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명백하고 분명한 위협’(clear and present danger).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인플레이션 급등과 이를 막기 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과 향후의 전망에 대해 이같이 표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정상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여파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이 미국을 비롯해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해법 모색이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코로나19에 비해 더 오랜 기간 인류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의 경제 정책과 비즈니스 형태가 완전히 달라질 것임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연준이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75%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결정한 것은 일종의 타협이었다. 인플레이션이 41년 만에 8.6%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 인상의 보폭을 넓히는 것이 당연했다. 

올해 들어 0.25%포인트, 0.5%포인트에 이어 0.75%포인트까지 인상 폭이 커졌다. 그래도 ‘울트라 빅스텝’(1%포인트) 인상은 없었다. 일각에서는 선제적인 인플레 차단을 위해 1%포인트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연준의 선택지는 예상을 넘지 않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0.5%~0.75%포인트 인상을 전망했다. ‘비둘기 파월’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막대한 유동성을 살포한 데 이어 지난해 인플레가 일시적이라고 주장하는 실수를 했음에도 여전히 급격한 금리 인상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파월은 여전히 물가를 잡을 수단과 결의가 있다고 호기를 부렸다. 시장은 환호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연준에 불리하다. 고용에 집착하다 역사적인 인플레이션 차단을 하지 못하는 실수를 한 데 이어 금리 정상화가 급격하게 이뤄질 경우 경기가 추락할 가능성이 큰 탓이다.

시장의 반응도 오락가락한다. 연준의 금리 인상 당일 급등했던 미국 증시는 다음날 바로 급락 반전했다. 경기 침체 우려 때문이다.

금리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지출 여력이 감소하는 상황은 미국 경제 둔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소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2인 미국 경제 구도 상 당연한 일이다. 

민주당 측 인사이면서도 조 바이든 행정부의 부양책과 연준의 통화 정책을 비판해온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부 장관은 향후 1∼2년 이내에 경기침체에 직면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는 경기 침체가 없을 것이라는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의 입장과 상반된다. 

바이든 대통령도 모처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경기침체가 불가피한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주장을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미국 주택시장에서도 이런 상황이 포착된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는 6%대로 치솟았다. 13년 만에 최고치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불과 몇 달 만에 두 배 수준이 됐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제로 금리를 바탕으로 리파이낸싱과 신규 주택 구입 열기가 미국 부동산 값을 치솟게 했지만 이제는 부동산 시장에 신규 자금 유입이 어렵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미국 신규 주택 착공이 5월에 15%나 급감하는 상황도 변곡점이 지났음을 시사한다. 파월 의장도 주택 구입에 대해 기다리는 게 나을 것이라는 이례적인 경고의 목소리를 냈을 정도다.

금리 인상과 경기 후퇴 우려는 전 세계적인 고민거리다. 연준의 결정 이후 영국 중앙은행(BOE)과 스위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렸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15년 만에 처음 0.5%포인트 인상에 나섰다.  BOE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BOE는 작년 12월 이후 5차례 연속해서 금리를 올렸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 9일 기준금리를 7월에 0.25%포인트 인상하고, 9월에도 재차 인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각국중앙은행의 임무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완전히 돌아섰다.

'세계 경제 대통령' 파월과 그 전임자인 옐런이 정책 실기를 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과거의 시각에서 현재 위기를 대응하면서 실수를 했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경제 위기와 달리 급격한 수요 증가로의 전환과 공급망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 압력 심화와 같은 상황을 계산에 두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과거의 처방전으로 전대미문의 상황에 대응하려다 일을 그르쳤다는 설명이다. 

정치권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 민주당은 바이든 정부 출범 후 국민들에게 현금을 연이어 지급했고 이는 비정상적인 수요 확대를 부추겼다. 진보 진영의 입장을 반영해 급격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며 에너지 시장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사회인프라 개혁 정책도 부담이 됐다.

한국 경제도 적신호가 들어왔다고 봐야 한다. 트라우마도 있다. 1990년대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은 동남아 외환위기의 발단이 됐다. 급격한 자본 유출에 직면한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빌려야 했다. 

이미 원달러 환율은 1290원대까지 치솟았다. 환율은 국가의 위기 수준을 반영한다.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연일 주식을 팔아 치우고 있다. 한국 산업의 자존심 삼성전자는 '5만전자'로 전락했다.

주요 7개국(G7) 급으로 격상된 우리 경제의 위상과 한미간 경제 안보 협력 강화에 따른 통화스와프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한국만의 위기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5월 현재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4470억달러에 이른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연쇄 작용을 일으킬 경우 상황은 언제든 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인플레이션 차단에 성공하고 향후 경기 부양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은 우리 경제에 희망적이다. 중국의 올해 경기 부양 투자 규모가 5조 3000억달러(약 6718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경제는 생물이다. 어느 한쪽이 차면 다른 쪽은 기울기 마련이다. 위기 속에서도 기회는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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