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 개정 추진에 위헌 논란, 노동계 총파업 등 강한 반발

[주간한국 박철응 기자] "화물연대 집단 운송 거부 사태에 대해 화물연대 면담, 업무 개시 명령 발동 등 법과 원칙에 따른 범정부적 대응을 주도하여 물류 차질 최소화에 기여한 공"

국무조정실은 지난 24일 박진홍 국토교통부 과장에게 '정부업무평가 유공 녹조 근정훈장'을 수여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 대통령 표창을 받은 이창기 고용노동부 사무관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불법 행위 방지 및 회계 투명성 강화 등 노사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지난 5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려던 야간 문화제를 경찰이 강제 해산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지난 5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려던 야간 문화제를 경찰이 강제 해산시키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기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동계와의 대화보다는 '법과 원칙'을 내세운 압박을 치적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절인 지난 1일 일어난 건설 노동자 고(故) 양회동씨의 분신과 이어진 노동계의 집회, 이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으로 더욱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강한 어조로 밀어붙이고 있다. 

尹 "공공질서 무너뜨린 민노총"
이튿날 당정, 집회 제한 논의

윤 대통령은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고 공공 질서를 무너뜨린 민노총(민주노총)의 집회 행태는 국민이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지난 16~17일 서울 도심에서 '양회동 열사 정신 계승'을 내걸고 1박2일의 총파업 집회를 가진 바 있다. 유족에 대한 사과와 건설노조 탄압 중단, 강압 수사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으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박주민 의원, 이정미 정의당 대표, 강성희 진보당 의원 등도 참석했다. 

이후 보수 언론과 여당에서 '술판', '방뇨', '노숙' 등으로 공공 질서를 깨뜨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타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공공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까지 정당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과거 정부가 불법 집회, 시위에 대해서도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한 결과, 확성기 소음, 도로 점거 등 국민이 불편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곧바로 그 다음날인 24일 정부와 여당은 '공공 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 협의회'를 개최했다. 윤재옥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와 한동훈 법무부장관,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이 참석했고, 대통령실의 강승규 시민사회수석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는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가 집회·시위 개최 계획을 신고할 경우 허가하지 않는 방안과 출퇴근 시간대 도심에서 여는 집회·시위도 신고 단계서 제한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다. 또 심야시간인 0시∼오전 6시 시간대 집회 금지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경찰 등의 공권력 행사를 위축시키는 기존 집회·시위 관련 매뉴얼이나 관행도 개선하기로 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정권에서 시위를 진압한 경찰에게 책임을 묻는 등으로 불법 시위를 방관하게 하는 것이 관행이 되면서 경찰은 집회 현장에서 종이호랑이가 되었다. 시위꾼들은 법질서 준수는커녕 1박 2일 노숙 투쟁을 하며 서울을 난장판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또 한동훈 장관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다른 동료 시민들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하는 경우까지 보장돼야 하는 어떤 절대적 권리는 아니지 않으냐"며 "다른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를 중점적으로 봐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남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명백한 위헌적 발상"이라며 "국민과 함께 주69시간 노동개악 시도를 막아냈고, 앞으로도 막을 것이다. 집회의 자유 박탈 기도 역시 반드시 국민의 뜻에 따라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집시법 개정은 못 하더라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정권에 비판하고 대항하는 일체의 모든 행위를 가로막겠다는 퇴행적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면서 "노동자, 시민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반민중, 반헌법 폭압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비정규직 야간문화제 강제 해산
경찰청장 "폭력 없어도 불법 소지"

윤 대통령이 지적한 '경찰권'의 강화 움직임도 보인다. 경찰청은 지난 25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경찰청 및 각 시·도청 경찰 부대 훈련'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3월 이후 6년 2개월만에 경찰의 불법 집회 해산 훈련이 재개되는 것이다.

앞서 지난 19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박대출 정책위 의장은 "물대포(살수차) 없애고 수수방관하는 '물대응'으로는 난장 집회 못 막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은 2015년 고(故) 백남기씨 사망 사건 이후 살수차를 사용치 않고 있다. 

