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한도 상향 협의를 위해 모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의회 지도부.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부채 한도 상향 협의를 위해 모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의회 지도부.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늘어난 미국 정부의 부채 위기가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오는 6월 1일 미국이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지만, 미국 정가는 갈등만 거듭한 채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파국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과연 미국 정치권이 협치를 통해 위기를 돌파해낼지, 아니면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도화선에 불을 댕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 부채 위기는 부채 한도에서 비롯한다. 미국 의회는 연방 정부의 부채 규모를 정한다. 정부의 부실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다. 전 세계에서 미국과 덴마크 두 나라만이 정부의 부채 한도를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 정부의 부채가 지속해서 상승한다는 점이다. 막대한 재정 적자가 이어지면서 부채는 늘어만 간다. 이는 해결하기 어렵지 않다. 부채 한도를 늘리고 국채 발행을 늘리면 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에는 투자자가 몰린다. 달러 기축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 한도를 의회가 승인하다 보니 때만 되면 부채한도 위기가 부상한다. 미국이 스스로 자초하는 위기다.

미국의 부채한도는 이미 1월에 상한을 돌파했다. 지금까지는 재무부의 특별조치를 통해 시급하지 않은 지출을 줄이는 식으로 버텨왔지만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오는 6월 1일이면 디폴트가 발생할 것으로 경고했다. 이는 미국 의회 예산국이 예상한 디폴트 발생 시점 7월~9월보다 앞당겨진 것이다.

이미 한도를 넘어선 지 4개월여가 지났지만, 미국 내 정치권은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부도 시한을 알리는 시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미국 연방 정부가 부채한도에 도달해 디폴트에 빠지면 사회 전체로 파장이 미칠 수밖에 없다.

국채 발행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공무원 급여 지급과 국방비 등에 사용할 길이 차단된다. 은퇴자들을 위한 연금이나 사회보장제도 시행도 불가능해진다. 투자자들도 속이 탈 수밖에 없다. 미국 투자자는 물론 미국 국채를 가진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원리금 상환을 못 받게 된다.

부채한도 증액은 사실상 매년 이뤄져 왔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2021년 12월에도 미국 의회는 기존 한도보다 2조 5000억달러 늘어난 31조 4000억달러로 늘려줬다. 상하원이 모두 민주당에 기울던 때였다.

통상 집권당이 의회 다수당이면 부채한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야당이 의회를 장악했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올해처럼 야당이 의회를 장악한 첫해에 충돌이 더 심해진다. 선명성을 앞세운 야당이 정부의 부채 한도 증액을 호락호락 허락할 리 없다.

대표적인 예가 2011년이다. 하원을 탈환한 공화당은 버락 오바마 정부에 맹공을 가했고 부채한도 협상은 파열음만 냈다. 이는 결국 역사적인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메가톤급 파장을 낳았다.

지난 2011년 상황은 현재의 상황과 공통점이 많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부통령이었다. 의회 권력도 공화당에 무게추가 기운다. 절치부심 끝에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쉽사리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친트럼프 성향의 극우 의원들의 반발 때문에 겨우 하원의장에 오른 케빈 매카시 의장은 바이든 정부에 쉽사리 양보했다는 인식을 꺼린다. 당연히 협상은 파국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

매카시 의장과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의 예산 삭감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미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은 국가 부채 한도를 1년간 1조 5000억달러를 올려주고 정부 지출 삭감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여당 지지표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모처럼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CNN 타운홀 미팅에서 "그들(바이든 행정부)이 대규모 삭감을 하지 않는다면 공화당 의원들이 디폴트를 불사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다음 대선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는 리턴매치 가능성이 큰 바이든을 압박한 것이다.

바이든도 밀릴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정부는 돈을 떼먹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공화당 내 친트럼프 성향의 'MAGA'세력이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역공을 펼쳤다.

바이든 대통령도 공화당의 공세에 발단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대학생 학자금 대출 탕감으로 대표되는 선심성 공약은 공화당의 표적이다. 이런 정책을 뒤집지 않고서는 지출 삭감이 어렵다. 포퓰리즘 공약을 포기하면 진보 성향 지지를 유지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적극적인 지지로 당선한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택하기 어려운 선택지다.

공격 입장인 공화당도 마냥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트럼프 정부 시절 이뤄진 세금 감면이 정부 수입 감소와 부채 증액으로 이어졌다는 게 민주당의 판단이다. 실제로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공화당도 부담이 크다. 바이든 행정부는 시민의 불편과 미국의 신용을 떨어뜨린 공화당에 책임을 전가할 것이 분명하다.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는 결국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의회정치 전문가인 바이든 대통령도 최종 시한까지 협상을 이어갈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정쟁은 최종시한 막판까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채한도 협상은 정치권만의 일이다. 미국 국민들은 정치권의 부채한도 샅바 싸움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지난 2월 입소스 실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5%는 부채한도 협상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했을 정도다.

국민을 볼모로 벌어지는 정쟁에 정작 국민들은 무관심한 상황이다. 오히려 위기감은 금융권과 해외에서 주로 나온다. 미국이 주도한 금리 인상과 이로 인한 경제 침체 우려 속에 미국의 채무 불이행이 발생한다면 전 세계적인 재앙이 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면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모인 G7 재무장관들도 최악의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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