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강 중국 외교부장. (사진=EPA 연합뉴스 제공)
친강 중국 외교부장. (사진=EPA 연합뉴스 제공)

날 선 발언으로 상대국을 압박하는 중국 ‘전랑외교’의 선봉장이 사라졌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갑작스럽게 외교 현장에서 사라진 지 한 달이 가까워지는 이례적인 상황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중국 정치인이나 관료, 기업인이 어느 순간 사라지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중국 외교를 책임지는 1번 외교관이 사라졌다. 서방 진영에서는 억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중국은 입을 다물고 있다.

이번 사안이 중국 외교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인지 각국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중국은 투명하지 않다는 인식도 깊게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3 연임을 앞두고 수직 출세를 한 인사다. 오랫동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을 했고 가까이서 시 주석을 보좌했다.

시 주석과 중국을 위해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주미 대사로 부임하자 "시 주석이 미국과의 혈투를 위한 전사를 보낸 것"이라는 평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가 주미 대사 근무 11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외교부장으로 발탁돼 중국으로 복귀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시 주석 3 연임의 시작을 함께하는 외교부장을 맡은 만큼 시 주석이 친 부장을 신뢰하고 중용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친 부장은 올해 국무위원으로 위상이 더욱 올라갔다. 이런 친 부장이 지난달 25일 바그너 그룹 쿠데타를 협의하기 위해 방중한 러시아 외교 차관과의 회동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공산권 국가들은 외교 책임자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친 부장의 전임자인 왕이 현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도 2013년부터 10년 가까이 활동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의 경우 2004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 맞서 러시아의 이익을 확보하는 외교를 총 책임지고 있다.

선거에 따라 정권이 교체되는 민주 국가들과 달리 공산당 독재인 중국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독재와 다름없는 러시아에서는 외교 수장을 함부로 교체하지 않는다. 외교 공백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중국 외교부장은 타국의 외교부 장관과는 조금 다르다.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이 실질적인 외교의 총책임자로 분류된다. 외교부장은 현장에서 외교를 지휘하고 외교 담당 정치국원은 막후 실세로 역할을 한다.

공산당이 정부보다 우월한 정치 환경을 반영한 구도다. 이 때문에 미국은 양국 외교 협상 시 최고 책임자인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의 참석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친 부장이 사라진 후 왕 정치국원이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이례적인 행보다. 정부 외교 책임자가 아닌 공산당 정치국원이 양자, 다자 외교가 이뤄지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정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없다.

물론 대화의 수위는 더 높아진다. 왕 부장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도 회담했다. 왕 정치국원은 이달 24~25일(현지시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 신흥 경제 5개국) 고위 대표 회의에도 참석한다. 이런 일정은 친 부장의 부재가 한 달 이상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친 부장의 부재 속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의 방중이 취소되는 등 일부 영향도 감지되지만 큰 틀에서 중국 외교는 크게 영향받지 않고 있다. 중국 측도 이를 강조 중이다. 이는 친 부장이 교체될 가능성을 더욱 키우는 요소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친 부장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건강 때문이라고만 밝혔다. 그러나 이후 공개된 외교부 브리핑 전문에는 친 부장에 대한 질문은 삭제됐다. 중국 측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남기기를 꺼리고 있다는 뜻이다.

셰펑 주미 중국 대사도 아스펜 안보 포럼에 참석해 친 부장에 대한 언급을 삼갔다. 셰펑 대사는 '친 부장이 비밀 외교라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지켜봅시다"라고만 답했다.

일각에서는 친부장이 사라진 것이 홍콩 봉황TV 아나운서와의 불륜설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중국 외교부는 이에 대한 질문에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모른 척했다.

친 부장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복귀할 것이라는 시선은 많지 않다. 마침 미국과 중국이 팽팽하던 외교 긴장을 늦추고 대화를 재개하던 시점에 친 부장이 사라졌다.

오는 9월 인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동 성사를 조율해야 할 중국 외교부장이 자리에 없지만, 중국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하고 있다.

이런 경우 사라졌던 인사가 복귀한 경우는 드물다. 시 주석이 2012년 취임을 앞두고 2주간 공식 석상에서 사라져 논란이 된 바 있지만, 이는 최고 권력자의 경우다. 정치인, 고위 공무원 중 사라진 후 제자리로 돌아온 이는 거의 없다.

대표적인 예가 시 주석의 라이벌로 간주됐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장이다. 충칭시의 ‘포청천’이라던 보시라이는 전격적으로 해임됐고 가족들의 추문까지 더해지며 종신형을 받아 정계에서 사라졌다. 보시라이와 한배를 탔던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측근이었던 멍훙웨이 인터폴 총재도 종적을 감춘 후 결국 체포 사실이 드러났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배우 판빙빙, 테니스 스타 펑슈아이 등 민간인들도 중국 당국의 눈 밖에 나 종적을 감췄던 이들이다. 실종됐던 중국계 캐나다인 억만장자 샤오젠화 밍톈그룹 회장이 5년 만에 중국에서 형사 재판을 받았던 사실은 중국에서 갑작스레 사라진 이들의 결말을 보여주는 예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직접 친 부장을 발탁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그가 사라진 것도 시 주석의 의지가 반영됐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런던소재 중국연구소인 소아스(SOAS)의 스티브 창 이사는 "시 주석을 제외하고 사라졌던 중국 정치인들은 대부분 정치 인생이 끝났다"면서 "친 부장은 과거에 축출된 인사들만큼 권력에 접근해 있지 않다. 아마도 시 주석에 의해 곤경에 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창 이사의 예측이 맞다면 친 부장의 복귀보다는 다음 중국 외교부장이 누가될 것인지를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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