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하원의장 대만 방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앞두고 양국간 공방은 더욱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8일(현지시간) 전화 통화에 나섰지만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충돌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양국 관계는 더 악화돼 최악의 군사적 갈등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두 정상은 이날 2시간 17분간 통화했다. 바이든 취임 후 벌써 다섯 번째 통화다. 지난달 고위급 외교회담 이후 예고됐던 대화다. 우크라이나 사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겹치며 미국은 중국과의 협의가 필요했다. 이번 대화가 이뤄진 배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오는 11월 중간선거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바이든의 해법은 외치였다. 우선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만났다. 유가를 끌어내리기 위해 인권 우선이라는 기조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더 이상 사우디를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 주석과의 대화도 비슷했다. 인플레 차단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시행한 중국산 상품에 대한 수입관세 부과 완화 조치를 만지작거리는 상황에서 시 주석과의 협상이 필요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완화하기 위해 시 주석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견제도 필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을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갈등만 부추긴 꼴이다. 그 배경에는 대만이 있다. 미국이 대만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며 중국을 자극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양국 관계 진전이 있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계획이 공식화되기도 전부터 강력 반발하면서 경고하고 있다.

미국 언론은 물론 중국 언론들도 이번 두 정상의 대화가 충돌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현 상태를 일방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나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려는 것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대만 정책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미국도 지지하고 있으며 미국도 대만관계법을 수정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이는 미국의 정책이 달라지지 않고 있으니 중국도 함부로 현상을 뒤바꿀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 주석은 물러나지 않았다. 사상 초유의 3연임을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이 대만에 다가서는 것을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 당국자가 대만을 방문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 미국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 출범 후 상원의원, 장관이 대만을 방문했다. 중국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권력 서열 3위인 집권당 하원의장이다. 불만이 폭발하는 상황이다. 시 주석의 3연임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는 것을 시 주석에 대한 직접적인 견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인 배경과 반도체 공급망 차원에서 대만을 적극적으로 감싸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은 미국에 오판하지 말라는 경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 주석은 "우리는 대만 독립과 분열, 외부세력의 간섭을 결연히 반대하며 어떤 형태의 대만 독립 세력에게든 어떤 형태의 공간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국의 국가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결연히 수호하는 것은 14억여 중국 인민의 확고한 의지"라며 "민심은 저버릴 수 없으며,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고 말했다.

양측의 회담 결과 발표 후 백악관 고위당국자는 “두 정상이 대만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 직접적이고 격정적으로(direct and hot) 대화했다”고 전했다.

실무회담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있었지만 두 정상이 서로 할 말을 다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대만 문제에 대한 논쟁 속에 중국산 제품 관세 인하에 대한 진전된 논의는 뒷전이었다. 정치 이슈가 경제 이슈를 뒤덮은 셈이다.

당국자는 그럼에도 중국이 공세의 수위를 높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 주석이 언급한 불장난은 지난해 11월 화상 정상회담서도 나왔던 표현이다. 이번 통화에서 더 자극적인 표현이 없다는 점은 중국도 더 이상의 긴장 악화까지는 원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

미국도 이번 통화를 통해 양국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두 정상간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길인 만큼 그 끈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악관은 두 정상이 대면 정상회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 방문을 아직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실제 방문에 나서면 군사적 긴장감은 악화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 방문을 차단하기 위해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다만 이는 극단적인 수순인 만큼 군용기 비행을 확대하는 수순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미국도 항모전단을 대만 인근에 파견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서 맞설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영화 ‘탑건’처럼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F-35 전투기와 중국의 최신예 전투기가 대만 인근 상공에서 맞서는 최악의 긴장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중국 강경 입장을 대변하는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장은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중국 국방부가 저우언라이 전 총리가 6·25 전쟁 당시 미군의 북진에 대해 경고할 때 썼던 것과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펠로시의 선택에 따라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미 행정부도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펠로시 의장 측에 대만 방문에 대한 위험성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펠로시 의장도 아직은 방중 일정을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27일에도 “나에게 위험할 수 있어 대만 방문 계획을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펠로시 의장은 그레고리 믹스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등에게 대만 방문 동행을 요청하는 등 강행 의지를 굳히지 않고 있다. 다만 미 의회 일각에서는 펠로시 의장이 대만 방문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시선도 있다.

미 의회는 여야를 불문하고 대 중국 강경 행보를 보여 왔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주석이 통화한 날 하원은 중국 견제를 위한 반도체 지원법인 ‘반도체 및 과학법’을 가결시켰다. 이미 상원을 통과한 이 법은 하원 의결을 거쳐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 효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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