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연합뉴스 제공)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연합뉴스 제공)

과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48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대통령직 복귀를 위한 트럼프의 도전과 이를 차단하려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간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운명을 가를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가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지지율이 추락하던 바이든 대통령의 반등이 이뤄지는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검찰의 압박 속에 다음 대선 출마를 차단 당할 수 있는 위기에 몰렸다.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의 몰락과 공화당의 진격으로 바이든 정부의 레임덕이 이뤄지고 트럼프가 부상할 것이라는 예상에도 금이 가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거주하는 플로리다주 소재 마러라고 리조트를 압수수색하면서 미 정가는 태풍의 눈 속으로 들어갔다. 

압수수색 사실은 트럼프 본인이 직접 알렸다. 이는 미 주요 언론들이 긴급 속보로 내보낼 만큼 비중이 높은 뉴스였다.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압수수색이라는 상황에 대해 반트럼프 진영인 진보계열 CNN과 보수 진영 폭스뉴스가 공방을 벌였고 미국 국민들의 시선이 쏠렸다.

미국 정가에서는 전임 대통령에 대해서는 형사적 사법 책임을 묻지 않는 불문율이 이어져왔다. 정권 교체를 하자마자 전정권에 대한 사정에 나서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지금껏 그런 예가 없었다. 미국의 복잡한 사법체계 속에서도 연방정부 차원은 물론 지역검찰에서도 전임 대통령을 수사하는 일은 드물었다.

백악관에 파격을 불러왔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달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산가치를 부풀렸다는 사기 대출 의혹, 각종 성추문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지만 형사처벌로 이어질 것이라는 조짐은 보기 어려웠다. FBI는 예상과 달리 백악관 기밀문서 불법 반출 혐의를 내세워 공격에 나섰다.

이번 압수수색은 여러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정황은 이번 압수 수색이 정치적 결정임을 보여준다. 압수수색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두고 기사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에게는 결정적 타격이 될 수 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두달 만에 40% 선을 회복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실시된 로이터 입소스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0%가 바이든의 국정운영을 찬성했다. 묘한 결과다. 바이든 대통령의 최저 지지율이 지난 5월 36%까지 빠진 시점에 미국 유가는 최고점이었다. 당시 배럴당 5달러를 넘어섰던 미국 휘발유 가격은 최근 4달러 이하로 하락했다. 

바이든은 최근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지지율 하락 빌미를 제공한 인플레이션 상승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유가 하락은 바이든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가 안정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전격 방문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압박도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은 공화당 소속인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공이 크다. 파월 의장이 연이어 두 차례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에 나서며 세계적인 경기 하락 우려가 확산하자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전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파월 의장이 자신을 지명한 미국 대통령의 운명도 좌지우지하고 있는 셈이다.

바이든의 반격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처리가 임박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이라는 이름을 붙여 2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법안을 추진했지만 여태 공회전만 돌렸다. 이 법안을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수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예산 투입 규모를 축소한 데다 인플레이션 완화와 연계하면서 지금껏 바이든 대통령의 발목을 잡아온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맨친 의원도 인플레이션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피해야 했다. 지역구내 석탄산업을 옹호하려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주범으로 낙인 찍힐 수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승부를 걸어야 할 시점이었다. 지금 상황으로는 중간선거에서 의회 다수당을 공화당에 내줄 가능성이 크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은 상원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캐스팅 보트 덕에 겨우 처리됐다. 11월 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 아예 법안 처리가 불가능했다는 의미다. 

공격적으로 나서기에는 최적의 시점이었던 셈이다. 미 법무부 장관은 사실상 검찰 총장을 겸하고 있는 체제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정치적 수사도 가능하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일단 최악의 고비는 넘겼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역공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조기에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지지세력 규합에 나서며 사법 처리 가능성을 차단하려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최근 자신이 후원한 인사들이 연이어 공화당내 경선에서 승리하며 기세를 높여왔다. 반면 의사당 난입 사건 후 추진됐던 트럼프 탄핵에 찬성했던 공화당 의원들은 줄줄이 선거 본선행 티켓을 얻지 못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비수를 꽂은 공화당 의원들을 제거하는데 혈안이 돼왔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눈은 여전히 트럼프를 향한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 등 경쟁자들은 여전히 트럼프의 벽을 넘기가 만만치 않다. 

트럼프가 사법처리되며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트럼프와 각을 세웠던 워싱턴포스트가 한국의 사례를 거론하며 전직 대통령도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선 출마 시 당선 가능성이 큰 트럼프의 본선 출전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민주당 진영의 전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본인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행동하고 있다. 그는 압수수색 사실을 공개하며 "검찰의 직권 남용이고, 사법 체계를 무기로 활용한 급진좌파 민주당원의 공격"이라며 자신을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게 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이번 일로 트럼프의 대선 출마 행보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는 지난달 퇴임 후 처음 워싱턴DC를 방문했다. 그는 보수 성향 싱크탱크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연구소를 방문한 뒤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그것(대선)을 다시 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를 예고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의 출마 선언 시기를 놓고 저울질만 남았다는 분석이 우세한 가운데 전격적인 마러라고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공격은 최고의 수비전략이다.

바이든 역시 출마를 장담할 수 없다. 바이든도 민주당 내에서 차기 대선 출마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의 리턴 매치가 성사될지, 한 명만 등판 할지, 아니면 두 사람 모두 나서지 못하는 시나리오 중 무엇이 유력하다고 예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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