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022 시즌 ‘웰뱅’ 우승샷 주인공
“감격의 순간 지금도 소름 돋아요”

프로당구 선수 한지승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한지승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한지승(26·웰컴저축은행) 선수는 PBA의 ‘젊은 피’ 1990년대 세대 중 한 명이다. 조용한 성격의 그는 튀는 행동이 거의 없다. 그래서 또래 선수는 물론 팀 내에서도 ‘존재감’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냉혹한 승부와 자신 만의 개성을 뿜어내야 하는 프로 세계에서 자칫 평범한 선수로 비쳐질 여지가 많다. 하지만 그는 ‘침묵의 암살자’처럼 본능을 발휘했다. 팀이 정규 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원년 통합우승을 놓친 아픔이 떠오른 순간에 마지막 우승 샷을 날린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신남호·이충복 밑에서 기초 다져

선수 갖춰야 할 인성부터 배워

학창 시절 한지승은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다. 딱히 내세울 특기나 장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를 지켜본 한지승의 부친은 당구 선수를 권유했다.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던 부친이 세계 3쿠션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들의 활약 모습을 보고 넌지시 건네 본 것이다.

“아버님의 권유에 저도 큰 고민을 하지 않고 받아들였어요. 그때가 16살이었는데 바로 신남호(PBA) 프로님을 찾아가 4년 간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당시 대전에 살고 있었는데 신 프로님이 대전에서 활동하고 계셨거든요. 뱅크샷과 감각적인 공략법을 많이 배웠죠.”

신남호는 어린 제자를 받아들이면서 기술이 아닌 인성부터 가르쳤다고 한다. 인성을 갖추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 잘못된 길로 가는 경우가 너무 많아 어린 선수가 이를 되풀이하는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한지승도 인성을 강조한 가르침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한지승은 20살에 서울로 이사했다. 이때 모신 스승이 이충복(시흥체육회) 선수. 1년 동안 이충복의 제자로 들어간 뒤 모든 것을 바꾸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충복 선생님은 기본기를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기본자세, 스트로크, 기본배치 공략법 등 기초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후유증이 좀 왔죠. 자세 등을 바꾸다 보니 약 6개월 동안 헤매면서 슬럼프를 겪었는데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 기본기를 다시 점검한 것이 선수 생활의 큰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프로당구 선수 한지승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한지승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고등학교 2학년인 2014년에 대한당구연맹 선수로 등록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승과 준우승을 오가는 등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 기세를 몰아 한지승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계 주니어 3쿠션 선수권대회’에 참가해 3위를 기록했다. 당시 우승은 조명우(실크로드시앤티), 2위는 신정주(하나카드) 선수가 차지해 한국 선수가 입상을 독차지했다.

“당시 4강전에서 신정주 선수와 붙었는데 제가 후반까지 앞서고 있었어요.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결승에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집중력이 흔들리기 시작해 결국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상황이 큰 교훈으로 남아 있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대가가 크다는 점을요. 이후 연맹 시합에서도 집중력이 흔들려 후반에 역전패를 많이 당한 경우가 많아요.”

‘웰뱅’ 발탁, 당구 인생 전환점

롤모델 쿠드롱과 한 팀이 되다

한지승은 PBA가 출범하면서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40점을 먼저 득점하는 기존 연맹 경기 방식은 실력이 부족하면 경기를 뒤집기가 사실 어려웠다. 하지만 세트제 방식은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면 실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세트를 따낼 수 있는 의외성이 커 보였다. 그 점이 매력으로 다가와 도전을 결심했다.

프로 선수가 됐지만 아직 그의 실력은 미완성 상태였다. 한창 커 나가는 젊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때 웰컴저축은행에서 그를 발탁하는 행운이 뒤따랐다.

“아마 젊은 선수를 육성하는 차원에서 실력이 부족했던 저를 뽑아 주신 것 같아요. 지금도 저는 큰 행운이라고 여깁니다. 평소 동경했던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 선수와 한 팀이 됐다는 사실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죠. 쿠드롱 선수한테는 너무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공을 다루는 다양한 방법은 물론이고 멘탈을 관리하는 법까지 정말 많이 배우고 있거든요. 또 서현민 선수나 비롤 위마즈(튀르키예) 선수한테도 기술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죠.”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한지승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팀은 ‘원팀’으로 똘똘 뭉쳤다. 리더 쿠드롱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항상 장난을 같이 치면서 긴장을 풀어준다. 막내 김예은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한다. 평소에도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연습을 같이 하거나 회포를 푼다.

