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제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제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시 주석은 1년 전 인도네시아 휴양지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국가 정상으로서 처음 조우했지만, 이번에는 불참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시 주석은 지난달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는 직접 참석했다.

시 주석이 G20을 건너뛰고 아프리카까지 날아가 브릭스에 공을 들인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개편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브릭스 회원국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브릭스는 애초 투자의 관점에서 제기된 개념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 선진국에 대비되는 신흥 유망 투자국가로 소개했다. 그런데 이들 국가가 모여 회의체 구성을 모색했다. 2009년 이후 상설화하고 정상회의도 개최했다. 투자 아이디어가 경제 협력체로 이어진 보기 드문 사례다.

브릭스라는 의미가 애초에 경제로 시작됐지만, 국제 정세 변화는 변신의 이유가 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합병에 이어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데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확산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주도하는 국제 협력체의 필요성이 커졌다. 해외 방문이 어려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보다는 시 주석이 변화를 주도 중이다.

브릭스 내 최대 국가는 중국이다. 자신이 회의를 주도할 수 있는 여건이 깔려있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반대하는 브릭스를 통해 변화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브릭스는 이번 회의에서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를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아공이 추가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사우디, UAE를 제외하면 중국의 원조가 많은 국가들이 신규 회원국이 되면서 중국이 브릭스를 주도할 기반이 강화됐다. 남아공에 따르면 브릭스에는 40개국 이상이 관심을 보였고 22개 나라가 가입을 신청했다. 이들 국가들 역시 중국이 배경일 가능성이 크다.

신규 가입국은 브라질의 인접국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 대부분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다. 친미 성향인 UAE도 있지만 사우디, 이란은 최근 친중국 성향을 보여온 국가다. 브릭스 회원국 내에서 친 중국 성향이 향후 더욱 두드러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시 주석은 이번 브릭스 신규 회원국 결정이 역사적이며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 그는 또 브릭스 국가들은 원칙을 바꾸거나 외부 압력에 굴복해 다른 나라의 가신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브릭스 국가들이 미국 등 서방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요구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시 주석이 브릭스 국가들과 남반구 국가들이 더욱 공평한 세계 질서 구축을 위해 단결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으며 이번 요청이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한발 더 나아가 이번 회의에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고 소규모 집단이나 배타적 블록을 만들려는 시도를 거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제가 아닌 안보 분야의 입장을 강화하자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영상 연설에서 브릭스의 구매력이 주요 7개국(G7)을 능가한다면서 평등, 파트너십 지원, 상호 이익 존중 원칙에 대해 협력하자고 외쳤다.

푸틴의 표현대로 이제 브릭스 국가의 경제력은 G7을 넘어선다. 사실상 선진국 클럽과 대항할 수 있는 경제블록이 탄생한 것이다. 다만 규모를 키운 경제 블록이 안보 블록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회원국 간 신뢰가 중요하다. 브릭스는 이 부분에 큰 약점이 있다.

시 주석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회원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결정적인 장애물이 있다. 인도다. 인도는 역사적으로 중국과 반목해 왔다. 경제 분야에서도 경쟁국이다. 중국과 인도 국경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군사적 충돌은 낯설지 않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브릭스의 확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합의를 바탕으로 이를 진전시키려는 움직임을 환영한다고 했다. 자신의 지지 없이는 브릭스 회원국 확대를 할 수 없다는 선을 그은 셈이다.

모디 총리는 탄력 있고 포용적인 공급망도 강조했다. 이미 미국과 결탁을 강화하고 있는 인도 입장이 중국과 다름을 보여주는 예다. 모디 총리는 지난달 미국을 첫 국빈 방문하며 바이든 대통령과 미-인도 관계 강화를 위해 건배했다.

미국과 인도 측은 시 주석이 이번 브릭스 회의에서 성과와 아쉬움을 남겼다고 평가한다. C. 라자 모한 포린폴리시 칼럼니스트는 "브릭스 회원국 확대가 중국의 승리라고만 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모한 칼럼니스트는 브릭스가 확대가 오히려 기존의 결속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과 인도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브릭스가 응집력 있는 의제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나일강 수역에서 갈등 관계다. 종교적으로 갈등 관계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의 평화 중재 노력에 부응하리라고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UAE는 미국의 안보 파트너다. 이를 중국과 러시아가 뒤집기는 어렵다.

아르헨티나와 이집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다. IMF는 미국에 본부를 둔다.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최근 아르헨티나가 IMF 차관을 중국 위안화로 갚겠다고 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 중국이 아르헨티나를 지원하기는 쉽지 않다.

CNN도 브릭스 확장은 중국에 큰 승리지만 정말로 서구에 대한 균형추 구실을 할 수 있겠냐는 의문부호가 달렸다고 전했다. 미국이 애써 중국과 브릭스의 결탁 효과를 축소하고 있지만 경제와 안보 외교가 뒤섞인 자금의 세계 질서가 어디로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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