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박’ 이전투구 능가하는 전당대회
‘뺄셈’ 정치에 매달리는 대통령실과 친윤계
대통령만 추종하는 여당, 민심 가교 어려워
정당민주주의와 당정분리 후퇴는 ‘퇴행’

(왼쪽부터) 천하람·김기현·안철수·황교안 후보가 지난 15일 서울 중구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첫번째 TV토론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왼쪽부터) 천하람·김기현·안철수·황교안 후보가 지난 15일 서울 중구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첫번째 TV토론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핵관’이 가니까 ‘대실관’(대통령실 관계자)이 나타났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국민의힘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이다.

안철수 후보가 윤핵관이라는 표현을 쓰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안 후보는 “앞으로는 쓰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이제는 대실관들이 자꾸 언론에 등장하니까 안철수 캠프의 김영우 선대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 "’핵관’이 가니까 이제 '대실관'이라고 하는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나와서 얘기를 하는데 이것은 정상적인 전당대회가 아니다. 자꾸 그런 뉴스가 나오면 전당대회 자체가 망가지게 돼 있다."

김 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고 다시 윤 대통령이 “대실관이라는 말을 쓰면 국정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윤핵관이든 대실관이든 표현이 아니라,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의 전당대회 개입 논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을 자꾸 전당대회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말하지만, 대통령실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인다. 여당 대표의 선출 과정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특정 후보에 대해 비토성 발언을 쏟아낸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는 윤 대통령이 누가 당대표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지를 사실상 드러낸 것이었다. 자신과 일사불란하게 함께 갈 ‘친윤’ 당대표가 반드시 선출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나경원 전 의원의 경선 출마에 대해 친윤계 의원들뿐 아니라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적극 비판한 것은 그러한 윤 대통령의 구상을 흔드는 행위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장관급 자리를 두개씩이나 갖고 있는 사람이 자기 정치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니 윤 대통령은 화가 났을 법하다. 굳이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과 기후환경 대사직에서 해임하는 강경 조치를 취한 것은 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제재였던 셈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나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을 차례로 비판했지만, 그 배경과 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나 전 의원의 경우는 일시적으로 대통령실의 미움을 사긴 했지만, 앞으로의 태도에 따라서는 ‘범친윤’으로 다시 포용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나 전 의원 자체가 권력질서를 거스르면서 ‘비윤’ 혹은 ‘반윤’의 대열에 설 의지를 갖고 있을 정치인이 아니다. 이미 나 전 의원은 김기현 후보의 러브콜을 받아들여 회동을 갖고 “많은 인식을 공유했다”는 말로 사실상의 지지 선언을 했다. 친윤계나 대통령실의 입장에서 나 전 의원과 굳이 영영 갈라설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안 후보의 경우는 많이 달라보인다. 대통령실이 드러낸 안 후보에 대한 거부의 강도는 나 의원에 대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윤 대통령은 “실체도 없는 윤핵관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앞으로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안 후보를 직격했다. 안 후보가 ‘윤안연대’(윤 대통령과 안 후보의 연대)를 내세운 것에 대해서도 “도를 넘었다”고 했다. 얼마나 격분했으면 ‘적’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도를 넘었다'라는 감정 실린 말까지 했을까.

윤 대통령은 안 후보에 대해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나와 밥 한 번 안 먹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내 생각을 잘 아나”라는 비판도 했고, “국민의힘 1호 당원인 내 생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팔고 다니는 것 아닌가”라는 반감을 드러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단일화를 하며 손을 맞잡았던 안 후보에 대한 윤 대통령의 마음은 일반의 예상보다 훨씬 차갑게 돌아서 있었다.

안 후보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불신이 쌓여온 과정은 언론보도들을 통해 최근에서야 어느 정도 알려졌다. 대선 이후 안 후보가 국무총리직 제의, 경기지사 출마 권유, 보건복지부 장관 제안을 다 거부했던데 대해 윤 대통령의 실망이 컸다고 한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자기 정치에만 관심이 가 있다는 불신을 갖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인수위원장 시절의 안 후보가 인사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일정을 보이코트했던 일도 윤 대통령을 자극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는 안 후보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자진사퇴 요구를 하면서 부담을 안겨주는데 대한 반감도 작용했다고 한다. 이런 얘기들의 출처가 윤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는 대통령실 관계자들이니 사실과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윤 대통령이 나 전 의원에 대해 드러냈던 불신은 일시적인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안 후보에 대한 불신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상당히 근본적인 수준의 것으로 판단된다.

