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수필가 11인’은 <주간한국>에서 이 시대 한국 수필 문학을 이끄는 중견급 수필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코너다. 연재에 참여하는 작가는 권남희(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장호병(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이승하(문학평론가 겸 중앙대 교수), 이경은(방송작가 겸 수필가) 등 4인의 전문가들이 선정했다. 선정된 작가들은 김미향(수필과비평), 김광(계간수필), 노상비·박원명화(이상 한국수필), 안윤자·박인경(이상 월간문학), 장금식(인간과문학), 최선자(동서문학회), 이춘희(문장), 전수림(리더스에세이), 정진희(한국산문) 수필가다. 참여 작가의 연령은 50~60대로 한정했으며, 이미 타 지면에 연재 중인 작가는 선정에서 제외했다. 이번 호에선 박원명화 작가의 ‘아! 현충원’을 소개한다.

사진=박원명화
사진=박원명화

국립현충원에 가본 지가 언제이던가요? 가족이나 묻혀 있다면 몰라도 가볼 곳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왜 하필 현충원이냐고요? 하기야 요즘 세상에 구경거리도 많고 여행 갈 명승지도 많은데 특별한 일 없이 현충원에 갈 까닭이 무에 있겠습니까. 애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니 그저 보훈의 달에나 잠시 생각하는 정도겠지요.

서울에 살면서 동작동 현충원에 가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랐습니다. 즐겁게 노는 곳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와 멀어지게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어떻든 그 또한 무관심이란 우리 사회의 얼룩진 일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현충원은 우리가 모두 진정으로 돌봐야 할 곳입니다. 고운 무늬로 남겨진 호국영령들의 값진 죽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언젠가 ‘청소년 안보 의식이 혼란스럽다’라는 신문 기사를 읽고 실망이 컸습니다.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아느냐는 질문에 ‘안다’가 43.2%, ‘모른다’가 56.8%입니다. 어느 신문의 조사에서도 ‘안다’가 46%라는 데 두 눈이 의심스러웠습니다. 심지어는 6·25가 북침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돈다니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를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역사에 대한 인식도 왜곡되어 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것도 이 땅의 어른과 교육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할 것입니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다짐은 ‘있음으로 행복’하고 ‘가짐으로 만족’하다는 삶의 경쟁만을 가르쳤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편한 것에만 길들어 살다 보니 자칫 안보에 대한 불감증이 심화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라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나 역시 아이들을 키워온 엄마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기보다는 영어 단어, 수학 문제에 치중해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곤 했습니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입시 열풍의 경쟁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찌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요. 한여름의 폭염보다 뜨거운 교육열을 따라가자니 가계부는 기울어도 최선을 다해 가르칠 수밖에요.

스포츠 조기 교육 열풍이 올림픽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고 합니다. 박태환 선수를 보고, 피겨 요정 김연아를 보고, 수영장과 스케이트장은 꿈나무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귀하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 유행 따라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현충원의 태극기는 평온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현충원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공존하는 곳으로, 언제 보아도 경내가 신비롭고 아늑합니다. 여름에는 녹음이, 겨울에는 설경이, 특히 봄꽃의 찬란한 색채와 가을 단풍은 이름난 어느 관광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이 깃들어 있습니다.

막연히 국가 유공자 가족이나 참배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인식입니다. 물론 엄숙하고 정숙해야 하겠지요. 현충원은 대한민국 국민, 아니 외국인 누구라도 언제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굳이 묘소 참배를 하지 않더라도 친근하기 이를 데 없는 현충원 둘레길을 산책할 수도 있고, 한시름 쉬어갈 휴식 공간도 많습니다. 숲 그늘에 정자도 있고, 편안히 앉을 벤치도 있어 누구와 오가든 부담 없는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물론 행락 철과도 상관없습니다. 복잡한 일상을 피하여 자연 속에 잠깐 쉬고 싶다면 언제든지 현충원으로 오십시오. 그 어떤 명산보다도 계절의 정조(情調)가 아늑하여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거진 숲을 보고 있으면 눈도 시원해지고, 마음도 느긋한 평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경내의 진혼곡이 잔잔하게 울려 퍼질 때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젖은 마음이 한층 차분해지기도 하여 지나온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나를 위로하고 추스르는 데도 좋은 약이 됩니다. 진혼곡은 말 그대로 영령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달래주기도 하지만 산 자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해 주기도 합니다. 그뿐인가요. 사열하듯 늘어선 묘비를 보고 있으면 지난 잘못도 보이고,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국립서울 현충원은 영령들이 편히 잠들어 있는 곳이지만 입구 바로 앞에 있는 넓은 잔디밭을 보면 마치 평범한 시민 공원 같기도 합니다. 정문은 물론 쪽문을 개방해 인근 주민이 산책도 할 수 있고, 길도 완만하여 걷기에도 좋습니다. 봄에 피는 수양벚꽃은 이제 현충원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숲으로 뒤덮인 둘레길을 걷다 보면 이름 모를 들꽃도 만나고, 숲지 식물도 만나고, 새소리도 듣고 그도 지치면 잠시 쉬었다 갈 정자도 곳곳에 있어 한시름 쉬었다 가는 것도 걷는 것 못지 않은 즐거움입니다. 세상의 소음에서 잠시 비켜나고 싶다면 푸른 숲 우거진 현충원으로 오십시요.

<박원명화 작가 프로필>
충북 청주 출생
2002년 한국수필 등단
(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총장
수필집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달빛 사랑’, ‘디카, 삶을 그리다’ 외 다수
제39회 일붕 문학상, 제15회 한국문협 백년 상, 제42회 한국수필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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