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전용 추진에 한문 추종자들 끊임없이 반발...헌법재판소에 두 차례나 위헌소송 제기

교과서 한자 병기 반대 시위에 나선 한글 관련 단체 회원들. 사진=한글문화연대
교과서 한자 병기 반대 시위에 나선 한글 관련 단체 회원들. 사진=한글문화연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쓰기 쉬운 문자로 꼽히는 한글. 그러나 최근 몇 년 전까지도 법정에 설 수밖에 없는 '수난의 역사'를 거쳐왔다. 뿌리 깊은 한자 애용론에 가로막혀 공문서와 교과서에 한글 표기를 규정한 한글전용 정책은 두 번이나 헌법 소원이 청구되기도 했다. 잊을 만 하면 고개를 드는 한자 애용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특히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자는 논란은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줄곧 불거져왔다. 해방 직후 당시 조선어학회로 불리던 한글학회는 한글 쓰기 운동을 꾸준히 벌여왔다.

이에 1945년 11월 ‘한자 사용을 폐지하고 초·중등 학교의 교과서는 전부 한글로 하되, 다만 필요에 따라 한자를 도림(괄호) 안에 적어 넣을 수 있음’이라는 결의문이 채택됐다.

당시 미 군정청은 결의문에 따라 교과서, 공문서 등에 한자를 폐지하고 모든 글은 가로쓰기 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1948년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1948년 제정 '한글전용법' 유명무실

2005년 '국어기본법'으로 법률 대체

그러나 다음해인 1949년 11월 국회의원 25인은 ‘교과서 한자 사용 건의안’을 발의했다. 이 건의안은 가결됐고 1950년 문교부는 국민학생에 가르칠 1000자를 ‘교육 한자’로 지정하기도 했다. 1951년 한글 학자 최현배 한글학회 문교부 편수국장에 취임하면서 교육한자는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의 괄호 안에만 넣게 됐다.

하지만 10여년이 흐른 1963년 문교부는 국민학교 4학년 이상 국어과 교과서에 약 600자, 중학교에서 약 400자, 고등학교에서 약 300자 모두 1,300자의 상용한자를 단계적으로 교육하도록 했다. 1965년부터는 국어과 교과서에 국·한문 혼용이 실시됐다.

한글 학계는 거세게 반발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1968년 10월 25일 ‘한글전용 촉진 7개 사항’을 발표했다. 주요 사항은 ▲행정, 입법, 사법의 모든 문서뿐만 아니라 민원 서류도 한글을 전용하며 구내에서 한자가 든 서류를 접수하지 말 것 ▲1948년에 제정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1970년 1월 1일부터 전용할 것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앨 것 ▲고전의 한글 번역을 서두를 것 등이었다. 이에 1970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글 전용이 확립됐다.

그러나 20여년 후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단체들은 1992년 2월 10일 ‘한글전용 초등국정교과서 편찬지시처분’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한자 역시 우리 민족의 고유글자 가운데 하나여서 한글만 쓸 수 있도록 한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후에도 헌법소원은 이어졌다. 2012년 학부모와 대학교수, 한자·한문 강사 등 333명 등이 참여한 ‘어문정책정상화위원회’는 국어기본법이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며 또다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한자와 한글을 함께 사용해 왔던 만큼 국·한문 혼용은 관습헌법으로 굳어져 있다는 주장이었다.

국어기본법은 2005년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대체하는 법률로 제정됐다. 국어기본법에는 우리말과 글에 대한 정의와 규정, 한글전용 및 한글날에 대한 근거규정이 포함돼 있다.

국어기본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공용어인 한국어’를 ‘국어’로, ‘한글’을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고유의 문자’로 규정하고 있다. 또 제14조는 공공기간에서 작성하는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하도록 하고 있고, 제18조에는 교과서 역시 한글전용 규정에 맞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한자와 한글을 함께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이같은 주장을 펼쳐 온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가 헌법 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일부 식자층, 국어기본법 위헌 소송

헌재,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

무려 4년에 걸친 재판 끝에 2016년 11월24일 헌법재판소는 국어기본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은 공문서를 통해 공적 생활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자신의 권리 의무와 관련된 사항을 알게 되므로 국민 대부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로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자어를 굳이 한자로 쓰지 않더라도 앞뒤 문맥으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전문용어나 신조어의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나 외국어를 병기할 수 있으므로 의미 전달력이나 가독성이 낮아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당시 한글문화연대는 “한글 전용의 정당성을 밝힌 역사적 판결”이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한글문화연대는 헌재 판결의 의미를 세 가지로 해석했다.

첫째는 일부 식자층 위주의 말글살이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알 권리’를 보호하는 말글살이가 중요하다는 ‘언어 인권’ 정신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림을 뜻한다. 둘째는 우리 한민족의 문자 역사가 19세기 말부터 대략 100여년의 과도기를 거쳐 한자 시대에서 한글 시대로 완벽하게 옮아왔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나친 한자 숭상론이 더는 우리 교육을 망가뜨려선 안 된다는 주장의 올바름을 확인해준 것이다.

합헌 판결 이후에도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자는 움직임은 계속돼 왔지만 2018년 교육부가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방안 백지화를 밝히면서 지난한 싸움은 일단락됐다.

당시 교과서 한자 표기를 반대해 온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는 “늦게나마 교육부가 잘못된 정책임을 인정하고 폐기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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