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과 '증오'의 정치 유발하는 소선구제
국회 총리 추천, 대통령 결선투표 개헌 필요
정치개혁 외친 거대 민주당, 의지는 있을까?
정개특위의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 주목

현행 선거제 평가 및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를 위해 지난달 19일 오후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열린 정치관계법소위원회 공청회에서 조해진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현행 선거제 평가 및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를 위해 지난달 19일 오후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열린 정치관계법소위원회 공청회에서 조해진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개헌은 가능할까? 정치개혁은 성공할까? 그리고 당장 4월 10일까지 선거제도 개편을 할 수 있을까?

국회의장의 진정성은 분명하고 정치권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이 출범했다. 정치개혁을 주제로 한 의원모임은 ‘화해와 전진 포럼’ 이후 21년 만이고 100명이 넘는 여야의원이 참여한다. 국회의장은 “2월 말까지 정개특위가 복수안을 만들고 3월에는 전원위원회를 주 2회 이상 열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주 국회 정개특위는 4가지의 선거제도 개편안을 확정했다. 그것은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결합, 소선거구제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합,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 그리고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합 방안’이다. 정개특위는 곧 복수안으로 압축할 수도 있다.

개헌과 정치개혁 그리고 선거제도 개편의 완성을 장담할 수는 없다. 지금 사람들의 관심은 ‘김기현은 결선투표 없이 당선 되느냐’, 그리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구속되느냐? 그 이후 민주당은 어디로 가느냐’에 쏠려있다.

선거제도 개편이 가능하다면 개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어렵다면 개헌은 불가능하다. 선거제도 개편이 쉽지 않은 것은 기존 정치적 이해관계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어떤 선거구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현직 국회의원과 예비 출마자는 물론 정당 간 유·불리 문제가 발생한다.

오늘의 한국정치는 민주주의의 광장 밖에 내몰린 시민들을 대표하고 있지 못하다. 현행 ‘소선거구 중심의 준연동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가장 큰 문제는 비례성 위기다. 300명의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253명의 지역구 의원과 47명의 전국구 비례대표 의원으로 구성되는데 소선구제에선 유권자의 표심이 비례적으로 반영되지도 못한다.

2020년 총선에 투표한 유권자 10명 중 4명(43.7%)이 던진 표는 ‘사표’다. 한 표라도 더 얻은 사람이 당선되는 제도 때문이다. 지난 총선 지역구 투표에서 49.9%(1434만 5425표)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과 41.5%(1191만 5277표)를 득표한 당시 미래통합당의 지역구 의석은 163석 vs 84석이었다. 8.4% 포인트의 득표율 차이가 의석수에서는 64% vs 33%의 더블 스코어였다. 1.7% 득표율의 정의당 의석비율은 0.3%에 불과했다.

지역이나 권역별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수도권 지역구에서 40.7%(서울 41.9%, 인천 39.0%, 경기 41.1%)를 득표했지만 121석 중 16석(13.2%)을 얻는데 그친다. 반면 민주당은 55.4%의 득표로 103석(85.1%)을 차지한다.

영남과 호남에서도 양당은 자신들의 득표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미래통합당은 영남에서 55.9% 득표율로 영남 65석 가운데 56석(86.2%)을 차지했고 민주당은 호남에서 68.5% 득표율로 호남 28석 가운데 27석(96.4%)을 차지한다. 민주당은 경북에서 26.7%(대구 28.9%, 경북 25.4%) 득표율로 1석도 획득하지 못했다. 경남에서는 40.1%(부산 44.0%, 울산 39.1%, 경남 36.1%) 득표율로 7석을 얻는데 그쳤다.

대한민국 정치는 다수결 민주주의로 ‘독점의 정치이자 배제와 증오의 정치’다. 양당 중심의 혐오정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와 영호남의 지역대결 구도와 함께 대립과 교착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독점의 정치는 선거제도와 정당집단주의 때문에 가능한데 당론투표의 정당집단주의 또한 선거제도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선거구제가 논의의 핵심인 이유다.

21대 국회의원의 95%는 양당에 소속되어 있다. 거대 양당 후보가 아니면 당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 환경이다. ‘공천만이 살길’이라며 공천을 좌우하는 몇몇 실세나 극단적 지지층의 눈치만 살피는 기류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정당의 양극화는 사회적 양극화로 이어진다. 적대의 정치는 일상화된다. ‘친일’ vs. ‘종북’ 그리고 지역주의, 나아가 젠더 및 세대 갈등까지 ‘적대’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대해 여당 지지자 대부분은 거짓이라 하지만 야당 지지다 다수는 사실이라고 믿는다. ‘나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은 국가적 이익에 무관심’하다는 응답이 여야 지지자 모두 10명 중 7명에 이른다.

