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에 다시 돌아보는 독립투사의 장엄한 여정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오늘날 우리나라 헌법은 전문(前文)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표현은 1987년 9차 개헌 때 수록됐는데, 이에는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제9대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고(故) 김준엽 선생(1923~2011)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선생이 당시 민정당 의원이었던 이종찬 광복회장을 만나 그 중요성을 역설했고, 당시 새 헌법안을 작성하던 다른 국회의원들도 수긍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 건국일 논란과 홍범도 장군 흉상의 이전 문제 등과 오버랩되면서 장엄하고 처절한 독립투쟁의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다.

올해는 김준엽 선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선생에게는 '마지막 광복군'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일제 학도병에 징집됐던 선생은 중국 쉬저우시에서 일본의 쓰카다 부대를 탈출, 장준하·윤경빈·홍석훈·김영록 선생과 함께 중국 국민군에 잠시 몸을 의탁한다.

이후 일본군의 철도와 철조망을 넘으며 중국 내륙을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대장정 끝에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한국 광복군의 장교로서 서울진공작전을 준비했으나 이듬해인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무산되고 만다. 

지난 4일 출간된 '김준엽의 길 3200㎞'는 이 기간 선생의 독립 투쟁 일대기를 되짚어보는 역사 기행 에세이다. 책 제목의 '3200㎞'는 김준엽 선생이 일본군을 떠나 임시정부에 이르기까지 걸어간 2400㎞의 여정와 광복군으로서 서울진공작전 훈련을 위해 중국 시안으로 이동한 800㎞를 합한 거리다.

이 3200㎞의 여정은 김준엽 선생에게 일생을 관통하는 의미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20대를 중국에서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지냈다. 이때의 경험은 내 인생을 지배하는 길잡이가 되었기에 항상 그 무렵을 회상하고, 또 그때 세운 인생의 지침을 내가 옳게 지키고 있는지 반성하면서 살고 있다." 김준엽 선생은 1987년 펴낸 한국 독립운동사 회고록 '장정(長征)'의 머리말에서 가슴 속 이정표를 이 같이 강조했다. 

저자 윤영수는 KBS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 기획 및 대본 작업에 참여하고 '역사의 라이벌', '역사스페셜' 등 250여편의 다큐멘터리를 쓴 드라마작가이다. 1944~1945년 김준엽 선생이 밟았던 실제 중국 내 동선을 10일 동안 답사하고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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