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포화를 피해 수단 국경 근처로 몰려든 수단의 피란민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전쟁의 포화를 피해 수단 국경 근처로 몰려든 수단의 피란민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몇 년 전 수단에서 근무한 외교관과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 외교관은 수단에서 생사를 넘나들었던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다. 눈앞에서 폭탄테러도 목격했다고 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던 그의 얼굴에는 상당한 충격 때문이었는지 긴장이 묻어났다.

그의 말은 지금 현실이 됐다. 지난 한달여 사이 수단에서는 군사적 충돌로 민간인들이 500명 넘게 희생됐다. 수단은 2019년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가 축출되면서 새로운 길을 갈 것으로 기대됐지만 오히려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내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급격한 상황 전개에 전 세계 각국이 자국민과 외교관을 철수시키기 위한 작전을 해야 했다. 우리 교민들도 정부 지원 속에 무사히 빠져나왔다. 

작금의 상황은 국제사회가 지역분쟁 해결 능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되고 있다. 미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도 각자의 이익과 갈등 구도 속에 수단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기에는 힘이 부쳐 보인다.

수단의 위기는 단순하지 않다. 지정학적으로 수단의 위기는 언제든 국제적으로 확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시리아 사태다. 내전은 인도적 위기로 끝나지 않는다. 내전을 피해 몰려나온 난민들은 안전한 국가로 피신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국제적 갈등과 사회적 위기가 발생했다.

시리아 사태가 불러온 대규모 난민 사태는 나비효과를 초래했다.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영토가 큰 국가다. 수단의 지리적 위치도 무시할 수 없다. 수단은 아프리카 중부 나일강 물줄기에 위치한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나일강을 따라 주변 국가로 문제가 확산하기 쉬운 구조다.

인구도 4800만명이나 된다. 유럽에 난민 위기를 불러온 시리아의 인구가 약 2500만명이다. 정세가 불안정하고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위치에 있는 수단의 상황을 고려하면 불똥이 인근 국가로 이어지고 아프리카 전반에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불쏘시개로 돌변할 수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수단의 위에는 이집트가 있다. 수단 남쪽엔 에티오피아가, 홍해 건너편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서쪽에 위치한 리비아, 차드공화국도 영향권이다.

수단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다지만 문제는 지속돼 왔다. 앞서 외교관의 증언처럼 사회적 갈등이 오랜 기간 누적되면서 외부의 개입마저도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상태다. 아프리카를 뒤흔들 수 있는 암이 커지는데 메스를 들이대기도 힘들다. 수단에서도 미국과 러시아가 갈등하고 있다는 점은 특히 두드러진다.

시리아 사태는 ‘악동’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의해 주도됐다. 노골적으로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하는 러시아와 이를 제지하려는 미국이 맞섰다. 반면 현재 수단은 정부군과 민병대 신속지원군(RSF) 사이의 갈등이다. 단순한 권력 충돌과는 결이 다르다. 사실상 두 군벌 간의 권력 투쟁과 그로 인한 유혈 충돌이다. 군벌 간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민간 정부 출범은 희망 고문일 뿐이다.

이슬람 국가인 수단에 서방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중동까지 이번 사태를 확산시킬 수 있는 불안 요인이다. 수단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와 밀착해 왔다. 안 그래도 미국과 중동의 관계, 특히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동맹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할 정도인 현재 시점에서 미국이 개입해 이슬람 세력의 분노를 자아낼 소지가 있는 셈이다.

러시아는 수단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해 국제적인 비난을 사고 있는 '바그너 그룹'은 수단에도 오랜 기간 모습을 보여왔다. 미국 재무부는 바그너 그룹의 수장이 수단의 천연자원을 착취하고 영향력을 확대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러시아측은 단번에 이 주장을 일축했다. RSF 측도 러시아의 영향력을 등에 업으려 한다. RSF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러시아를 방문해 바그너 그룹의 지원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겉으로는 바그너 그룹을 내세웠지만, 이면에는 러시아 정부와의 밀접한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재클린 번스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국제사회가 중재를 도출하기 위해 무장단체나 군벌의 이익을 묵과한 것이 현 사태를 불러온 요인이라고 판단했다. 번스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와 바그너 그룹이 수단의 금 채굴권과 금 밀수로 이득을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도 돈줄인 수단을 포기하기 어렵다.

러시아의 지속적인 개입과 달리 미국은 수단에 대해 갈등과 협력을 오락가락했다. 미국은 오마르 알바시 전 정권의 퇴출 1년 후인 지난 2020년 수단을 27년 만에 테러 지원국에서 공식 해제했다.

1990년대부터 9·11 테러의 배후였던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줬던 수단은 미국의 적국이었다. 수단은 재건을 위해 미국의 제재 해제가 필요했다. 미국도 수단이 정략적으로 필요했다. 이슬람과 이스라엘 관계 개선 차원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역사적인 이스라엘과 이슬람의 화해를 꿈꿨다. 이를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부 장관이 직접 수단을 방문해 협상했다. 그리고 테러국 지정은 해제됐다. 수단 측은 당시 역사적인 결정이라며 미국의 조치를 환영하고 수단 민주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당시 수단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이슬람-이스라엘' 관계 개선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미국의 정권교체 이후 아랍권은 트럼프 정부와 추진했던 친이스라엘 정책을 줄줄이 폐기했다. 오히려 갈등의 씨앗만 커졌다.

해법이 쉽지 않은 만큼 국제사회도 구체적인 해법을 모색하기보다는 일시적인 해법인 정전에 천착한다. 복잡한 정치적 파벌과 이익집단을 아우를 수 있는 방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시리아를 보는 시선도 다를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민주 정부 수립을 희망할 것이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자국의 경제, 정치적 이익을 지원할 수 있는 세력의 집권을 희망할 것이 분명하다.

시선이 다르면 해법도 달라진다. 수단에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아프리카 각국의 독재자들도 눈여겨본다. 아랍의 봄이 아프리카로 이어질 경우 대륙 전체가 내전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빠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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