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인플레이션 방지와 최대 고용은 현대 중앙은행이 지켜내야 할 핵심 과제다.

2020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후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춘 것도, 지난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이어간 것도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을 늘려온 연준의 움직임도 변곡점이 임박했다. 인플레이션 상승률 하락의 신호가 분명해진 탓이다.

다만 여전히 과거 수준의 2% 물가 목표 시대가 등장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개인이나 중앙은행 모두가 부담해야 과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승률 둔화는 분명한 방향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생산자 물가지수(PPI)는 지난 3월에 전월 대비 0.5%포인트 하락해 3년 만에 최대의 낙폭을 보였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PPI는 2.7% 증가했다. 2월 PP가 전년 동월과 비교해 4.9%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변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도매 물가는 소비자 물가 변화를 예고하는 지표다. 하루 전 발표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역시 충격적인 물가 상승이 지속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0% 상승했다. 지난해 9%에 육박했던 물가 상승률이 어느 정도 고삐가 잡힌 것은 분명하다.

대표적인 예가 계란이다. 지난해 2월 계란값은 전년 같은 달보다 70%나 급등했다. '대란'이라고 불릴 정도로 치솟은 계란값은 휘발유와 중고차를 대신해 지난해 미국 물가 상승의 상징으로 거론될 정도였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영향도 컸지만, 전반적인 물가 상승이 계란값도 끌어올렸다.

계란값 상승에 놀란 정치인들도 나섰다. 진보 진영의 대표 주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계란값 상승 원인이 기업들의 지나친 이윤 추구 때문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 3월 계란값은 전년 동기 대비 36% 상승에 그쳤다. 전달 상승률은 55%였다. 계란값은 여전히 상승 폭이 크지만, 하향 안정세로 접어든 것이다. 웬동 장 코넬대 교수는 "시장의 원리가 작동해 계란값이 하락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가격이 높다 보니 계란 출하량이 늘어나고 가격이 하락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다른 대부분의 상품에도 적용된다. 공급망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기록적인 수준의 가격 상승은 끝나고 하락 요인이 더 많아지고 있다.

물가가 더 하락할지 여부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문제다. 손성원 로욜라 매리마운트대 석좌 교수는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악화했던 글로벌 공급망이 개선되면서 물가가 하락했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손 교수는 미국의 노동 시장이 여전히 호황을 보이며 서비스 가격이 오르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빵 가격에서 밀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5%라는 점을 지적했다. 인건비, 에너지 비용, 임대료 등이 사실상 전체 물가를 좌지우지한다는 의미이다.

물가 상승률 둔화는 경기 하락과 맞물려 연준의 금리 동결, 심지어 인하 가능성에 대한 베팅을 키우고 있다. 그럼 연준은 5%대 물가상승률에도 금리를 동결할 수 있을까.

세계 최대 자산운용 업체 블랙록은 연준이 금리 동결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면서 반대급부로 물가가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분간 코로나19 이전 목표였던 2% 물가상승률을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다. 블랙록은 "이제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물가 상승 요인은 곳곳에 숨어 있다. 인구 고령화, 지정학 갈등,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절감 등이 향후 물가 상승을 유도할 요인으로 꼽힌다. 모두 이른 시일 내에 해소되기 어려운 요인들이다.

유가는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최근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 곡선으로 돌아선 것은 산유국들의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전격적인 감산 결정의 영향이다.

OPEC+는 지난해 10월에도 원유 생산량을 하루 200만 배럴 감산키로 한 데 이어 이달 초 또다시 하루 116만 배럴 추가 감산을 결정했다. 지난달 배럴당 70달러 초반대에서 거래되던 브렌트유가 최근 80달러 후반대로 치솟았다. 이 영향은 4월 이후 물가를 상승시킬 불안 요인이다.

미국 물가의 향방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전 세계의 중앙은행이라 불리는 연준의 금리 결정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사실상 완전 고용인 상황에서 연준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처하며 지난해에만 9차례 금리를 올렸다. 연준은 실리콘밸리은행 도산 사태 속에 지난달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결정하며 금리 동결 가능성을 키웠다. 이제 0.5%포인트 인상을 뜻하는 빅 스텝 인상을 마무리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물론 앞으로도 한차례 정도 금리 인상은 확실해 보인다.

만약 연준이 2% 물가 목표를 지향한다면 미국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 교수는 연준의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쪽에 서 있다. 그는 연준이 이미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더 금리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 연준이 인플레이션의 위협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크루그먼은 연준이 소비자물가에 집착하다가 실업률 상승 없이 인플레이션이 크게 하락하는 ' 완전한 물가하락'(immaculate disinflation)을 놓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진보 성향 크루그먼 교수는 연준이 비둘기파적인 성향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금리 인상과 막대한 부채로 인해 미국 경기가 급랭할 것이라며 연준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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