그 근본적인 불신의 뿌리는 안 후보의 일차적 관심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 아니라 대권도전이라는 자기 정치에 있다는 의심이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얼마전 김기현 후보 후원회장을 맡고 있던 신평 변호사가 '안철수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이 탈당을 하고 정계개편을 통한 신당창당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릴 것’이라는 얘기를 꺼냈다가 논란이 일자 후원회장직을 사퇴한 일이 있었다. 그때 "안 후보가 당선되면 확실한 미래권력 아니냐. 여소야대에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윤 대통령 입장에선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이라고 신 변호사는 주장했다.

어쩌면 이 지점이 안 후보에 대한 용산의 거부감을 낳은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차기 대권의 꿈을 갖고 있는 ‘안철수 당대표’의 등장은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사이의 갈등을 낳을 위험이 다분하니, 그런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판단을 용산에서는 했을 법하다. 다시 범친윤의 범주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열린 나 전 의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갈등 과정을 거치면서 윤 대통령과 안 후보의 관계는 사실상 파국을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안 후보는 ‘윤핵관’이나 ‘윤안연대’ 표현에 격앙된 윤 대통령을 향해 "거기에 대해서 쓰는 게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셨으면 저는 당연히 거기에 따라야 한다"며 뒤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 대통령과 충돌하는 모습을 피하겠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 대통령이 안 후보를 남은 임기 동안 함께 가야할 사람으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적어 보인다. 국민의힘의 차기 대선후보를 꿈꾸던 안 후보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당내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에게 비토당한 광경은 커다란 타격이다. 만약 그 영향 때문에 이번 경선의 결과가 부진하게 나올 경우, 안 후보의 정치적 앞길에는 먹구름이 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안철수 배제’가 윤 대통령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집권세력에게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있고 없음이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가는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윤 대통령으로서는 덧셈의 정치를 해도 시원하지 않을 판에 굳이 자꾸 누구 누구를 배제하는 뺄셈의 정치를 하는 것이 좋은 일이 될 수 없다.

더구나 내년 22대 총선도 어김없이 중도 표심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니 중도층을 얻기 위한 여야 간의 경쟁이 다시 치열해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친윤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자꾸 선을 긋고 배제하는 모습은 ‘친윤들만의 리그’를 하려는 모습으로 비쳐지기 쉽다. 중도층 표심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은 자신과 어느 정도 다르더라도 껴안을 수 있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이는 것이 미덕이다.

김기현 후보는 안 후보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면서 '색깔론' 공세를 펴기도 했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는 안철수 후보의 과거 발언을 보면 그가 과연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국민의힘 정체성에 맞는 후보인지 근본적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가 문제 삼은 발언의 대부분은 보수정당 집권 시절 안 후보가 야당을 할 때 했던 말들이다. 국민의힘도 안 후보의 그런 정치이력을 알면서 후보단일화도 하고 합당도 했던 것인데, 새삼 이런 얘기까지 찾아서 들추는 지경이 된 것이다. 같은 당이라기보다는 마치 대선에 나온 국민의힘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향해 하는 공격을 방불케 한다.

당심을 얻기 위해 안 후보를 ‘적’으로 내몰려던 김 후보의 입에서는 급기야 ‘탄핵’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김 후보는 한 토론회에 나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뽑히는 대표는 다음 대선에 나가겠다는 꿈을 갖고 있으면 곤란하다”며 “과거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부딪칠 때 당이 깨지고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고 차마 입에 올리고도 싶지 않은 탄핵이라는 사태까지 자초해서 겪었다”고 발언했다.

대선 주자인 안 후보가 당대표가 되는 경우 윤 대통령이 탄핵될 수 있다는 얘기로, 보수정당이 갖고 있는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원들로 하여금 ‘안철수 당대표’가 들어섰을 때의 공포감을 조장하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다.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쯤되면 과거 보수정당에서 있었던 '친이-친박' 간의 진흙탕 싸움을 능가하는 분위기가 된 모습이다. 이렇게까지 할 것이면 뭐하러 서로 후보단일화를 하고 합당까지 했는지 지켜보는 국민들로서는 알 길이 없다.

