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선거가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자국은 물론 각국의 선거는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외교 노력을 펼치는 상황에서 선거로 동맹국의 정권이 교체되는 것은 극히 민감한 사안이다. 최근 튀르키예와 태국에서 실시된 선거가 세계적인 이목을 끄는 이유다. 선거 결과가 국제적인 '나비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는 가장 관심을 끈 사안이다. 철권통치를 이어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과 공화인민당(CHP)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의 대결은 승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 투표가 실시된다.

일각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과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이례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실상은 선방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49.5%,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는 45%를 득표했다. 3위인 시난 오간 승리당 대표가 5.2%를 차지했다. 튀르키예 대선은 50% 이상 득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후보가 결선 투표를 통해 승자를 확정한다. 결선투표는 오는 28일(현지시간)에 실시된다.

선거 이전만 해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불리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속적인 저금리 정책으로 물가가 치솟은 데다 5만명이 사망한 대지진 참사에 대응한 정부의 대처에 실망하며 악화한 여론이 에르도안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20년간 총리와 대통령으로 튀르키예를 좌지우지해온 에르도안이 마침내 권좌를 내놓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다.

몇몇 여론조사에서는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에르도안 대통령에 근소한 차로 앞서는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런데도 이번 선거에서도 역시 에르도안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 과반을 차지해 선거를 끝내지는 못했기만 기대보다는 선전했음을 알 수 있다. 언론을 장악한 에르도안의 힘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제 관건은 결선투표다. 과반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는 각각 승리를 다짐하며 표 단속에 나섰지만, 결선이라는 변수가 에르도안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1차 투표 2위 후보가 결선에서 과반을 차지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 정부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터키는 유럽과 중동을 잇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집권 중 미국은 물론 서방과 충돌해 왔다. 러시아의 방어 미사일을 도입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에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려 했다. 심지어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도 어깃장을 놓았다.

자국 내에서도 철권통치로 권위주의적 집권을 이어간 데 대한 피로감도 쌓여갔다. 튀르키예 민주주의와 인권은 후퇴해 갔다.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회복을 추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도 에르도안은 눈엣가시였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도 튀르키예 선거 결과에 대해 말을 아꼈다. 바이든은 "누가 이기더라도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전, 에르도안을 독재자라고 지적하고 미국이 터키 야당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던 전력이 무색할 정도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독재자 에르도안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바이든 대통령도 잘 안다. 외교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몇 달간 튀르키예 선거에 대해 말을 아꼈다고 전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의 발언은 미국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그는 "평화롭게 선거를 치른 튀르키예 국민에게 축하를 보낸다. 튀르키예 국민은 스스로 정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에르도안이 집권하더라도 손을 잡을 기회를 놓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에르도안은 선거에서 3위를 차지했던 시난 오간 후보와 만나 지지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미 공영방송 NPR은 에르도안이 결선에서 승리해 사실상 종신집권을 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CNN방송은 기존의 동맹 구조를 무시하고 자신과 튀르키예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에르도안이 승리하면 서방세계 지도자들을 계속 좌절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지난 14일 실시된 태국 총선도 태국 국내뿐 아니라 중국을 차단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었다.

태국 총선에서는 야당이 승리했다. 진보 성향인 전진당이 가장 많은 151석을 차지했고 프아타이당도 140여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현 여당이자 쁘라윳 짠오차 총리 소속 정당인 루엄타이쌍찻당 등 친군부 정당들은 국민들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했다.

하버드 대학 출신의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변화를 주도하며 단번에 변화의 중심에 섰다. 태국 사회의 중심이었던 군주제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한 피타 대표는 군부와 탁신 친나왓 전 총리파가 차지해왔던 태국 정치 지형에 새바람을 몰고 왔다.

피타 대표는 모두를 위한 총리가 되겠다며 자신했지만, 태국 정권의 향방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태국은 하원과 상원이 함께 투표해 정부와 총리를 구성하는데 여전히 상원은 군부를 등에 업은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민간 출신의 민주주의 총리가 탄생할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태국에서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권이 탄생하는 것은 중국을 차단하려는 미국에도 중요하다. 기존 친군부 고수 세력이 민주 세력 성장을 차단하려 하면 미국과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만약 총리가 교체되지 않는다면 보수 세력의 반미 성향을 자극해 오히려 중국과의 밀착을 우려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CNN은 태국에서 보수중심의 정권이 민주주의를 탄압할 경우 미국이 개입하기도 쉽지 않다고 봤다. 자칫 '반미-친중' 정서를 불러와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할 수있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미국은 지금 전 세계 민주주의의 종주국을 자임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정학적 상황이 맞물리면 이런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동맹국에서 독재자가 등장하더라도 오히려 품에 안아야 하는 미국의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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