하지만 ‘영건’ 한지승은 ‘잘 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부담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개인 성적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6강전 진출이 최고 성적이었다. 팀 리그에서는 나름 선전을 했지만 기라성 같은 선배 선수들의 빛에 가려 순서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성적에 기여할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지승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22년 3월 2021~2022시즌 웰컴저축은행 PBA 팀리그 파이널 6차전에서 팀의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샷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 샷이 남달랐던 이유가 있었다. 전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쓴잔을 들이켰던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팀원들 뇌리에 떠오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지승은 초반에 2:5로 뒤진 상태였다.

하지만 한지승이 행운의 키스 이후 하이런 8점을 몰아쳐 지난 시즌 ‘한풀이’에 성공하자 팀원들은 환호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서로 얼싸안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당시 상대팀이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온 블루원리조트였는데 세트스코어 3 대 3인 상황에서 제가 마지막 6세트 주자로 나섰어요. 긴장감이나 압박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최대한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고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어요. 마지막 샷이 성공해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모든 팀원들이 달려와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하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아요.”

프로당구 선수 한지승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한지승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군 입대 전 연속 우승 돕고 싶어”

하체 강화·승부처 결정력 보완에 주력

한지승은 올해 군 입대를 앞두고 있지만 마음이 크게 무거운 편은 아니다. 현역병이 아닌 사회복무요원(공익근무) 판정을 받은 탓이다. 퇴근 후나 주말을 활용해 꾸준한 당구 연습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아직 입대 시기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가능하다면 입대 전에 팀이 2년 연속 우승하는데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개인 투어에서는 일단 1부에 잔류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일 수밖에 없고요. 2부 리그로 강등이 되면 팀 리그 참여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이죠. 그래도 공익근무라서 감을 잃지 않고 당구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PBA의 젊은 피로 수혈된 1990년대생 선수들과도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신정주 외에도 임성균·김보미·김예은·김율리(김예은의 언니) 선수들과 수시로 만나 어울리고 연습도 같이 한다. 물론 당구 실력을 쌓기 위한 도움도 서로 주고받는다.

“같은 또래 선수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중압감입니다. 대부분 학창 시절부터 당구만 접해 사회성이 부족한 편인데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미디어 환경에 자주 노출되는 것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어린 학생 선수들에게 놀 때는 놀고 연습할 때는 집중하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당구를 즐기면서 해야 그나마 중압감이 덜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그는 잠깐 방황을 경험했다. 학창 시절 딱히 사춘기가 온 것은 아닌데 20살의 늦은 나이에 사춘기가 찾아온 것이다.

“한창 친구들과 만날 시기인 무렵에 저 혼자 당구장만 들락거리니까 어느 순간 소외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당구장 대신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이상하게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당구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당구장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고 좋아요.”

또래 선수 중에서는 김행직(전남당구연맹) 선수의 동생으로 잘 알려진 김태관 선수의 약진이 두드러진 것 같다고 평가한다.

“3부 리그에서 우승한 뒤 이번 시즌에 와일드카드로 1부 리그에서 뛰는 걸 봤는데 군대를 다녀온 후 실력이 예전보다 탄탄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만만치 않은 1부 리그에서도 나름 선전을 하고 있어서 저도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프로당구 선수 한지승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한지승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부친의 권유로 시작한 당구였지만 모친은 처음에 반대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당당히 팀 리그에 참여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원이 생기자 이제는 모친이 더 지지하고 응원해 주고 있다.

“만약 개인 투어 우승을 하면 우승 상금은 전액 부모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작게나마 부모님의 지원에 보답하고 싶거든요. 혹시라도 다시 우승을 하면 그때부터는 제가 직접 관리해 볼까 해요.(웃음)”

한지승은 자신의 PBA 성적을 중간 정도라고 평가한다. 한 단계 더 발전을 위해 그는 두 가지 정도 개선할 필요성을 느꼈다.

“첫째는 집중력 유지를 위한 체력 강화를 목표로 삼았어요. 현재 몸무게가 70kg인데 80kg까지 근육량을 늘릴 생각입니다. 특히 하체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하체가 튼튼해야 상체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어서죠. 두 번째는 승부처에서 점수를 내야 할 순간에 반드시 성공하는 결정력을 키우고 싶습니다. 필요한 순간 결정력을 갖춰야 정상권 선수로 올라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정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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