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하워드 극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행사에서 중간선거 후 첫 대중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하워드 극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행사에서 중간선거 후 첫 대중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민주당의 선전으로 결론난 미국 중간선거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공화당의 압승을 뜻하는 ‘레드 웨이브’는 없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기사회생했다. 이번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을 위한 분기점이 될 것이란 전망은 눈 녹듯 사라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히려 느긋한 위치에서 트럼프가 재등판할지 여부를 기다릴 수 있는 입장이 됐다.

지난 8일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는 바이든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이면서 2024년 대선을 보여주는 모의고사였다. 미국 대통령들은 집권 2년차에 실시되는 중간선거에서 대부분 낭패를 겪었다. 그럼에도 대부분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에 실패한 경우는 지미 카터, 조지 HW 부시, 트럼프 전 대통령 세 명이다.

카터, 부시 두 사람과 달리 트럼프는 퇴임 후 2년간 조용히 세를 과시하며 대선 재출마 기반을 다져왔다. 그 결과가 이번 중간선거에서 확인될 것이라는 예상도 지배적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이 달랐다. 트럼프가 전략적으로 지원한 인사들이 핵심 지역에서 패했다. 미국 대선은 지지당이 수시로 달라지는 '스윙스테이트'에 의해 결정된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지세가 확연한 캘리포니아, 텍사스의 경우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서도 플로리다,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등에서 판세가 갈렸다. 이곳을 차지한 이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는 자신이 지지하는 인사들이 스윙스테이트의 의회, 주정부 권력을 차지하길 희망했고 지원 공세에 나섰다. 당연히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도 결연하게 맞섰다.

대표적인 예가 펜실베이니아주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한 뉴욕, 뉴저지 인근이면서도 중립적인 성향을 보여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에서 이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대선 승리의 기반을 닦았다. 2020년 대선은 물론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트럼프는 이곳에 화력을 집중했다.

펜실베이니아는 바이든 대통령의 고향이면서 바이든의 정치적 고향인 델라웨어주와도 접해 있다. 누구도 이 곳을 내줄 수 없다. 트럼프는 이 지역 메흐멧 오즈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지지를 천명했고 자신이 후원한 후보의 당선을 위해 펜실베이니아를 누볐다. 바이든도 물러날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검표 과정을 거치며 펜실베이니아에서 간발의 차이로 신승한 경험은 방심을 불허했다.

바이든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함께 존 페터만 민주당 상원 후보 당선을 위해 공동유세를 했다. 상원의원 선거가 2년 후 대선을 내다볼 수 있는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결과는 접전 끝에 바이든의 승리였다. 트럼프에게는 뼈아픈 패배였다.

조지아의 상황도 트럼프의 희망을 빗나갔다. 트럼프가 후원한 전직 프로풋볼 스타 허셜 워커는 현직인 래피얼 워녹 상원 의원을 침몰시키기 위해 나섰지만 1%포인트도 안 되는 격차로 2위에 머물렀다. 조지아주는 50%를 얻은 후보가 없다면 결선투표를 치른다. 민주당의 상원 장악 여부를 결정할 최후의 결전이다.

민주당이 승리하면 상원 50석을 확보, 카밀라 해리스 부통령의 캐스팅 보트를 더해 다수당 지위를 확보할 전망이다. 당연히 양당의 화력이 총집결될 것이 뻔한 일. 지난해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워녹이 승리해 민주당에 상원 지배력을 선사한 바 있다.

트럼프는 여전히 자신이 후원한 300명 이상의 후보 중 200명이 당선됐다고 주장했지만 상처는 아프고 깊다. 트럼프가 이번 선거 승리를 2024 대선 출정식의 전리품으로 삼으려던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트럼프는 선거 전날 오는 15일 중대 발표를 예고하며 자신의 대선 출마 선언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공화당과 트럼프 측근들 사이에서는 당장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트럼프의 연설 원고를 쓰는 최측근 제이슨 밀러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에게 조지아 결선 투표 이후까지 대선 출마 발표를 연기하도록 조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아 결선투표 승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에 트럼프의 대선 출정 선언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낙태권 문제도 트럼프가 자초한 형국이다. 트럼프가 보수 절대 우위로 만든 미국 대법원의 결정이 오히려 여성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감을 불러와 세력을 결집시킨 이유로 꼽힌다.

트럼프의 경쟁자가 급부상한 것도 두드러진 변화다. 론 드산티스 플로리아 주지사는 재선에 성공하며 공화당의 대선 예비주자 이미지를 키웠다. 

바이든은 기사회생했다. 선거직전까지도 민주당의 텃밭인 뉴욕지역에 지원 유세를 나갈 정도로 패배 가능성이 부각됐다. 치솟는 물가가 그의 재선에 가장큰 걸림돌이었지만 선거 직후 발표된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낮은 것도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지난 40년간 그 어떤 역대 민주당 대통령보다도 첫 임기 중간선거에서 가장 적은 의석을 잃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재선 도전의사가 있음을 재확인하고 내년 초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다. 이는 현재 자신의 출마에 긍정적이지 않은 당내와 국민들의 여론을 되돌린 후에 출마선언을 하겠다는 계획임을 엿볼 수 있다.

바이든은 재선시 임기 마지막해 나이가 86세의 고령이라는 점이 결격사유로 거론되지만 당내에서도 그를 대신할 만한 후보가 뚜렷하지 않다.

바이든이 출마를 포기할 경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해리스 부통령은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에서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의원 역시 고령인데다 지속적으로 바이든 대통령 출마시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결국 바이든이 나서지 않을 경우 본선 경쟁력을 가진 후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다음 민주당 대선 후보도 '어게인 바이든'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드산티스가 갑자기 주머니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그렇다고 트럼프를 무시할 수는 없다. 여전히 트럼프는 전국적으로 강력한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 있다. 드산티스의 성과는 플로리다에 그친다. 미국 전역, 특히 트럼프 지지 성향이 큰 지역에서 드산티스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도전과제가 남아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당내 비판에도 불구하고 2024년 미국 대선은 여전히 '바이든-트럼프'의 리턴매치가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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