최근 여당도 야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한 응답자는 국민 10명 중 6명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호감가지 않는다는 응답도 모두 60%가 넘는다. 양쪽 모두 '찐' 지지층에 기대는 양극화의 적대정치가 제도화된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과 정치개혁의 목표는 분명하다. 대화와 타협의 국민 삶의 개선을 위한 문제해결의 정치다. 대립과 교착 그리고 혐오와 배제의 독점정치가 아니라 견제와 균형 그리고 분권의 국민 삶의 개선을 위한 문제해결의 정치다.

“다당제를 전제로 해서 정치 세력 간에, 특히 지역과 세대 간에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김진표 국회의장의 언급은 개혁방향을 제시한다. ‘다원주의 연합정치’가 불가피한 제도적 환경을 만들자는 말이다.

핵심은 ‘거대 양당의 독식혁파와 극단적 대결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다당제’로의 전환이다. 다당제 전환을 위한 방법은 크게 보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역구 단위 선거구제 변경이고 다른 하나는 득표와 의석 간 불비례성을 보완하는 비례대표제 개선이다.

이 때 주의할 게 있다. ‘양당제는 나쁘고 다당제는 좋다’는 전제다. 중대선거구제든 비례대표 확대든 양당중심의 정치가 완화되고 다당제가 안착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부분 해소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있다.

하지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더라도 우리와 같은 확고한 양당 체제를 깨뜨리기는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오히려 중대선거구제와 다수대표제 결합이 비례성을 낮추고 거대정당의 과다대표 현상 또는 상위 당선자와 하위 당선자 간 표의 가치 불균형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나아가 다당제라 하더라도 결국 시민사회 다양한 집단과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이 존재하며 정책적 차별화가 중요하다. 거대 정당들이 쪼개져 군소정당이 되어 사실상 기존 정치 엘리트들이 나뉘어 경쟁하는 구도라면 양당체제보다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비례성과 대표성 제고의 선거제도 개편이 우선이다. 비례성과 대표성이 개선된 선거제도는 다원주의 연합정치를 향한 필요조건이다. 여기에 결선투표의 대통령 선거제도가 추가되면 다원주의 연합정치가 국회는 물론 대통령 선거과정에서도 가능해진다. 국회 내 정당 파편화와 이에 따른 다당제 현상은 일시적이며 대선을 향해가며 양당제 경향 또는 양대 블록화(化)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형 선거제도의 비례성 강화는 총리제의 내각제적 요소를 가진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특성과 함께 논의되어 문제 해결과 통합의 정치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성공하는 정치개혁의 충분조건이다.

국회의 총리 추천제에서 시작하여 최종적으로는 국회의 ‘총리 선출제’로 진행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면 ‘합의제 민주주의’가 된다. 결국 비례성과 대표성의 선거제도 개혁에서 출발하여 대통령 결선투표가 더해지고 국회의 총리추천에서 시작하여 국가원수의 직선 대통령과 원내 다수파 총리의 행정부 구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정치개혁의 완결이다. 문제 해결과 통합의 정치를 향한 한국정치는 개헌을 통해 공식적으로 완료된다.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개혁, 특히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던 정치인들이다. 정치인과 권력으로서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물론 그들도 어떻게 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는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김 대통령은 1998년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했었고, 노 대통령은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가 합의해 선거법을 개정해 주시기 바란다. 총선에서 현실화하면 저는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게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까지 했다.

노 대통령은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일 좋겠지만, 대도시에서 한 선거구에 여러 명을 뽑고 작은 도시와 농촌에서는 지금처럼 하나만 뽑는 도농복합선거구제라도, 한나라당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차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선거 때 잘못 흉내 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최근 주목받은 중대선거구제 그리고 현실적으로 검토가능 한 도농복합선거구제 모두 그 때부터 나왔던 대안들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노 대통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반 발짝만 앞서가는 리더십’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치개혁 2050 긴급토론회 '중대선거구제 vs 대선거구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치개혁 2050 긴급토론회 '중대선거구제 vs 대선거구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4월 10일까지 마무리해 해야 할 선거제도 개편의 성패는 민주당에 달려있다. 4년 여 전 당시 제1야당을 제외하고 '야3당+1' 주도로 이른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들었던 민주당은 지금 원내 절대다수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2022년 2월 27일 민주당은 국회에서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다당제와 정치개혁을 찬성하는 정치세력은 모두 함께하자”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결의문에는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지방선거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 입법 추진 등 비례성을 강화한 선거제도 개혁 공약이 담겨있었다.

