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국가아젠다로 삼아야…자살률 50%↓ 기대”
"언론·정치권 등 노력 동반돼야 자살예방 정책 빛 발해"

한지아 국민통합위원회 자살위기극복특별위원장이 지난 2일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데일리한국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국민통합위 제공
한지아 국민통합위원회 자살위기극복특별위원장이 지난 2일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데일리한국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국민통합위 제공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자살 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2016년과 2017년을 제외하면 2003년부터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지키고 있다. 자살률은 해마다 조금씩 낮아지는 추세지만, 지난해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하루 평균 35.4명, 총 1만290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자살률·OECD 표준인구 보정)는 25.2명으로, OECD 평균(10.6명)의 2배를 웃돈다.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으로 청년과 노인 자살률이 좀처럼 줄지 않는 상황은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어두운 단면을 대변하고 있다.

한지아 국민통합위원회 자살위기극복특별위원장은 지난달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데일리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자살의 의미를 '개인적 선택'으로 축소하고 터부시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관심을 기울여 외로움과 절망감에서 비롯된 사회적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위원장은 자살률을 효과적으로 줄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리더십의 부재'를 짚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제도와 조직, 예산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자살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가 부족했었다는 지적이다.

자살 문제는 윤석열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 특위를 발족해 자살 문제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살특위는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활동한 한 위원장을 중심으로 구성돼 지난해 2월 출범했다. 그동안 자살특위는 관계 부처와 국민 공감을 끌어내고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방안을 모색해 왔다. 영상물 등급 분류 고려 사항에 '자살' 뿐만 아니라 '자해'를 추가하자는 제안을 내놨고, 데이터 예측 기반 시스템으로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자살 예측 모형' 개발 등을 제안했다.

한지아 국민통합위원회 자살위기극복특별위원장이 지난 2일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데일리한국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국민통합위 제공
한지아 국민통합위원회 자살위기극복특별위원장이 지난 2일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데일리한국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국민통합위 제공

가장 큰 성과는 8개로 분산돼 있던 자살 예방 상담번호를 '109'로 일원화한 것이다. 한 위원장은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회안전망 강화에 힘쓰고 있지만, 109의 원활한 운영과 함께 자살률을 현저하게 낮추기 위해선 정책 혁신과 관계 부처의 유기적인 연계·협력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했다. 상담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상담사 인력 증원 등 운영비 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정부가 지난해 말 자살률 50% 감축을 목표로 '정신건강 혁신방안'을 내놓은 데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 위원장은 이에 대한 사례로 일본을 들었다. 일본은 한때 '자살 왕국'이라고 불릴만큼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수천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자살률을 현저히 낮춘 경험이 있다. 2022년 일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7.5명이다. 

한 위원장은 "외국과 달리 지금까지 국가나 지도자가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던 적이 없었다"며 "자살률을 낮추겠다는 확고한 리더십과 정신건강을 국가적인 아젠다로 가져가겠다는 실행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가 나서 사회적인 책임을 독려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책이나 기준을 제시한다면 사회는 변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위원장은 정신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가 전환돼야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그는 "자살을 예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정신건강을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는 인식과 이를 외부로 드러내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라며 "치부로 느끼지 않고 질병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수요자들이 직접 참여해 자살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등 실효성 있는 자살 예방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살 예방교육은 올해 7월부터 국가기관·공공기관·초중고교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지원하는 예산은 전체 자살예방 예산 가운데 6.1%인 31억원에 불과하다는 점도 한 위원장에겐 아쉬움이다.

한 위원장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언론의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명인이 자살하고 난 뒤 이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모방자살이 확산하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위원장은 "자살은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자살을 개인 문제로 범주화할 수 있는 만큼, ’자살‘이 드러나는 표현을 허용하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3.0'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 따르면 ’자살‘이라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정치권을 향한 당부의 메시지도 전했다. 그는 "자살은 젠더·세대·진영을 뛰어넘는 문제이고, 생명은 곧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진영을 벗어나 보편적 가치를 우선 순위에 두는 '통합'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살예방상담번호 '109' 소개 영상. 출처=국민통합위원회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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