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 폐업 이후 당구에만 전념
개인전 준우승과 팀 리그 우승…정상 향한 질주

[스포츠한국 김동찬 기자] 프로당구 PBA 출범과 동시에 대한당구연맹에서 프로 리그로 넘어온 이상대(41)는 지난 시즌까지 16강 3회 진출이 최고 성적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 그는 ‘환골탈태’와 다름없는 변신에 성공했다. 누나와 동업으로 개업한 양고기 집이 폐업을 하면서 되레 당구에만 전념할 계기가 마련됐다. 개인 연습시간을 크게 늘리자 실력도 따라 올라왔다. 올해 개막전 8강에 진출하더니 2차전에선 결승까지 진출했다. 스페인의 강자 다비스 사파타(블루원엔젤스)와 접전 끝에 3대4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그는 인상 깊은 경기력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당구 팬들에게 ‘이상대’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상대는 이어 하나카드 ‘팀 에이스’로 꼽히는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를 대신해 2라운드, 3라운드 대체선수로 발탁돼 엄청난 활약으로 전반기 팀리그 우승에 힘을 보탰다. 개인리그 준우승과 팀 리그 참가로 그는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프로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한 이상대는 언제나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우승 후보’로 이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프로당구 선수 이상대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이상대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중학생 때 재미로 시작한 당구

1년 만에 전주 지역 최강자 부상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직전 당구를 시작한 이상대는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이미 4구 기준 300점 수준을 넘어섰다. 이상대는 중학생 시절부터 전주에선 상대가 없을 만큼 고수로 알려지면서 차세대 당구스타로 주목을 끌었다.

“중3때 친구하고 놀다가 재미로 당구를 시작했어요. 4구는 해보지 않았지만 1년 만에 4구기준 300점 정도였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진 저보다 잘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해서 그냥 쭉 300점이다 생각하고 당구를 접하다 보니 흔히 말하는 ‘짠 다마’로 불렸습니다. 300일지 400일지 그 이상 실력인지 몰랐던 거죠. 그렇다고 고수를 찾아 지방을 다니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상대는 애초에 당구 선수를 꿈꾸지 않았다. 정확하게 당구 선수라는 존재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군대 전역 후 당구 동호인 활동을 하기 시작한 그는 자신보다 당구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어울렸다.

“25살 때 당구 동호인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대대를 접했고, 서양수·최원준 (PBA) 선수를 만났습니다. 두 분 형들이 전북당구연맹에 들어가면서 선수 생활이 재미가 있으니 저한테도 권하더라고요. 그러다 당시 제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는 마음도 생겨 27살에 선수로 가입하게 됐습니다. 사실 이때만해도 당구선수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 가게도 하면서 동호인 활동하듯 선수 생활을 하게 됐죠.”

당구를 중학생 때 재미로 시작한 그였기에 특별히 당구를 배운 스승이 없었다. 지금처럼 유튜브나 당구 영상을 쉽게 접할 수도 없던 시절인 만큼 이상대는 당구를 책으로 배웠다. 책을 통해 습득한 그의 당구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점점 완성형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릴 땐 당구 서적도 외국어로 된 것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책에 있는 그림들을 보며 무작정 따라서 했죠. 양수 형이랑 원준이 형을 알게 되면서 형들한테 조금씩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시합이 끝나면 통화하면서 서로 피드백을 해주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죠.”

프로당구 선수 이상대가 경기도 화성 페리빌리어드 남양점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이상대가 경기도 화성 페리빌리어드 남양점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당구 반대한 어머니가 든든한 응원군

‘신의 한 수’가 된 팀 리그 대체선수 발탁

그의 어머니는 중학생인 아들의 당구장 출입을 반대했다. 특히 중학교 때 공부를 나름 잘했던 그였다. 당연히 어머니는 공부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었고 당구장에만 다니는 아들이 마뜩잖았다.

