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첫 출발부터 체면을 구겼다. 미국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출마 선언은 혼란 속에 끝났지만 2024년 미 대선 본선을 향한 여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리틀 트럼프'가 '진짜 트럼프'와의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제 1년의 시간이 남았다.

디샌티스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위대한 미국의 복귀’(Our Great America Comeback)를 내세워 버락 오바마 이후 첫 40대 대통령 후보로 나서 백악관 진출을 노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부상한 보수의 '새로운 피'는 공화당의 정권 탈환을 위해 앞장설 것임을 공언했다. 든든한 우군까지 있었다. 민주당 정권과 각을 세워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리틀 트럼프', '트럼프 2.0'으로 불리는 디샌티스는 반 이민, 반 낙태, 감세 정책을 추구한다. 트럼프의 정책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위대한 미국의 복귀'라는 슬로건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유사하다.

디샌티스는 트럼프의 후광으로 2018년 플로리다 주지사 자리를 차지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디샌티스를 적극적으로 후원했지만, 이는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예일대, 하버드대를 나와 해군 장교로 복무한 디샌티스는 대권 야심을 품으며 트럼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디샌티스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강경 보수 진영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연방정부의 입장과는 다른 디샌티스의 코로나19 대응 정책은 보수 세력의 호응을 샀다. 플로리다주에 도착한 난민들을 뉴욕주로 보내버린 것 또한 보수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그는 지난해 중간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에 압승을 거두며 재선에 성공했고 유력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트럼프가 거주하는 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확인한 것이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존재감이 크지 않던 디샌티스는 이제 전국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거물이 됐다.

플로리다주는 최근 보수 진영의 강세가 특히 두드러진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시를 낭송한 어맨다 고먼의 시집이 플로리다주 한 초등학교에서 금서로 지정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뿐만이 아니다. 플로리다의 한 학교에서는 미켈란젤로 조각상 사진을 학생들에게 보여준 데 대해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교장이 물러나는 일까지 발생했다. 비록 예술품이지만 남성의 핵심 부위를 보여준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에게 청소년 동성애자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준 후 교육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

이는 디샌티스가 유도한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디샌티스는 지난해 3월 유치원과 초등학교 1∼3학년 교실에서 성적 지향 또는 성적 정체성에 대한 수업·토론을 금지하는 '부모의 교육권리법'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보수 성향의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CNN 방송도 학생들에게 인종차별이나 성소수자 등의 논쟁적 주제에 대해 가르치지 말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들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은 디샌티스에게 불리하지 않다. 플로리다는 과거 ‘스윙 스테이트’(경합주)로 불렸다. 플로리다는 미국 대선에서 캘리포니아, 텍사스에 이어 가장 많은 29석의 선거인단이 걸려 있지만,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곳은 아니었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플로리다는 보수로 확연히 기운다. 2020년 대선에서도 트럼프가 바이든에 약 3%포인트 격차로 승리를 거뒀다. 디샌티스는 자신의 표밭에서 트럼프와의 정면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도 디샌티스에 대한 견제를 잊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 소셜 계정을 통해 “내 빨간 버튼(핵버튼)은 더 크고, 더 좋고, 더 강하고, 효과가 있다. 당신의 것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또 트위터 출마 선언이 재앙이라면서 전체 선거운동이 재앙이 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디샌티스는 오히려 트럼프의 비난을 이용해 역공에 나섰다. 디샌티스는 트럼프가 공격에 나선 것은 자신을 이길 수 있는 후보라는 점을 의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디샌티스 지지자들도 출범 선언 행사의 혼란에 대해 너무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물론 아직은 디샌티스가 트럼프와 비교해 지지기반이 약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난 24일 발표된 CNN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및 공화당 지지 성향 유권자 중 53%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1순위 후보로 지지한다고 답했다. 디샌티스 에 대한 지지율은 26%에 그쳤다. 지난 3월 같은 조사에서 두 사람이 접전을 벌였던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다만 디샌티스를 지지하지 않지만 향후 지지 의향이 있다는 응답도 60%나 됐다. 현 상황이 디샌티스에게 마냥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내년 경선의 와중에 트럼프는 성추행 입막음 재판을 치러야 한다.

트럼프와 진보 진영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디샌티스는 출마 선언 24시간 이내에 820만달러의 기부금을 모금했다. 디샌티스가 확보한 기부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19년 선거 운동 개시 직후 24시간 동안 모은 630만달러보다 많다. 이를 보면 디샌티스에 대한 보수 진영의 관심이 확인된다.

다만 디샌티스가 강경 트럼프 지지 세력의 지지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트럼프의 벽은 여전히 높다. 디샌티스의 등장에 보수 진영은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진보 진영이 전폭적인 공세에 나섰다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출마 선언 행사를 트위터를 통해 생중계하려던 계획이 기술적 문제로 큰 차질을 빚은 것에 대해 진보 매체들은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머스크와 트위터의 준비가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분명 많은 청중이 몰렸기에 벌어진 일이다.

정책보다는 이슈를 다룬 보도가 이어졌지만 디샌티스측은 오히려 이를 즐기는 모양새다. 영리한 디샌티스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끌어안기 위한 당근까지 마련했다. 트럼프가 기소될 경우 사면을 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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