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국제 원유 값이 최근 9일 연속 상승했다. 상승세와 폭이 심상치 않다. 국제 유가의 향방은 국제 경제는 물론 정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가 상승에 웃는 이가 있다면 얼굴이 찌푸려지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석유와 유가를 둘러싼 최근의 갈등은 내년 미국 대선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6달러 선에 거래됐다. 지난달 25일 79달러 선에서 연일 강세를 보이며 90달러대까지 임박했다. 연속 10일이나 상승한데다 상승 폭까지 크다 보니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브렌트유도 89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상반기 중 배럴당 60달러대에서 안정되는 듯하던 유가는 오히려 지난해 11월 11일 이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가가 100달러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확산 중이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도 유가 하락과 함께 정상 국면으로 돌아오는 듯했지만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WTI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으며 각국의 소비자들과 정책당국자, 중앙은행을 고심하게 했던 상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의 유가 상승은 자연스러운 경제적 현상이기보다는 인위적인 감산에 의한 영향이다. 중국 경제가 위기에 접어들며 유류 소비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도 유가가 우상향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수요 감소보다 공급 감소가 더 크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가 모임인 OPEC+는 감산에 적극적이다. 이들은 유가 하락을 관망하기보다는 적극적인 감산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지난 5일 각각 하루 100만 배럴, 하루 3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을 12월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석유 수요 하락 상황에서 공급자가 주도권을 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큰 위기를 겪었던 중동과 러시아로 석유 패권이 넘어갔다는 점도 시사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화석연료 축소 정책과 신규 유전 시추와 개발을 제한하는 정책을 지속한다면 이런 상황이 쉽사리 바뀌기 어렵다. 바이든 정부는 최근에도 알래스카 석유 개발을 제한하며 친환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감산을 통한 유가 상승이 필요하다.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네옴시티 건설 계획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재원은 당연히 원유 판매대금이다. 유가가 오를수록 수입도 늘어난다.

러시아는 미국의 석유 수출 규제로 사우디만큼의 유가 상승효과를 보기는 어렵지만, 미국을 견제하기에 식량과 유가만큼 좋은 수단을 찾기 어렵다. 러시아가 석유 송유관을 조일수록 미국 정부가 받는 부담은 비례해 커지기 마련이다.

유가 상승으로 미국 정부에 가장 큰 불똥이 튀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노린 화살이 정확하게 과녁을 향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의 감산 조치가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가장 나쁜 시점에 나왔다고 진단했다. 바이든이 내년 대선을 위한 행보를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미국 내 휘발유 값이 치솟으며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유권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물가 지표는 단연 휘발유 값이다. 휘발유 값에 대통령의 재임 여부가 달려있다는 농담은 허투루 들을 수 없다. 미국인들은 유가의 변화를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일이 다반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갤런당 5달러까지 치솟았던 휘발유 값이 3달러 중반으로 내려오자 인플레이션 완화를 치적으로 강조해왔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고 석유 개발을 제한해 온 바이든 정부지만 유가 안정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필수 조건이다.

석유 컨설턴트 밥 맥널리는 휘발유 값보다 대통령 재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많지 않다. 그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정말 위기다. 바이든의 운명이 주유소 휘발유 값에 달렸다는 뜻이다.

바이든에게 반전의 카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 베네수엘라와 이스라엘이 복병이다.

베네수엘라는 초대형 산유국이지만 미국과 갈등하며 석유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를 개선한다면 당장 원유 생산 증대가 어렵다고 해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바이든이 기대하는 최고의 결과는 자신이 주도하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도전했지만 성사시키지 못한 일이다. 반전의 계기는 인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다. 이 회의에는 빈살만 왕세자도 참석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빈살만과 만나 석유 증산은 물론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제안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너무나 어려운 과제다. 역대 미 대통령 중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개선에 나는 이는 많았지만, 성사까지 이른 경우가 없다.

미국은 사우디에 대한 안보 보장과 민간 핵 프로그램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를 이스라엘이 어느 정도 인정할지, 팔레스타인이 양보를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성사만 된다면 중동으로 뻗어가는 중국의 영향력도 차단할 수 있다. 결과는 더욱 달콤할 것이다.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이 유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중동 평화를 이뤄낸다면 내년 대선에도 바이든에 분명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건재한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 정부의 낮은 지지율을 고려하면 이 정도의 과제는 해결해야 국민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문제는 난이도가 수능 킬러 문항 이상이라는 점이다. 문항을 다 풀어도 또 다른 이슈가 남는다. 빈살만 왕세자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주의 신봉자 바이든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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