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골프장에 설치된 시계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미국의 한 골프장에 설치된 시계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만약 시간을 병에 담을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영원토록 그대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병에 담아두는 것입니다

 

  만약 세월을 영원하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나의 기원으로 소망을 이룰 수 있다면 
  하루하루를 보물처럼 모아두었다가 
  당신과 함께 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난 일단 하고 싶은 일들을 찾으면 충분히 알아봐요
  당신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사람이란 걸
  세월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이죠

 

  만약 소원을 담아둘 수 있는 상자가 있다면
  그리고 이루지 못한 꿈을 담을 수 있다면
  그 상자는 비어 있을 거에요
  당신이 기원했던 소망과 꿈으로 가득 찬 기억 외에는 

 

  그러나 당신이 하고픈 일을 하기엔 시간이 모자란 것 같군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대야말로 내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골프한국] 미국의 유명한 포크 가수 짐 크로치(Jim Croce, 1943~1973)(1)의 ‘병 속의 시간(Time In A Bottle)’의 가사다. 많은 시간 방황하다가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함께 나눌 사람을 발견했으나 시간이 모자라고 지난 세월이 너무 아쉽다는 내용의 애절한 노래다. 

 

이 노랫말처럼 만약 시간을 넣어둘 수 있는 병이 있다면 골프하기가 얼마나 좋을까. 골프장에서 새로운 샷에 직면하기 직전까지의 모든 시간을 병 속에 넣어버릴 수 있다면 그토록 비참한 추락의 아픔을 맛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난 홀의 납득할 수 없는 미스 샷에 의한 OB나 한순간 방심으로 빚은 3 퍼트의 기억은 물론, 벙커에서 포기하고 건져 올린 볼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환희의 순간이나 3 퍼트를 각오해야 했던 롱 퍼팅이 홀인하는 감격의 순간들을 병 속에 넣어버릴 수 있다면 다음 홀에서 그렇게 혹독한 시련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뇌리를 가득 채운 지난 홀의 기억들은 골퍼로 하여금 무리한 욕심이나 각오로 감당할 수 없는 전의에 불타게 하거나, 자만이나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넣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내 주머니에 이런 마법의 병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지난 시간의 모든 것은 즉시 병 속에 가둬버리자. 그리고 새로이 다가오는 다음 순간순간에 집중하자. 바로 지난 샷을 잊고 새로이 맞은 샷에 모든 것을 집중하자. 심리적 훈련을 해본 사람이라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진짜 골퍼는 이 병마저 깨뜨려버려야 한다. 붓다가 아닌 이상, 달마가 아닌 이상, 아무리 지난 시간들을 병 속에 가둬 두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둬 두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제라도 뚜껑이 열리거나 병이 깨지면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용케 자신을 잘 다스려 지난 홀의 온갖 기억들을 병 속에 잘 가둬 두었다고 해도 어느 순간 혼란에 빠지면서 뚜껑이 열려 나를 에워싸고 말 것이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그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구제불능의 낭떠러지로 떨어져야 한다. 

 

진짜 골퍼는 샷을 날리고 나서 모든 기억을 바람결에 날려 버린다. 머릿속에, 가슴 속에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다. 그렇게 무심하게 다음 샷을 맞는다. 한때 애지중지 병을 갖고 다녔지만 이젠 그 병마저 필요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1)짐 크로치: 미국의 유명한 포크 싱어 송 라이터. 1973년 한창 재능을 발휘할 나이인 30의 나이에 비행기사고로 사망.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email protected])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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