경찰의 강경 대응은 빠른 속도로 현실화됐다.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공동투쟁)이 지난 25일 대법원 앞에서 열려던 야간문화제와 1박2일 노숙 농성에 대해 경찰이 원천봉쇄에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 3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 파견 판결 촉구를 위해 수년간 대법원 앞에서 여러 차례 노숙 농성을 진행했고 경찰과의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찰이 문화제를 내세운 변칙적 집회를 허용치 않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같은 날 전국 경찰 경비대에 보낸 서한문을 통해 기존 집회 대응에 관대하게 대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강경 방침을 밝혔다. 그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불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음과 교통 체증은 경우에 따라 더 큰 상처와 피해를 가져온다"고 했다. 

금속노조와 '공동투쟁'은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이) '오래 전부터 대법원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것 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아니다. 위에서 강경 대응하라고 공문이 내려왔다. 청장 지시도 있고, 대통령 발언도 있고 해서 지난번처럼 조율해서 진행하기 어렵다'며 경찰 스스로도 이 금지 통보가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으며, 오로지 경찰청장과 대통령의 집회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 입장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고(故) 양회동씨 사망과 관련해 "자신의 동료가 시너를 몸에 뿌리고 불을 붙이던 현장에 있던 건설노조 간부가 이를 말리지 않고 한참 동안 바라만 봤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나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적어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분신 당시 건설노조 상급자가 말리거나 불을 끄는 것을 돕지 않았다는 조선일보 보도를 이른 것이다. 

건설노조와 유족, 민주노총 강원건설지부 부지부장 홍모씨는 기사를 작성한 조선일보 자회사 조선NS 소속 최모 기자와 조선일보 사회부장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지난 22일 고소했다. 원 장관에 대해서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건설노조는 "망인의 동료와 가족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야기한 악의적인 기사"라고 비판했다. 

250여개 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은 지난 25일 '양회동 열사 투쟁 공동행동'을 출범시키고 고인의 명예 회복과 유족에 대한 사죄, 건설노동자 노동3권 보장과 건설노조 탄압 중단, 원 장관과 윤 청장 즉각 파면, 조선일보의 사과 촉구 등을 요구했다. '공동행동'은 매주 수요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고, 범국민 서명 운동에도 나선다. 

31일 금속노조, 7월 민주노총 총파업
여당, '노란봉투법' 거부권 요청 방침

민주노총은 '윤석열 퇴진'을 구호로 내걸고 대대적인 대정부 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오는 31일 전국 13개 지역별 거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총력 투쟁 대회'를 열고, 금속노조는 같은 날 노조법 개정, 최저임금 대폭 인상, 노동 개악 중단, 노조 탄압 중단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다음달에는 최저임금 투쟁, 7월에는 민주노총 차원의 대규모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노란봉투법'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 상정에 대해 전해철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노란봉투법'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 상정에 대해 전해철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또 하나의 중대 분수령은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는 지난 24일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의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발해 퇴장한 상황에서 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지난 2월 21일 환노위 전체회의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됐으나 두달 넘게 지연되자 야당이 수적 우위로 직회부에 나선 것이다. 국회법상 법사위가 법안 심사를 60일 내에 마치지 않으면 소관 상임위원장이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 

민주당 소속 전해철 환노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 의견이나 여당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환노위에서 오랜기간 논의를 해온 만큼 이제는 결론을 내리고 입법안을 마련하는 것이 국회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이어 윤 대통령이 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같은 날 관련 브리핑을 갖고 "입법을 재고해 주실 것을 절박한 심정을 담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튿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이 법사위에서 심사 중이었기 때문에 본회의 직회부는 국회법 위반으로 보고 있으며, 이에 권한쟁의심판청구를 검토할 것이다. 만약 노란봉투법이 본회의에 통과된다면 우리 당은 대통령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신중하게 고려해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민주노총은 "수백만명 하청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는 첫 번째 법률개정안이 본회의에 올라가게 되었다. 파견법이 제정된 지 25년만에 처음으로 비정규직의 권리가 향상될 수 있는 법안이 부의된 것"이라고 환영했다.

이 장관이 과거 몸담았던 한국노총도 "여당이 환노위 결과를 수용해 본회의 처리에 협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 정치를 중단하고 입법부를 존중하여 협치와 상생의 정치를 펼치기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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