졸지에 ‘윤석열 탄핵 위험 세력’이 된 안 후보는 “본인이 너무나 조급하고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닌가 한다. 국민들, 당원들께도 정말로 실례되는 말이고 사과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눈길을 끈 것은 김 후보의 탄핵 발언이 나왔을 때 대통령실의 반응이었다. 대통령실은 김 후보의 ‘탄핵’ 발언에 대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며 언급을 피하다가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되자 뒤늦게야 “국정에 열심히 임하고 있는 대통령을 전당대회에 끌어들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친윤 후보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실이 지적한 것은 그나마 처음이긴 했지만, 나 전 의원이나 안 후보에 대해 대통령실이 했던 비판의 수위에 비하면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였다.

그렇다고 김 후보의 탄핵 발언 때문에 수세적 입장이 될 친윤들은 아니었다. 내친김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주장들 설파한다. 친윤계 의원들은 탄핵 발언을 적극 엄호하며 아예 ‘당정일체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동안 정당들의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당정분리 원칙의 폐기를 꺼내든 것이니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이 떠오른다.

‘대표 친윤’이라 할 수 있는 장제원 의원은 "당정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계속 충돌됐을 때 정권에 얼마나 큰 부담이 있었느냐"며 "당정 분리를 처음 도입한 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당정 분리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박근혜 대표의 한나라당, 새누리당과 얼마나 세종시를 둘러싼 충돌이 있었느냐. 그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 지지율이 많이 떨어지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 박 대통령과 또 새누리당과 얼마나 많은 충돌이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그렇게 당정 충돌이 정권의 지지율을 추락시킨 정치사를 환기시켰다.

역시 친윤인 박수영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작했다가 본인도 후회했던 소위 ‘당정분리’”라며 “대표적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과 프랑스는 왜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을까?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당정분리론에 대한 재론을 주장했다.

김기현 후보는 아예 당정일체론을 통해 다른 후보들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김 후보는 제주 합동연설회에서 "성과를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대통령과 손발이 맞아야 될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여당은 대통령하고 당정협의를 하면서 긴밀히 공조하고 협력하는 거 아닌가?, 우리는 대통령과 공조와 협력을 해야 하는 부부관계인 것이지, 서로 따로 떼서 사는, 별거하는 관계가 아니다"라는 것이 김 후보의 당정관이었다.

친윤계에서 당정분리론에 대해서까지 적극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은 일단 안 후보에 대한 견제용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차기 대권에 대한 꿈을 갖고 있는 안 후보가 당 대표가 되었을 때 당정 간의 불협화음이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니, 여당이 그런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단지 전당대회용 발언들만은 아닌 것으로 들린다. 차제에 아예 당정분리론을 사문화시켜 놓는 것이 차기 당 지도부에서 대통령과의 혼연일체 노선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기현 대표 체제가 들어서는데 성공한다면, ‘당정일체 노선은 이미 당원들이 선택한 것’이라는 논리가 당내 이견들을 봉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전당대회 이후 윤 대통령이 당에 개입하는 상황이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대못 박기’ 성격도 갖는 다목적 용도가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전당대회 개입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이 ‘1호 당원’이냐, 어느 규정에 있느냐는 논란을 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은 한 달에 300만원 당비를 내는데 1년이면 3600만원이다. 일반 의원들이 한달에 아마 30만원을 내고 (대통령이 당비를) 10배는 더 내는데 당원으로서 할 말이 없을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당비를 일반 의원들의 10배는 더 내는 대통령이니 아무리 전당대회라 해도 그 정도 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었다.

이 말에서는 전당대회에 출마한 후보들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비판을 한들 뭐 그리 대수냐는 인식이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 더 나아가 당정분리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머리 속에서는 그런 일들은 불가피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정도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중심에는 윤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나서서 나 전 의원이나 안 후보에 대한 비판을 했지만 윤 대통령의 뜻과 다르게 그런 언행을 했을 가능성은 물론 없다. 용산에서 잇따라 나온 전당대회 개입성 발언들은 윤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으로 보면 된다.