민주당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와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도 정치교체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공동선언에는 양당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는 정치교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정치개혁 법안을 만들어 대통령 취임 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개혁법안에는 연동형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 국회의원 면책특권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국회의원 3선 초과 연임금지 등이 포함되었다.

작년 8월 전당대회를 전후해서도 민주당에서는 선거제도 개혁 목소리가 높았다. 이재명 의원은 당대표에 출마하면서 “비례민주주의 강화, 위성정당 금지, 국민소환제, 의원특권 제한, 기초의원 광역화 등 정치교체를 위한 정치개혁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고 전당대회에서는 93.72%의 찬성률로 ‘국민통합 정치교체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올해 4월까지 선거법을 개정하고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는 제도 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과연 정치개혁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받는 이유다. “다당제와 정치개혁을 찬성하는 정치세력은 모두 함께하자”는 의지와 정치교체 공동선언, 그리고 이 대표의 다짐과 전당대회 결의안이 그 후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벌써부터 선거제도 개혁을 하겠다고 말하지만 어떤 전략과 내용인지 특히 국민의힘과는 어떻게 협상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다. 원내 절대 다수당 민주당이 정치적 수사를 넘어 지역주의와 독점의 정치타파를 위한 실질적 노력을 하는지 반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당리당략과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하는 것으로만 비쳐진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중대선거구제 전환은 제한적 수준에 머물고 오히려 일부지역에서는 2인 선거구가 늘었다는 것은 민주당이 동의해서 가능한 일이다. 당시만 해도 민주당이 국회는 물론 영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광역 지방의회 의석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새해 초 윤 대통령의 언급으로 중대선거구제가 주목받았다. 아쉽게도 대통령의 중대선거구 제안은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개헌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것을 보면 대통령의 언급이 개헌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정치개혁의 차원에서 검토된 것도 아니었다. 당리당략과 기득권의 포기 그리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정치개혁 성공의 필요조건이라면 엄밀한 제도설계 능력은 충분조건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회 정개특위는 4가지의 선거제도 개편안을 제시했다.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결합 ▲소선거구제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합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합 방안이다. 첫 번째는 과거방식으로 보이는데 대체로 국민의힘 의원들이 제출한 개정안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에 강조점이 있다.

나머지 3개 대안은 대체로 민주당 의원들의 개정안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야당 의원안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추가하며 적게는 3인에서 10인까지의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다.

두 번째 안인 소선거구제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합안은 위성정당 문제의 대안이 핵심이다. 의석수의 50% 이상을 공천한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도 무조건 50% 이상 공천하도록 하는 안과 득표율이 높은 지역구 낙선자를 비례대표로 선발하는 석패율제 등의 보완책이 제시된다.

네 번째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권역이라는 지역 대표성을 보장하는 장점은 있지만 지역 이익의 과다대표 가능성이 있다. 지역소멸 위기 속에 지역 대표성을 부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비례대표제는 계층·계급, 직능, 세대, 여성, 그리고 사회적 약자 등의 대표성과 전문성을 높이자는 것이 가장 중요한 취지다. 권역을 어떻게 나눌 지도 쟁점이다.

남는 것은 세 번째 안 도농복합선거구제다. 도농복합선거구제는 도시지역은 중대선거구제, 농어촌 지역은 소선거구제를 함께 사용하는 제도다. 특히 급격하게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지방소멸과 인구감소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방안이다. 국회 정개특위의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가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데 인식을 공유했다”는 언급이 눈에 띠는 이유다.

현재 전국 253개 지역구의 평균 인구수에 33.3%를 가감한 수치로 인구 상·하한선이 설정된다. 201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당시 헌재는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구와 가장 적은 지역구의 편차가 2 대 1을 넘을 수 없다”고 했다. 기준시점은 총선 직전 해 1월 31일 인구다.

선거 때마다 지역구 조정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에 따라 전국을 똑같은 인구 기준으로 정하면 경기 등 수도권은 총선 때마다 지역구가 늘고 영·호남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역 대표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여 인구 급감 지역은 인구 하한선을 예외로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인구 범위를 조정해 왔던 게 지금까지의 관례이기도 하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개선 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한 지역 대표성 보완 등의 방안은 비례대표의 수를 늘리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일부 개정안은 전체 의원정수를 확대하기도 한다. 의원정수가 고정된 상황에서 비례대표의원 수를 늘리려면 지역구를 축소해야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적 반감이다. 의원 수를 늘리는데 대한 국민적 반발이 심하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느니 차라리 국회를 없애라’고 할 판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은 국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직접적인 함수 관계에 있다”며 “굉장히 어려운 여건”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하되 인건비 예산을 동결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국회의원 수를 현행 300명보다 30명에서 50명 늘리면서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인건비 예산을 5년 간 동결하자는 것이다.

