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레로 발레의 공연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볼레로 발레의 공연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볼레로(Boléro)’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1875-1937)이 1928년 중순 러시아 출신 안무가 이다 루빈스타인(Ida Rubinstein·1885-1960)에게 위촉받아 작곡한 발레 음악이다. 그러나 발레보다는 연주회의 인기 레퍼토리로 각광 받았다.

 

곡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마지막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네어 드럼의 스페인 볼레로 리듬 위에 두 가지 선율이 악기를 바꿔가며 계속 반복되면서 작은 음량에서 큰 음량까지 온갖 악기들이 드나들며 점진적으로 커진다. 

 

단순한 리듬이 미묘하게 변주되며 반복되는 볼레로는 중독성에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능가한다. 두어 번 들어보면 뇌리에서 자동재생되면서 듣는 이를 세뇌시킨다. 이 때문에 이 곡은 ‘단순한 재료로 최상의 효과를 구현한 작품’의 대명사가 되면서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란 문예사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28년 11월 22일 파리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러시아의 무용가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 연출, 왈테르 스트라람의 지휘로 공연된 볼레로 초연은 스페인의 한 술집에서 어느 여성이 갑자기 테이블 위에 올라가 볼레로를 추는 것으로 시작해 점차 사람들이 모이면서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이 격정적으로 춤을 추면서 막을 내리는 것으로 짜여졌다. 워낙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형태의 곡이라 ‘너무 기계적이고 건조한 구성’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충격에 빠져 자리를 뜨지 못했다. 관객들은 발레 자체의 내용이나 안무보다는 라벨이 작곡한 음악 자체에 충격을 받았다. 한 여성 관객이 “라벨이 미쳤다”라고 소리칠 정도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라벨은 미소를 지으며 “내 음악을 제대로 이해했다”라고 흡족해했다. 

 

라벨은 ‘볼레로’에서 기존 틀을 벗어난 새로운 음악어법을 시도했다. 그것은 스페인풍 색채를 넘어선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라벨은 ‘기-승-전-결’의 관습을 넘어 단순한 리듬의 변주와 반복이라는 새로운 미학을 제시했다. 지금껏 ‘주제의 발전’이라는 개념에 친숙해 있던 청중들에게 집요한 반복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청중들은 그 변주와 반복에 매혹되었다.

 

볼레로에 등장하는 악기의 중심은 단연 스네어 드럼(Snare Drum)이다. 스네어 드럼은 드럼 키트에서 킥 드럼과 함께 리듬 파트를 담당하는 타악기다. 문외한에겐 북 치는 소년이 두들기는 작은북이라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볼레로에서 곡 처음부터 끝까지 15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거의 같은 리듬을 연주해야 하는데 도입부에선 여리게 연주하다 진행에 따라 섬세한 강도 조절이 필요해 이 곡에서 가장 힘든 파트라 할 수 있다.

 

볼레로의 음악어법을 이해하고 이 곡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골프와 볼레로는 ‘이란성(二卵性) 쌍둥이’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볼레로가 같은 리듬과 박자를 반복하듯 골프 역시 비슷한 리듬과 템포의 스윙 동작을 반복하는 운동이다. 어드레스와 백스윙, 다운스윙, 팔로우스윙의 끊임없는 반복운동이 골프다. 체격조건이나 개인적 템포에 따라 사람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볼레로가 악기의 변화와 미세한 변주로 다른 듯 같은 음악을 반복하듯 골프도 큰 틀의 스윙은 같으면서도 클럽의 변화, 스윙 크기의 변화, 속도의 변화 등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 맞는 스윙을 창조해내야 한다. 이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축이 흔들리지 않은 스윙이다. 골프의 스윙 축은 지구의 자전축과 같은 역할을 한다. 볼레로에서 기관차 역할을 하는 악기가 스네어 드럼이라면 골프의 기관차는 바로 중심을 지키는 스윙 축이다. 

 

볼레로의 리듬과 박자가 주는 중독성 역시 골프의 중독성과도 너무 닮았다. 볼레로 음악을 들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듯, 골프채를 잡고 있으면 세상사를 잊는다. 

 

볼레로가 리듬과 박자는 같지만 악기의 변화와 강약의 차이로 단순한 반복이 아닌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반복을 만들어내듯, 골프의 모든 샷 역시 비슷하지만 같지 않다. 무한으로 이어질 듯 반복되는 볼레로를 들으며 골프의 스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닫는다.

 

볼레로에 담긴 미니멀리즘은 골프가 추구하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골프의 스윙 동작은 궁극적으로 군더더기를 없앤 형해화(形骸化)를 추구한다. 이는 곧 볼레로에 구현된 미니멀리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라운드할 때마다 라벨의 볼레로 리듬을 떠올려 골프의 진수에 다가갔으면 싶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email protected])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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