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화문
돈화문

한 도성 안에 궁궐이 5개인 도시는 서울이 유일하다. 창덕궁은 종묘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궁이다. 창경궁에 얽힌 사연은 소담스럽고, 따뜻한 온기가 묻어난다.

창덕궁은 조선 태종이 경복궁을 창건한 지 10년 만에 다시 올린 궁궐이다. 북악산 자락의 품에 안긴 궁은 대갓집 분위기다. 창덕궁의 동선은 돈화문, 금천교, 인정전 등이 ‘ㄱ’자 혹은 ‘ㄴ’자로 꺾여 만난다. 후원까지 지닌 창덕궁은 오래된 뜰을 거니는 듯 살갑다. 조선의 왕들은 어느 궁보다 창덕궁을 사랑했고, 더 오래 머물렀다.

왕의 차고였던 ‘빈청’ 찻집

돈화문 월대 아래 내려 서서 창덕궁을 바라보면 북한산이 액자처럼 문 안에 담긴다. 돈화문 월대는 100년 가까이 땅속에 묻힌 채 가려져 있었다. 순종때 임금을 위해 마련한 자동차가 내전으로 들어오기 위해 장애물이 되는 월대를 흙으로 덮었고 최근에서야 제 모습을 되찾았다.

‘순종과 어차’에 관한 일화는 창덕궁 곳곳에 남아 있다. 희정전 앞에 들어선 기념품 가게 겸 찻집은 예전에 관리들이 임금을 만나기 위해 대기하던 빈청이었다. 그 후 빈청은 순종의 차를 세워놓던 어차고로 쓰였다. 순종은 문짝을 나전칠기로 장식한 목재 캐딜락 리무진을 타고 다녔다. 희정전 앞 입구에는 차가 드나들고 사람이 내릴 수 있도록 캐노피형 덮개가 마련돼 있다.

돈화문 지나 금천 좌우에는 천연기념물인 회화나무 고목이 도열해 있다. 보물인 금천교는 서울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됐다. 금천교에서 진선문을 바라보면 일직선이 아니라 축이 비틀어져 있다. 진선문 넘어 회랑으로 둘러싸인 마당 역시 직사각형이 아닌 사다리꼴이다. 현재의 창덕궁은 임진왜란 후 중건된 뒤 수백년간 증축, 화재, 소실, 복원과정을 거쳤다.

금천교
빈청 찻집

단청 없는 낙선재와 오붓한 후원

공식행사를 치르던 국보 인정전은 일제강점기때 잔디밭을 조성하고 내부에 무쇠로 만든 샹들리에 수백개를 걸었다. 벽에 있던 왕조를 상징하는 일월오궁도는 한때 봉황으로 바뀌었다. 창덕궁을 재조명하며 원상태로 복원된 것도 있지만, 인정전 나무바닥 등은 그대로 남겨뒀다.

임금의 서재였던 희정당은 순조때 편전으로 활용됐고. 순종때는 손님을 맞는 접견실로 쓰였다. 차가 곡선을 그리며 휘어 나가는 화려한 건물로 변신한 것도 이때쯤이다. 임금이 정무를 보던 선정전은 푸른 색 기와 지붕이 도드라지며, 왕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은 뒷마당 정원이 아름답다.

내전 끝자락의 낙선재는 궁궐 건물로는 이례적으로 단청 없는 건물이다. 헌종은 낙선재를 올리며 선비들의 사랑채처럼 수수하게 지을 것을 주문했다.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곳이 낙선재였고,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의 장례식 역시 낙선재에서 치러졌다

낙선재를 벗어나 후원으로 향하면 궁궐의 뒷동산이 펼쳐진다. 연못 부용지에는 세조, 숙종, 정조의 스토리가 영화당, 규장각 등의 건물과 함께 담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후원에 북한산 호랑이가 출몰했으며 사람을 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낙선재
인정전
창덕궁 누각
부용지

여행메모

교통: 창덕궁은 3호선 안국역에서 가깝다. 한복을 입으면 무료입장(내전)이 가능하며, 후원은 사전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식당: 창덕궁 돌담길은 계동골목으로 이어진다. 계동골목에서 중앙고까지 한옥을 개조한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카페, 분식집들이 들어서 있다.

기타: 인정전은 국보이며 돈화문, 금천교, 인정문,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낙선재, 부용지 등이 보물이다. 후원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를 위해 지은 집으로 마구간, 아궁이, 굴뚝 담 등이 인상적이다.

계동골목 한옥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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