한시적으로라도 조건부 비례대표제 확대를 위한 국회의원 정수 증원을 고려할 수도 있다. 동시에 일부라도 개방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국민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비례대표 공천과정의 민주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도시지역의 지역구 의석수가 압도적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도농복합선거구제가 안착하려면 중대선거구제가 제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의 경험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지역구 1030곳 가운데 중대선거구제가 30곳에서 시범 도입됐지만, 당선자 109명 중 소수 정당 당선자는 4명에 불과했다. ‘소수 정당의 후보 공천과 당선자 비율'이 전국 대비로 보면 높게 나타났지만, 양대 정당으로의 집중은 별로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양당체제를 완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소수 정당은 시범 지역 30개 선거구 가운데 총 18개 선거구에서 19명의 후보(정의당 11, 진보당 7, 우리공화당 1)를 공천했다. 소수정당 후보 공천율로 따져보면 10.1%로 전체 선거구의 5.4%보다 2배 가까이 높긴 했다. 소수정당 후보의 당선비율 역시 시범지역에서 3.7%로 전국평균 0.9%보다 높았다.

하지만 시범지역 30개 선거구에서 당선된 109명 가운데 양대 정당 소속 당선자가 105명으로 압도적(96.3%)이었다. 소수정당 소속 당선자는 4명(3.7%)에 불과했는데 특히 당선자 4명 중 3명이 민주당의 절대 우세 지역인 광주에서 당선돼 '지역쏠림'이 두드러졌다.

따라서 첫째, 선거구당 선출되는 의원수가 최소한 3인 또는 4인 이상이어야 한다. 시범 실시 지역을 포함해 소수정당 후보가 당선된 23곳 가운데 20곳이 3인 이상 선거구였기 때문입니다. 3인 이상 선거구가 소수정당에 유리한 선거환경을 제공한다.

둘째, 복수공천의 제한이 불가피하다. 1928년부터 1996년 소선거구제로 전환할 때까지 중대선거구제를 사용했던 일본에서는 거대 정당의 복수 공천이 문제였다. 복수공천이 같은 당 후보자 사이에 과열경쟁과 파벌정치 그리고 정치권 부정부패 등의 원인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셋째, 표의 등가성 문제 가능성이다. 1위 후보와 그 이하 순위 후보의 득표율은 통상 순위가 하락할수록 격차가 확대되는데, 3~4인 선거구의 경우 이러한 득표율 격차로 인해 유권자 표의 등가성이 훼손될 수 있다. 과거 일본에서 2~6인의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할 때 ‘득표율 15% 룰’을 사용한 이유다. 당선자는 15% 이상의 득표를 얻어야 하고 이 기준선을 넘지 못하면 지역에 배정된 의석을 채우기 위해 재선거를 치르는 방식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양당 독식 체제를 타파하기는커녕 양당의 동반 부패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오히려 의회로 진입한 소수의 극단적 정치세력이 연정을 구실로 큰 정당을 좌지우지하면서 정국을 혼미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이상돈 전 의원의 지적이 공감을 받는 이유다. 그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사람교체가 핵심이다”라고 한다.

넷째, 선거구 획정의 어려움이다. 소선거구 중심의 지난 총선에서도 법정기한인 총선 1년 전이 아니라 선거 한 달가량을 앞둔 3월에야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되었다. 중대선거구제가 되면 선거구당 몇 명으로 할지부터 어떻게 선거구를 묶을 지까지 쟁점이 많다.

선거제도 개편의 정치개혁이 지향하는 것은 ‘대화와 타협의 문제 해결 정치와 과반의 지배를 향한 다원주의의 연합정치’다. 이를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이 비례성과 대표성이 제고된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대통령 결선투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이론적으로는 가장 적합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와 상황으로 어렵다면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개특위가 제시한 4개의 안으로 보면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결합’이다. 물론 20%조차 되지 않는 비례대표의석으로는 의석수와 득표율의 괴리를 좁히는데 한계가 뚜렷하지만 그럼에도 소수정당의 원내진입 가능성은 높인다. 국민적 동의를 전제로 비례대표 의원수를 늘리거나 순차적으로 10%씩 지역구 의원수를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정치개혁을 위한 선거제도 개편, 플랜 B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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