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회계법인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회계법인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우리나라에 공매도가 도입된 것은 1996년이다. 기관투자가에게만 허용됐다. 외환 위기가 터진 다음 해인 1998년 대상이 외국인으로 확장됐다. 주식 시장이 외국인에게 완전 개방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진 일이다.

그 후 증시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비중은 급속히 증가했다. 2004년 3월에는 44.5%까지 올라갔고, 이후 하락해 지난해 12월 27.7%에 이른다. 외국인은 외환 위기로 크게 가치가 하락한 국내 대기업과 은행 주식을 매수해 대주주로 자리 잡는다. 자본 시장과 자금 시장을 모두 장악한 것이다.

외국 자금의 유입은 우리 증시의 규모를 키우고 제도를 선진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비중은 50%를 넘나드는데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파생금융상품과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 다양한 형태의 투자 기법이 도입됐다.

그러나 빛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규모와 외국인 비중이 커지면서 해외 경제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질로 바뀌었다. 외국인은 필요시 현금자동입출금기(ATM)처럼 돈을 넣다 뺐다 하면서 증시의 변동성을 키웠다. 기업의 장기 성장성에 무관심한, 단타 위주의 핫머니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공매도다. 공매도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주식을 살 때 돈이 부족하면 증권사에서 빌릴 수 있다. 신용융자가 그것이다. 주가가 빠질 것이라고 예상되면 주식을 빌려서 팔 수도 있다. 낮아진 가격으로 주식을 사서 돌려주면 이익이다. 돈과 주식을 빌릴 수 있으면 증시의 거래량은 늘어나고 유동성은 높아진다.

공매도의 순기능도 많다. 주가가 근거 없이 올라가 버블이 형성되면 공매도는 그것을 신속하게 꺼뜨린다. 회사의 경영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알리고 비판하는 신호탄이 되기도 한다. 위험을 헤징하는 기능도 할 수 있다. 롱쇼트 펀드는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종목은 사고 내릴 것으로 전망하는 종목은 공매도 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공매도는 기관과 외국인에게 유리하다. 현재 개인은 담보비율(빌린 주식 금액+증거금/빌린 주식 금액)을 120% 이상 유지해야 하나 기관·외국인은 105%다. 100만원어치 주식을 빌릴 때 개인은 20만원어치의 현금 또는 주식을 증거금으로 제공해야 한다. 기관·외국인은 5만원어치의 증거금만 있으면 된다.

이것은 큰 차이다. 개인은 5배의 레버리지가 가능하지만 기관·외국인의 경우 20배로 늘어난다.

상환기간도 차이가 있다. 개인은 90일 내 상환해야 하지만 기관·외국인은 사실상 제한이 없다. 후자는 기간에 쫓기지 않고 적당한 시기에 사서 갚으면 되므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그 바람에 공매도를 주도하는 세력은 기관·외국인이다. 올해 들어 지난 2일까지 공매도 누적거래액은 158조 5000억원인데 이 중 외국인이 67.9%, 기관이 30.4%고 개인은 1.7%에 불과했다.

제도적으로 개인과 기관·외국인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고 하더라도 자금력과 정보력에서 크게 차이가 나므로 공매도의 판세가 달라질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제도의 불공정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가라앉을 것이다.

정부는 지난 6일부터 당분간 공매도를 금지하고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시장조성자(MM)와 유동성공급자(LP)의 공매도까지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MM과 LP는 거래부진 종목에 대해 의무적으로 매수·매도 호가를 제시, 해당 종목 거래를 촉진하는 증권사를 이른다. MM은 한국거래소, LP는 상장사와 계약을 맺는다.

특히 LP는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를 지원한다. ETF 매도가 늘어나면 이를 사들여야 한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초자산을 매도해야 하는데 만약 그것을 갖고 있지 않으면 공매도에 나설 수밖에 없다. LP는 공매도로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고 수수료를 받는 것이 목적이다. 공매도를 금지하면 LP로 참여할 유인이 꺾일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과도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차입 공매도다. 불법이지만 기관·외국인에 의해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홍콩 소재 글로벌투자은행에서 시스템에 입력하지 않고 매도 주문을 냈으나 결제 수량이 부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9개월간 무차입 공매도가 이뤄졌으므로 의도적인 것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8년 골드만삭스의 사례도 비슷하다. 기관은 타 기관에게 주식을 빌려주기로 약속하면 시스템에 주식을 가입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계좌에는 주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관은 수탁사인 은행을 거쳐 거래하며 증권사는 단지 거래를 체결할 뿐이므로 계좌에 주식이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없다. 주식을 빌리지 못해 결제 불이행이 일어나지 않으면 외부에서 알 수 없다. 순간순간 시장이 변하고 거액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공매도에 관한 규제가 매우 엄격하다. 직전 체결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문을 내야 하는 업틱 룰, 공매도 호가 표시 및 잔고 보고, 공매도 대량 보유자 공시 등 모든 종류의 규제가 형식적으로는 갖춰져 있다.

그러나 투자자별 공매도 잔액이 공개되지 않아 개인이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이 문제를 인식해 기관별 공매도 잔액 등 상세한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실제로 업틱 룰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거래 체결 이틀 뒤 결산이 이뤄지기 때문에 그 사이 주식을 빌리면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형식적인 규제보다는 전산 시스템 구축을 통해 무차입 공매도를 원천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식을 빌릴 시점의 계약 기록이 전산화돼 있으면 감히 불법적 공매도를 하기 어렵다. 정부는 각 증권사에게 전산 시스템 구축을 의무화할 수 있고 상호 연동되도록 표준을 제시할 수 있다. 정부와 증권사가 비용을 분담한다면 그렇게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다.

공매도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규정에 따르면 불법 공매도를 시도할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부당 이득의 5배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지난 8월까지 불법 공매도 174건에 대해 벌금만 부과됐고 형사처벌은 없었으며 외국인이 156곳에 달했다. 한마디로 외국인이 불법 공매도를 주도하지만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매도에 대한 규제 강화가 우리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을 가로막는 등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불법 공매도 차단은 오히려 증시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높여 우리의 자본 시장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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