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왼쪽 사진)과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로고. (사진=EPA 연합뉴스 제공)
JP모건(왼쪽 사진)과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로고. (사진=EPA 연합뉴스 제공)

"은행 위기는 거의 끝났다." 위기에 몰린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인수를 전격 결정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의 말이다.

다이먼은 미국 월가의 제왕이다. 미국 금융사 중 최대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JP모건은 또다시 미국 금융계가 나락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냈다. JP모건은 지난 3월 실리콘밸리뱅크(SVB)가 도산한 후 대규모 자금 이탈이 발생한 퍼스트리퍼블릭뱅크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금융보호혁신부(DFPI)는 전격적으로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을 폐쇄하고 JP모건 인수를 결정했다. 그만큼 상황이 긴박했다는 의미이다.

미국에서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제일 먼저 재무부 장관과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전화를 거는 곳이 JP모건 회장실이다. 연이은 활약에 다이먼에게는 '월가의 황제'라는 별명에 이어 '금융위기 최후의 승자'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왜 JP모건일까. 그 이유는 2008년 금융위기는 물론 미국 월가의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다. JP모건은 미국 월가의 산증인이자. 지금의 월가와 미국 금융가를 만들어온 그야말로 터줏대감이면서 막후 실세다. JP모건은 2000년 말, 대표적 상업은행인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흡수합병해 지금에 이른다.

JP모건은 1838년 설립됐다. 1913년에서야 모습을 드러낸 연준보다도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JP모건은 존 피어폰트 모건에 의해 탄생했다. 모건은 1861년 남북전쟁 발발과 함께 뉴욕으로 진출, JP 모건 상사를 설립했다. 무기상으로 큰 돈을 번 존 피어폰트 모건은 1864년 아버지가 설립한 은행을 인수하며 본격적인 투자은행 활동에 나선다.

철광, 철도 분야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JP모건에 위기는 곧 기회였다. 1907년 발생한 금융위기를 주도적으로 해결한 곳이 JP모건이었다. 존 피어폰트 모건은 각 은행 경영자들이 위기 해결에 동참하겠다고 할 때까지 서재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없던 시절 JP모건의 주도하에 미국 금융가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실상 JP모건이 중앙은행이었다. 이때 불거진 중앙은행 필요성이 결국 연준의 탄생을 끌어냈다.

현재 JP모건을 이끄는 다이먼 회장도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존재감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2008년 초 당시 대표적인 투자은행이던 베어스턴스가 붕괴했다. 베어스턴스 도산이 몰고 올 후폭풍을 우려한 미국 재무부와 연준이 도움을 요청한 이가 다이먼이다.

다이먼은 얼마 후 휘청이던 최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도 인수하며 구세주로 나섰다. JP모건에 드리워졌던 '악동'이라는 이미지는 어느덧 사라졌다. 금융위기의 해결사라는 새로운 인식이 JP모건과 다이먼에게 드리워졌다.

다이먼은 베어스턴스 인수 후 후폭풍에 휘말렸다. 비록 업계 1위로 올라서는 계기가 됐지만, 워낙 부실이 컸던 탓이다. 그는 다시는 이런 인수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15년 만에 벌어진 금융위기에서 또다시 해결사로 나섰다. 연준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시작하며 위기의 씨앗을 뿌리며 벌어진 새로운 금융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는 JP모건뿐이었다.

이번 구제의 특징은 관이 주도하기보다는 다이먼에게 민간 주도의 SVB 지원 방안을 만들도록 요청한 것이다. 퍼스트리퍼블릭이 300억달러의 자금을 지원받고도 예금 이탈 등으로 대규모 적자를 내고 주가가 폭락하자 금융당국도 더 이상 조치를 미룰 수 없었다.

월요일 증시가 개장하기 전 결단이 내려졌다. 금융기업의 위기 해법은 매번 월요일 아시아 증시가 시작하기 전 이뤄진다. 급박한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구원자는 JP모건뿐이었다.

JP모건이 금융 당국의 지지 속에 연이어 몸집을 불리면서 우려도 나온다. 너무 몸집이 커지면서 '대마불사' 즉, 위기가 발생하면 정부가 JP모건을 지원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게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초대형 금융사 출현이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더해진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대형 은행 규제가 완화된 상황에서 더욱 몸집이 커진 공룡 은행이 탄생하는 것은 새로운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불안 요인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등 진보성향 미국 정치인들이 다시금 은행 규제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다. 워런은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이 미국에서 가장 큰 은행에 매각된 것은 우리 은행 시스템의 '대마불사'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현 바이든 정부의 의지와는 다를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SVB 뱅크 도산 후 피해를 보게 된 예금주들에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법으로 규정된 보장 한도를 넘어선 약속이다. 재선을 앞둔 상황에서 금융위기가 정권 차원의 관리 대상이 된 셈이다.

반론도 있다. 케네스 맥 하버드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은행 위기 시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 항상 있었다. JP모건의 안정성과 다이먼의 오랜 경험을 고려할 때 미국 정부가 다이먼에게 의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이제 다이먼은 JP모건 왕국을 건설한 존 피어몬트 모건과 같은 수준의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도 다이먼에 대한 신뢰를 보냈다. 버핏은 "다이먼은 내가 그에게 바랐던 국가와 JP모건을 위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다이먼이 안정시킨 미국 은행시스템에는 여전히 위험요인이 도사린다. 다이먼의 선언처럼 위기가 끝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버핏의 오른팔인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은 "미국 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 위기로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위기가 벌어져도 JP모건이 또 해결사로 나설지, 아니면 스스로 위기의 함정에 빠져들지는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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