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범진 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이사장
유범진 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이사장

신의와 의리, 위계질서를 지키는 법은 무엇일까? 신의는 믿음과 의리를 아우르는 말이다. 한 마디로 관계의 지속성을 뜻한다. 한번 맺으면 변치 않는 끈끈한 관계라고나 할까.

제주도의 해녀들에게는 그들만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 먼저 바닷속에 들어가 작업을 할 때 눈앞의 전복을 전부 따지 않고 일부는 남겨 둔다. 뒤에 오는 다른 해녀들을 위한 일종의 배려인 셈이다. 이같은 의리와 위계질서는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되새겨볼 덕목이다.

영국에는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로 ‘이튼 칼리지’가 있다. 이 학교는 단순한 명문학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약 600년 전에 세워진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무려 19명의 영국 총리를 배출했다.

그러나 이 학교는 특정 주요 과목에만 치중하는 성향의 엘리트의 입학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교과목 중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체육을 꼽는다. 하루에 꼭 한 번 다 함께 축구를 해야 하며, 공휴일에는 두차례 경기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고 벌금을 안 낼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다. 공부보다 체육을 통한 ‘함께 하는 인성, 신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강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겨울이면 진흙탕 속에서 레슬링을 하기도 한다. 페어플레이 정신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어느 해 졸업식 송별사에서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학교는 자신 만의 출세를 바라는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 주변을 위하고 사회나 나라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선두에 설 줄 아는 사람을 원한다.”

한국 축구 불세출의 차범근 감독은 지난 3월29일 제36회 차범근상 수상식에서 수상자들을 격려하며 “이강인 선수가 아시안컵 이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강인 선수의 부친과 나는 종아리를 맞아야 한다”며 고개를 떨궜다.

부모로서 아들을, 운동 선배로서 후배를 잘 이끌지 못했다는 자성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일찍부터 평등한 서양문화에 익숙한 어린 세대들에게 겸손과 배려라는 중요한 가치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고언도 잊지 않았다.

운동선수 이전에 학생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 선배 손흥민에 대한 반발을 서슴지 않았던 이강인에게는 소홀했다.

이강인은 중학교 졸업후 스페인 발렌시아 CF 유소년팀을 거쳐 현재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 FC에서 뛰고 있다. 이강인은 아직 어리지만 잠재력이 넘쳐나 국가대표로서 우리 축구계에 꼭 필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지난 1월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이강인은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우고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한 데 따른 기본적인 인성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순간 이강인은 운동선수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인 의리, 신의, 위계질서가 없는 단순한 운동 기계 그 이상도 아니었다.

한시적으로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황선홍 감독은 오랜 고민 끝에 이강인을 대표선수로 선발했다. 운동장에서 일어난 불상사는 운동장에서 풀어야 한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왜 그 당시에 풀지 못했을까?

잘못된 것은 당장 아픈 시련이 있어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반성과 성찰의 과정을 겪고 나면 새로운 역군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필자 역시 경기장에서 불미스런 일에 얽혀 영구제명 징계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1984년 체육계 화합 조치에 따른 징계 해제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서 심판으로 활동했고 이후 현재까지 체육인으로서 명예를 지키고자 육상협회 임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은 기본적인 학교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부디 우리 후배들은 신의와 인성을 갖춘 훌륭한 운동선수로 거듭 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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