여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정당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소극적 인식이다. "대통령도 당 일에 대해 그 정도 발언을 할 수 있다", "당이 대통령과 함께 가야지 다른 말들을 하면 안 된다"라는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발언들을 보면, 이제까지 드러난 윤 대통령의 생각에서는 효율성을 우선하고 정당민주주의 같은 가치는 그 다음 문제로 여기는 생각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여당이 하나로 뭉쳐서 일사불란하게 가는 집권세력의 모습이다. 대통령의 말과 여당의 말이 달라서야 어떻게 국정운영을 제대로 하겠냐는 생각일 것이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 출마한 당대표·최고위원·청년최고위원 후보 홍보물이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복도에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 출마한 당대표·최고위원·청년최고위원 후보 홍보물이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복도에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어떤 대통령인들 그러한 환경을 원하지 않았을까. 여당이 대통령과 다른 소리를 했을 때 야속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던 것은 역대 다른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당은 대통령실에 속한 기구가 아니다. 여당 국회의원들도 각자가 헌법기관들이다.

여당은 물론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야겠지만, 그래도 민심과 대통령 사이에서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책무가 있다. 여당이 깨어 있어야 민심이 무엇인지를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다 귀찮아 하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과거 시대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 회귀하는 위험이 도사리게 된다.

집권세력의 운용에 있어서 민주주의적 가치 보다 효율을 우선하는 윤 대통령의 인식의 근저에는 평생 검사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배었던 '상명하복'의 문화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알다시피 윤 대통령은 오랜 기간 정치에 몸담으면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해본 경험이 없다. 자기 생각과 다른 사안에 대해 불편해도 인내하면서 껴안는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는 의미이다. 대신 위에서 지시하면 아래에서는 집행하는 일사불란한 조직 문화가 몸에 배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의 생각과 다른 말들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굳이 귀를 열고 숙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소통의 시대다. 소통의 시대를 열겠다면서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고 ‘용산시대’를 시작한 것이 윤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용산 집무실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문답)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윤 대통령의 ‘말’로 인한 논란이 잦아드니까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되더라는 판단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제는 대통령의 뜻에만 따르는 여당을 주문하는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모습을 보노라면, 대체 용산으로의 이전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문제는 용산과 친윤 후보들에게서 거리낌 없이 나오는 이런 얘기들이 우리 정치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게 될 위험이 크다는데 있다.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 논쟁거리가 된 대통령의 경선 개입, 당정분리의 문제는 정당민주주의라는 정치사적 흐름 속에서 제도화되었던 사안들이다. 과거 우리 정치사에서 ‘제왕적 총재’가 당의 전권을 갖거나, 대통령이 그런 역할까지 겸했을 때의 정치적 폐해가 있어왔기에 그런 룰들이 도입된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통령은 여당의 총재를 맡았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새천년민주당 총재직을 내려놓으면서 대통령의 당 대표 역할은 역사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친윤들이 주장하는 대로 당정분리 원칙을 내버린다면 대통령이 여당 대표 위에서 지휘하는 ‘제왕적 총재’로 돌아갈 위험이 크다.

그런데 국민의힘 일각에서 윤 대통령을 '명예 당대표'로 추대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점입가경이다. 그렇게 대통령과 여당이 한 몸이 되면 집권세력에게 약이 될까 독이 될까. 물어볼 것도 없이 독이 된다. 다른 의견이 허락되지 않는 곳에서는 건강한 활력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름의 역사성을 갖고 있는 원칙과 제도를 뒤바꾸는 데는 그만한 필요성이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당장 전당대회에서 이기기 위해, 혹은 당장의 통치에 편리하다는 이유로 '조변석개'(朝變夕改) 식으로 뜯어고칠 일은 아니다. 하나 하나가 우리 정치사 속에서 어렵게 만들고 쌓아온 제도들이다.

그렇게 하루 아침에 내다버려도 될 정당민주주의도, 당정분리도 아닌 것이다. 어떤 이유를 든다 해도 정당민주주의의 후퇴는 퇴행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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