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출신인 젠슨 황 미국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5월 30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기술 산업 박람회 컴퓨텍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제공)
대만 출신인 젠슨 황 미국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5월 30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기술 산업 박람회 컴퓨텍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제공)

시가총액 1조달러. 인공지능(AI). 두 단어의 공통점은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다.

과거 컴퓨터, 스마트폰, 자동차에 사용되는 반도체가 중심이던 흐름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AI를 위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엔비디아 덕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도 강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30일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1조달러를 돌파했다. 한 주 전 실적발표에서 깜짝 성과를 내놓으며 24%나 치솟았던 주가가 강세를 이어가며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현재 뉴욕증시에서 1조달러 이상의 시가총액을 유지하는 기업은 한손으로 꼽을 수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모회사 알파벳, 아마존뿐이다. 이들 회사는 본업은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반도체도 설계한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순수한 반도체 설계(팹리스)회사다. 순수한 반도체 관련 업체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한 것은 엔비디아가 최초다.

한때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이었던 인텔도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경지다. 인텔의 시가총액이 1290억달러 선에 그치는 것과 비교하면 엔비디아가 얼마나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을 좌지우지 하는 대만 TSMC의 시가총액 5120억달러와 비교해도 약 2배 가까이 엔비디아가 많다.

엔비디아의 가치는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도 추월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이슈가 된 기업이 애플과 테슬라였다면 지금 전 세계 투자자의 이목은 엔비디아에 쏠린다.

불과 30년의 업력에 불과한 기업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엔비디아는 90년대 말 이후 워크래프트, 디아블로와 같은 PC용 게임 이용자들에게 친숙한 기업이다. PC에서 게임을 하려면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가 필요했다. 이른바 가속 기능이다.

엔비디아의 핵심 사업인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담당했던 그래픽 계산 기능을 처리하기 위해 탄생했다. CPU의 보완재였던 셈이다. 당연히 CPU의 하위 부품으로 통했다. 경쟁자도 많았다. 지금은 AMD에 합병된 ATI, 인텔과도 경쟁했다.

엔비디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젠슨 황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를 빼놓을 수 없다. 황은 대만 출신의 엔지니어다. 미국에서 공부하며 AMD의 CPU를 설계하던 황은 1993년 30세에 창업했다. 올해가 창업 30년이다. 창업 30년의 선물이 시가총액 1조달러인 셈이다.

엔비디아의 변신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단순한 계산에 특화한 GPU의 새로운 용도가 발견된 것이다. AI를 위한 딥러닝(deep learning)에 CPU보다 GPU가 우월하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복잡한 연산을 집중적으로 계산하는 CPU와 달리 GPU는 단순 작업을 동시에 대량으로 하는 방식이 적합했다.

모니터에 보이는 화면을 계산하는 GPU의 이런 특징은 두 가지 결정적인 사용처를 만난다. 가상화폐 채굴과 AI다. 가상화폐 채굴자들은 GPU를 이용했다. GPU 공급이 부족해지며 그래픽카드의 값이 치솟았다. 가상화폐값이 강세를 보일 때마다 그래픽카드는 귀한 몸이 됐다.

CPU만큼 강력한 한방을 가지지 못한 엔비디아는 GPU 생태계 확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했고 AI에서 답을 찾았다. 애플이 모바일 칩에서 강세를 보이는 동안 차근차근 준비한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AI의 혜택은 가상화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엔비디아가 생산하는 AI 계산용 칩인 A100, H100를 사용한 장비는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챗GPT 학습에는 이런 칩이 수천, 수만개가 사용된다. 일리야 수츠케버 오픈AI 창립자 겸 CEO는 GPU가 챗GPT를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가 AI라는 공을 쏘아 올렸다면 엔비디아와 황은 AI의 최대 수혜주다. 챗GPT도 엔비디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누가 더 AI 발전에 기여했는지는 구분하기 어렵다.

항상 검은색 가죽 점퍼를 입고 다니는 황 CEO는 최근 AI의 전도사로 나섰다. 지난 3월에는 AI의 아이폰 시대가 열리고 있다면서 "생성형 AI가 모든 산업을 재창조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예언대로 챗GPT는 단 몇개월 만에 성능이 대폭 향상됐고 엔비디아는 기대 이상의 실적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황의 예언은 점점 더 구체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말 국립 타이완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AI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도태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AI에 대한 우려를 고려한 듯 “AI에 능숙한 사람의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컴퓨텍스 행사 기조연설에서는 AI가 최고의 선생님이라면서 "누구나 AI로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황이 대만 출신이라는 점은 현재의 반도체 생태계에서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대만계 미국인인 만큼 미국, 대만 정부는 물론 반도체 생산업체인 TSMC와 다양한 대만 기업과의 협력이 용이하다.

반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에도 응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중국 수출을 규제했다. 대만에서 AI 용 반도체가 지속해서 생산되는 상황은 미국에도 부담이다.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비한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유도하고 있다.

황은 반도체 수출 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독자 기술 개발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가 이번 대만 방문 중 중국에 대한 경계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황은 "중국에서 GPU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우려의 시각을 내비쳤다.

한국도 엔비디아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전자도 엔비디아의 GPU를 생산했지만 AI 용 핵심 칩은 TSMC가 전량 맡았다. 한국 반도체는 AI 후광으로 인한 메모리 칩 수출 확대 외에 AI 칩 생산을 할 수 있어야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다.

이미 황은 TSMC와의 협력이 공고하다고 밝혔지만, 삼성전자와 TSMC와의 경쟁에서 뒤진 인텔을 통한 생산에는 긍정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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