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산유국 단체인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OPEC+)가 원유 감산을 결정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며 유가가 하락한 데 대한 대응책이다.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 미국은 이번 조치가 반갑지 않다. 인플레이션 하락과 러시아의 반사이익을 줄이기 위해 유가 하락을 유도하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입장 역시 난처해졌다.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목전에 두고 기후변화 대응을 내세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처리와 유가 하락을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적신호가 켜졌다는 평가다.

지난 6일(현지시간)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69센트(0.79%) 상승한 배럴당 88.45달러에 마감했다. WTI는 산유국의 감산 소식의 여파로 나흘간 11%나 올랐다.

OPEC+ 산유국들은 지난 5일 11월부터 산유량을 하루 200만 배럴 줄이기로 결정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줄였던 생산량을 조금씩 늘려오던 중 다시 대규모로 줄여버린 것이다. 감소폭은 코로나19 이후 최대다.

OPEC+의 결정은 미국발 금리 인상이 전세계 정세를 뒤흔들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유가 하락에도 미국 인플레이션이 주택임대료를 중심으로 치솟으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벌써 세 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급격한 미국 금리 인상은 경기침체 우려로 이어져 왔다. 경기 침체가 벌어져도 인플레이션 잡기가 우선이라는 연준의 인식은 시장을 강타해왔다. 이는 유가와 무관하지 않다. 경기 침체는 유가 하락 요인이다. 금리 인상이 달러 가치를 끌어올리면 달러로 거래되는 원유값은 하락하기 마련이다. 산유국들은 미국이 유발한 유가 하락 요인에 대응한 셈이다.

미국은 외교 경로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에 감산 추진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유가가 달러 강세와 경기 침체 우려로 60달러 대로 하락할 경우 정부 예산이 구멍이 날 수 있다고 버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가를 낮춰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유가를 방어해야 하는 사우디의 입장이 정면충돌한 것이다.

유가 상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이다. 인플레이션 급등의 핵심 요인인 유가 하락을 위해 동분서주했고 효과를 보는 듯하던 상황이 반전하면서 정치적 위기 가능성이 고조 중이다. 

이미 미국 주유소 휘발유 값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휘발유 재고가 감소한데다 수요도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 탓이다. 미국 자동차협회(AAA)가 조사한 전국 휘발유 평균값은 갤런당 3.86달러다. 최고점인 지난 6월 5.01달러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다시 4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이번 가격 인상을 주도한 것이 사우디라는 점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을 이유를 내세우며 사우디와의 관계에 선을 그어왔다. 전통적인 우방과의 관계도 인권을 앞세운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소신에 밀렸다.

바이든 대통령이 소신을 꺾고 지난 7월 전격적으로 사우디를 방문하면서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왔지만, 소문뿐이었다. 사우디는 바이든의 대규모 증산 요청을 거절한 데 이어 이번에는 대규모 감산으로 되받아쳤다. 미국과 사우디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상황이다.

백악관은 OPEC+이 감산 방침을 접하고 산유국들을 압박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특히 유가 상승 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비 마련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더욱 뼈아프다. 

마침 이번 OPEC+의 감산 결정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적용을 뼈대로 하는 유럽연합(EU)의 8차 대러 제재 합의 직후 발표됐다는 점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OPEC+의 감산 조치가 바이든 대통령의 등을 찌른 것이라고까지 표현했을 정도다.

당장 한 달 후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에게는 불똥이 떨어졌다. IRA를 앞세워 지지 세력을 중심으로 세몰이에 나서며 중간선거 승리를 기대했지만 엉뚱한 복병이 등장한 것이다. 

지난 7월 37%까지 하락했던 바이든의 지지율은 유가 하락과 IRA 처리에 힘입어 43%까지 상승하며 중간선거 승리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남기고 있었다. 당초 공화당에 상·하원 다수당 자리를 모두 뺏길 수 있다는 암울한 상황에서 조금씩 희망이 보이던 상황에서 유가 상승이라는 복병이 등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의회와 협력해 OPEC의 에너지 가격 통제권을 약화하는 반(反) OPEC 법안으로 알려진 ‘석유생산수출카르텔 금지’(NOPEC)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아울러 국제 유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1000만배럴 규모의 비축유 방출을 발표했고 세계 2위 원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 완화 등의 조치도 대응 차원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베네수엘라 제재 완화는 연초부터 꾸준히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 OPEC+의 감산 결정이 친 사우디 정책을 수정해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유가 하락을 위해 석유류 시추 확대를 추진하기도 애매하다. IRA를 통해 기후 변화 대응을 시작한 상황에서 진보 세력이 반대하는 화석연료 자원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 바이든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대마초 단순 소지에 따른 모든 연방 범죄 사면, 학자금 대출 탕감 등 혁신적인 조치들도 덩달아 빛을 잃을 처치다.

러시아의 핵공격 위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이 맞물리는 가운데 중간선거까지 미국 정국을 겨냥한 국제정세의 혼란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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