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이스라엘이 민주화에 역행하는 사법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재집권에 성공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국민들의 반대에도 추진한 이번 사안은 이스라엘의 맹방인 미국은 물론 향후 중동 및 국제 정세에도 적잖은 영향이 예상된다.

이스라엘 국회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는 ‘사법개혁안’을 64대0으로 가결했다. 120명의 의원 중 네타냐후 총리 측 우파연합 의원 64명만이 참가했고 야당은 법안 처리에 퇴장으로 반대의 뜻을 밝혔지만, 가결을 막지 못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이 보유한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폐지하는 내용의 사법 개혁안은 이스라엘 사회는 물론 국제사회의 갈등을 야기해 왔다.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주요 결정을 대법원이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이 사라지면 행정부의 독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개혁안에 대해 이스라엘 국민들이 약 7개월간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반대 시위를 벌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미국도 네타냐후 총리 취임 후 미국 방문 초대를 하지 않는 등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이번 사법개혁 안은 사법 처리 위기에 놓인 네타냐후 총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탄성 행위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네타냐후는 2020년 부패 혐의로 법정에 출석해 이스라엘 역사상 형사 재판을 받는 첫 현직 총리라는 오명을 썼다. 총리직도 실각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극우 진영과 손을 잡고 우파 연정을 구성해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런 결과는 자연스럽게 역대 이스라엘 정부 중 가장 극우 성향의 정권을 탄생시켰다. 네타냐후는 1년 6개월 만에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이스라엘 최장기 집권 기록을 연장 중이다. 네타냐후의 재집권이 ‘이스라엘 왕의 부활'이라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안보 이슈를 앞세운 선거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안보가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발생했다. 엄연한 민주국가인 이스라엘에서 사법부의 행정부 견제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극우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사법부의 권한을 약화해야 네타냐후 총리의 안정적 집권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의 부패 이슈가 시작된 2019년 이후 이스라엘은 2년 사이 4번이나 총선을 치를 만큼 정국의 혼란이 이어져 왔다. 네타냐후가 집권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부패 사건에 대한 사법 리스크를 해결해야 한다. 그 대안이 사법부 권한 약화로 드러났다.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은 조 바이든 미국 정부에게도 숙제를 남겼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후원 국가다. 그런데도 네타냐후는 최근 들어 미국 정부와도 갈등하기도 했다. 중동 대화를 추진한 버락 오바마 정부와는 반목했지만, 자신을 지지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2019년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승리한 것은 트럼프의 지원 때문이라는 분석이 파다했다. 트럼프 정부는 외교 정책을 통해 네타냐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 신봉자다. 사법권 약화를 추진한 네타냐후와는 결이 달랐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초 네타냐후 정부에 대해 가장 극우적인 내각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이스라엘이 이런 길로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를 미국으로 초청하는 것도 주저했다.

그러나 상황이 묘하게 흐른다. 이스라엘의 사법개혁안 의회 통과에 앞서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가 통화했다. 이스라엘 정부에 따르면 두 사람이 따뜻하고 긴 통화를 이어갔다고 했다. 심지어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를 미국으로 초청했다. 급반전이다. 두 사람의 통화 후 네타냐후는 사법개혁안을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꼬여만 가는 국제 정세와 미국 차기 대선이 바이든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 정세 변화에 노련한 네타냐후는 절묘한 전략을 짰다. 미·중 갈등을 이용한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6월 이스라엘을 방문한 미국 하원 대표단과 만나 중국으로부터 공식방문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이 아닌 중국을 먼저 방문한다는 소식은 미국 정가는 물론 국제 외교가에 충격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이 자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손을 잡는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이 미국 의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여야를 막론한 미 정가의 압박이 가해지면 바이든 대통령도 버텨내기 어렵다. 지난 7월 19일 아이작 헤조로그 이스라엘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에 참석한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의 갈등이 있음에도 미국 의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초당적인 지지 의사를 표하기 주저하지 않는다.

내년에는 미국 대선이 있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 내 정가를 좌지우지해온 이스라엘과 갈등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마침 미국이 사우디와 이스라엘 관계 개선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으로서는 네타냐후 총리가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도록 해야 할 당근이 필요하다. 마침 27일 사우디를 방문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것도 양국 간 관계 정상화를 위한 포석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런 배경을 보면 백악관이 이스라엘 사법 개혁안 통과 후 성명을 통해 "불행한 일"이라고 표현하는 데 그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입장에서는 네타냐후가 오는 11월까지 야당과 협의를 하겠다고 말한 약속을 지키도록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해법이 없는 셈이다.

로버트 스탯로프 워싱턴 근동정책 연구소 이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사법 개혁이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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