“어머니가 당구장 가는 것을 엄청 싫어하셨어요. 그런데 당구가 너무 재미가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당구장에서 계속 살았죠. 그러다 제가 당시 살짝 말썽도 피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무작정 당구를 반대하기보단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길 바라는 쪽으로 변하셨어요. 오히려 당구장 출입을 뭐라고 안 하시니까 저 역시 말썽을 피우지 않았죠.”

그가 커서 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후 TV에 나온 아들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이제 가장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팬이 됐다. 이상대는 당구 선수로 활동하는 것을 어머니한테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연맹 시합에서 8강에 올라 시합을 하는 모습이 TV에 나온 것을 보고 어머니가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는 이모들과 함께 TV에 나오는 이상대를 응원했다.

“올해가 좀 특별한 것은 제가 준우승할 때 아버지 생신이었어요. 우승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준우승으로 생신 선물을 안겨드릴 수 있었죠. 또 팀 리그 3라운드 당시 어머니 생신도 겹쳤는데 그땐 제가 좀 챙겨 드리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팀 리그 전반기 우승해서 그걸로 선물을 안겨드렸다고 생각합니다.”

2022 하나카드 PBA 챔피언십 준우승(위), PBA 팀리그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하나카드 선수단. (사진=선수제공)
2022 하나카드 PBA 챔피언십 준우승(위), PBA 팀리그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하나카드 선수단. (사진=선수제공)

이상대는 프로당구 원년 멤버 중 한 명이다. 프로로 넘어오면서 그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오롯이 당구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불안한 생계 걱정에 더 컸던 연맹 시절보다는 아무래도 프로 리그가 출범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프로당구가 생긴다고 했을 때 그냥 너무 좋은 거예요. 선수가 당구만 치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하니까요. 사실 연맹시절엔 당구만으론 먹고 살 수 없어서 대부분 선수들이 투잡, 스리잡을 했거든요. 제가 10년간 활동하면서 지역대회 우승상금까지 다 합쳐봐야 2000만원도 안 돼요. 게다가 프로 팀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 흥미가 생겼어요.”

올해 이상대는 대체선수로 팀리그를 경험했다. 2022~2023시즌 PBA 팀 리그 2라운드 개막을 이틀 앞두고 하나카드 팀의 에이스인 카시도코스타스가 입국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으면서다.

2라운드 출전이 불가능해진 카시도코스타스를 대체할 선수를 찾던 하나카드는 이상대를 대체선수로 뽑았다. 이 선택이 결국 ‘신의 한 수’가 됐다.

“팀 리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했었어요. 그러다 올해 대체 선수이긴 하지만 실제 팀 리그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너무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어요. 마음 편하게 즐기면서 팀 리그 2라운드를 하니까 성적도 좋았고, 내가 팀에 기여했다는 점에서도 뿌듯했죠.”

2라운드 7경기 9세트에 출전한 그는 7승2패라는 압도적 성적을 거두며 팀 단독선두에 보탬이 됐다. 이에 하나카드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준 이상대를 3라운드에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2라운드만 뛰고 끝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3라운드도 같이 하자고 하니 너무 부담되기 시작했습니다. 2라운드야 제가 못해도 다음 기회가 있는데 3라운드는 사실 전반기 마지막이니 잘해야만 하잖아요. 한판 한판이 살얼음판처럼 느껴져서 너무 부담됐어요. 제가 지면 저 때문에 우승을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대체선수가 아닌 그냥 팀원이었으면 물론 달랐겠죠. 제가 풀이 죽어 있으니까 그때 김가영이랑 김진아 선수가 ‘오빠 때문에 우리 2라운드 때 잘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라고 말해주는데 너무 고맙더라고요.”

프로당구 선수 이상대가 경기도 화성 페리빌리어드 남양점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이상대가 경기도 화성 페리빌리어드 남양점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비슷한 스타일의 사파타…경기 영상 즐겨봐

실전서 거듭된 패배로 ‘악연 아닌 악연’

이상대는 프로로 넘어온 후 무조건 잘하는 선수가 아닌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를 찾아 연구하고 습득하는 방식으로 실력을 쌓았다. 또 자신이 실패한 영상을 꼬박꼬박 챙겨보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는 특히 자신이 득점하지 못한 영상을 반드시 챙겨보는 스타일이다. 어떤 부분을 놓쳐서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는지, 당점은 제대로 활용해 맞췄는지 등을 되짚어보면서 실수를 줄이려는 의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를 유심히 관찰했다.

