감축 계획은 구체성과 강제성이 결여돼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고 있다. 정부가 매년 기업의 탄소 배출 총량을 정해 배출권을 할당하고 배출권이 모자라는 기업은 남는 기업에서 사서 충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은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도 있고 배출권을 시장에서 살 수도 있다. 비용이 적게 드는 쪽을 선택함으로써 효율적으로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의 가격 기능이 잘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상향 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배출권의 가격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톤당 가격은 2019년 2만 9126원에서 지난 6월 말 1만 2148원까지 내려갔다. 이에 반해 EU의 8월 15일 가격은 톤당 86.97유로(약 12만 6900원)에 이른다. 이렇게 가격이 싸니 온실가스 감축의 유인이 생길 리 없다.

일차적으로는 배출권 할당이 너무 느슨하게 이뤄지고 무상할당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배출권 이월에 대한 제한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어떤 기업이 100톤의 공급 여력이 있고 이 중 10톤만 판매한다면 단지 10톤만 내년 할당량으로 이월할 수 있다. 나머지 80톤은 소멸되는 것이므로 기업은 헐값에 배출권을 팔게 된다.

이러한 조치는 시장의 유동성을 높이고 배출권 가격을 낮춰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상향 조정에 따라 배출권 총 공급량은 급격하게 줄어들 전망이며, 이에 따라 배출권의 가격도 급등할 전망이다. 따라서 배출권 이월에 대한 제한을 줄이고 가격이 급등락하지 않도록 시장 안정화 조치 도입이 필요하다.

탄소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정책이 기존 산업의 보호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국내 기업들이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제도는 강제성을 가져야 하며 정책은 현실적이어야 할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