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미국 물가 하락세가 이어지며 금리 인상 기조를 멈췄지만 추가 인상 가능성도 남겼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모습을 모두 보이며 경제 상황에 따라 어떤 쪽으로도 움직일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연준의 결정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각국 중앙은행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연준 의장은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말이다. 연준의 수장인 의장은 물론 핵심 관계자들의 입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등 1980년대 이후 의장들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각종 경제 위기에 맞서 싸우면서 다양한 화법을 구사했다.

제롬 파월 현 의장도 다르지 않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는데 방점을 찍은 파월 의장은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선제적 가이던스 면에서는 어느 의장보다도 자세한 전망을 내놓곤 했다. 물론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파월은 마침내 연준이 금리 인상 행보를 중단했음에도 의외의 발언으로 시장 참여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연준은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연 5.0~5.25%로 동결했다. 물가 급등 우려에도 고집스럽게 유지해온 제로금리 정책을 버리고 작년 3월부터 시작한 10번 연속 금리 인상이 멈춘 것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경기 악화가 우려되고 물가도 안정기조를 보이면서 충분히 예상됐던 수순이다.

그러나 언제 금리 인하가 시작되는 지에 대한 베팅이 커져갔던 상황은 이내 뒤집혔다. 추가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는 연준 위원들의 전망 때문이다.

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는 올해 금리가 5.6%에 이를 것으로 제시했다. 지난 3월 점도표의 전망은 5.1%였다. 현 상황에서 0.5%포인트의 '빅스텝' 금리 인상을 하기는 어렵다는게 시장의 중론이다. 자연스럽게 0.25%포인트씩 두번의 인상 가능성이 불거진 셈이다.

올해 들어 시장은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에 주목해 왔다. 미국 국채금리도 꾸준히 하락하며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반영해 왔다. 지난해 4.2%까지 상승했던 10년물 미국 국채금리는 최근 3.3%까지 하락했다. 경기에 민감한 2년물 국채금리도 4.9%대까지 오른 후 안정세를 보여 왔다.

미국 국채 금리가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면서 달러 가치도 방향을 바꿨다. 지난해 113까지 올랐던 달러 지수는 지금 101선으로 내려왔다.

연준은 지난 5월 FOMC성명서에 ‘추가적 정책 긴축이 적절할 수 있다’는 문구를 삭제하며 더 이상의 추가 금리 인상은 없다는 인식을 키웠다. 연준이 ’스톱‘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연준은 다시 ‘고’(GO) 버튼을 눌렀다.

파월의 발언도 달라졌다. 파월은 올해 안에 추가 금리 인상이 적절하며 7월 기준금리 인상 여부에 대해선 결정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단어 하나로 부위기를 바꿨다. 스킵(skip)이다. 건너뛴다는 것은 방향성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금리 인상이 있을 것임을 내비친 것이다. 금리 인상의 기어를 잠시 중립에 놨을 뿐 다시 드라이브 모드로 옮길 수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한 달 사이에 무엇이 바뀐 걸까. 일단 연준의 경제 전망이 달라졌다. 연준이 통화 정책에 가장 중요하게 참고하는 올해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3.6%에서 3.9%로 수정 전망했다. 올해 실업률은 기존 4.5%에서 4.1%로 낮췄다. 물가는 오르고 경기 호조로 인한 고용시장의 훈풍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FOMC에 하루 앞서 발표된 5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였다. 연준의 관리 목표치 2% 도달은 어렵지만 풀린 고삐는 잡혀가고 있다. 5뤌 소매 판매는 전월대비 0.3% 깜짝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시장은 5월 소매판매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지만 정반대의 결과다.

여전히 경기가 식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소비가 건전하다는 것은 경기침체 우려를 일축한다. 빅테크 기업, 대형 금융사들의 감원에도 미 노동부가 발표한 6월 4∼10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26만 200건에 그쳤다. 고용시장도 여전히 양호하다. 쉽사리 금리 인하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경제 지표가 보여주고 있다.

각국 간 통화 정책의 균형도 고려해야 한다. 유럽도 금리 인상 고삐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6월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4.00%로 결정했다. 8회 연속 인상이다. 다음 달에도 추가 인상 가능성이 크다. 금리 인상을 멈췄던 캐나다와 호주도 다시 금리 인상 대열에 올라탔다. 일본을 제외한 주요 중앙은행들의 행보를 연준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이 여전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다르다. 연준의 긴축은 결국 이뤄질 수밖에 없으면 경기 흐름과 금리 하락 가능성에 더 주목하는 모습이다. 시카고 상업거래소 페드워치는 12월에 금리 인하 가능성이 67%에 달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미 증시는 이런 전망을 반영하며 상승폭을 확대 중이다.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은 중국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13일 단기 정책금리를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내렸다.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축된 경기를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다 보니 경기 부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 부진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의 고민이다.

일본은 중앙은행장 교체 후 예상됐던 완화적 통화 정책 중단이 없을 것임을 예고하며 엔화 약세와 증시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자국 이익을 위한 각국의 통화정책 흐름은 세계 경제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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