“사실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 선수가 워낙 잘하니까 몇 번 따라 해보려고 했는데 저랑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 어렵더라고요. 저하고 비슷한 선수는 다비드 사파타(블루원리조트)나 카시도코스타스 선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선수들 영상은 많이 보면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조재호(NH농협카드) 선수나 강동궁(SK렌터카) 선수의 영상도 가끔 보는데 스트로크가 너무 좋으니까 전 따라 하기가 버겁더라고요.”

이상대는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의 사파타와 ‘악연 아닌 악연’도 만들어가고 있다. 연습할 때 비슷한 스타일의 사파타 선수 영상을 가장 많이 챙겨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가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시합 때마다 사파타 선수와 마주칠 때마다 패배를 거듭했다. 그로서는 ‘인연’이 아닌 ‘악연’으로 작용했을 법 하다.

“지난해 16강에서 사파타를 만나서 졌었어요. 그런데 올해 개막전에서 8강에서 만났습니다. 결국 패배하긴 했지만 지난해 패배 때와 달리 느낌을 얻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다음에 만나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그러다 2차전 결승에서 또 사파타를 만났지만 또다시 졌어요. 진짜 이기고 싶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지니까 제 천적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꾸 진다고 생각하면 피하게 될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프로당구 선수 이상대가 경기도 화성 페리빌리어드 남양점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이상대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당구와 평생 함께하는 것이 꿈”

올해 목표는 결승전 다시 진출

이상대는 올해 목표를 한번 더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으로 잡았다. 처음 진출한 프로당구 결승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제가 성적이 계속 좋아지니까 올해 목표가 우승이 아니냐고 다들 물어보세요. 그런데 우승은 제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니까 우승이 목표라고 말할 수는 없죠. 다만 결승전엔 다시 한번 진출하고 싶습니다. 결승전에서의 그 기분을 한번 더 느껴보고 싶거든요. 떨리는 것도 아니고 좀 뭔가 붕 떠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제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도 남아 있어서 올해 결승전에 한번 더 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상대는 당구선수로서의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는 것과 함께 당구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50세가 넘어서도 선수로 활동해 후배들 양성에도 보탬이 되고 싶어 한다.

“선수로선 15년, 당구만 놓고 보면 30년 가까이하다 보니 저도 누군가 롤모델이 되고 싶더라고요. 같은 팀 김민영 선수 같은 경우 가끔 연락하고 지내는데 저한테 당구 배열을 사진 찍어서 보내줍니다. 그럼 전 조언을 해주고, 그럴 때 뿌듯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당구선수로 활약하면서 감독이나 코치도 하고, 후배도 양성하면서 죽을 때까지 그냥 당구와 함께 하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이상대는 올해 준우승 상금 3400만원을 빚 갚는데 사용했다. 그의 빚은 누나와 함께 2019년 오픈한 양고기 전문점이 코로나19 팬더믹으로 6개월 만에 닫으며 발생한 부채였다.

“당구를 하면서 가족은 제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누나와 가게를 하다 망했을 때 정말 미안했거든요. 아이러니하게 가게를 닫은 뒤 당구에만 전념하다 보니 매년 성적이 좋아졌어요. 앞으로 많은 상금을 받아서 누나를 도와주고 싶어요. 또 언제나 응원해주는 부모님과 형한테도 좋은 성적을 내서 보답하고 싶습니다.”

가족과 더불어 이상대는 남양 페리빌리어드 대표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가 당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든든한 후원자이기 때문이다.

“제가 연습하고 있는 여기 당구장 대표님이 인테리어 회사를 하고 계세요. 대표님이 저를 그 회사 정직원으로 채용해서 당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항상 제가 회사 홍보팀 직원이라면서 좋은 성적을 내라고 매 경기 응원도 해주시는 제 지원군입니다. 올해 다시 한번 결승에 올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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