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차남 헌터 바이든. (사진=AFP 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차남 헌터 바이든. (사진=AFP 연합뉴스 제공)

내년 미국 대선이 사법 이슈로 혼탁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연방 검찰의 기소에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의 기소 사실이 전해지며 사법 이슈가 대선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쏠린다.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외부활동을 늘리고 있다. 바이든은 올해 초 수해 피해를 본 캘리포니아를 찾았고 최근 또다시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는 대선 기간에는 핵심 지지기반인 캘리포니아나 뉴욕주는 방문하지 않는다. 선거 판세를 좌지우지할 스윙스테이트에 집중한다. 그런데 바이든은 올해 벌써 두 번이나 캘리포니아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홍보됐지만, 실상은 IT분야 억만장자 지지자들로부터 선거 자금을 모금하는 것이었다고 LA타임스는 전했다. 내년 선거전을 앞두고 본격적인 몸풀기와 자금 확보가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바이든은 재임 기간 경제 성과를 홍보하기 위한 3주간의 전국 순회 방문 계획도 세웠다. 대통령 본인은 물론 주요 장관들이 약 20개가 넘는 주를 방문한다는 상당한 규모다. 동부, 중부, 서부는 물론 하와이까지 훑는 저인망식 행보다. 급격한 물가와 금리 상승 속에서도 기후변화 투자, 해외 반도체 업체 투자 유치 등을 통한 경제 성과는 바이든의 재선 도전에 가장 큰 무기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바이든에게 고민거리가 생겼다. 아들 리스크다. 가장 아픈 칼날이다. 지난 2020년 대선때도 골치를 앓게 했던 차남 헌터다. 아버지의 후광을 활용한 중국 및 우크라이나와의 이권 개입, 마약과 형수와의 연애 등 각종 추문이 선거 기간 트럼프의 공격 대상이 됐다. 당시 트럼프는 유세 중 “헌터는 어디 있는가”라고 외치며 유권자들을 자극했다.

최근 헌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검사에게 탈세와 불법 총기 소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이른바 형량 합의다. 다음 달 26일에는 델라웨어주 윌밍턴 연방법원에 출두해 형량 합의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게 된다.

헌터가 수감될 가능성은 작지만 그가 인정한 혐의는 유권자, 특히 공화당의 시선에서는 탐탁지 않다. 노동자 계층을 대변한다는 바이든의 아들이 2017년과 2018년 각각 150만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도 연방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 이미 체납된 세금과 벌금을 모두 냈다 하더라고 논란의 여지는 충분하다.

마약도 바이든 캠프를 흔드는 요인이다. 헌터는 2018년 10월 자신이 마약 중독자인 사실을 알고도 불법으로 총기를 소지했다. 이는 총기 소지 관련 법 위반이다. 탈세가 경범죄라면 불법 총기 소지는 중범죄다. 총기 소지를 규제하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과도 어긋난다.

헌터 사건을 보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입장은 확연히 갈린다. 민주당은 헌터의 문제에 대해 외면하려는 반면 공화당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 한다.

AP 통신에 따르면 헌터의 유죄 인정 소식이 전해진 후에도 선출직 민주당 주요 인사들은 다음 대선에 나설 뜻이 없음을 밝혔다. 민주당 잠룡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헌터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민주당 인사들이 고령 등의 이유로 바이든의 재선 출마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지만, 여전히 바이든의 아성을 위협할만한 도전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AP는 헌터 사건이 다음 대선 구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작다고 진단했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헌터 사건으로 입장을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의 설문 조사 결과 '헌터가 특혜를 받은 것'이라는 민주당 성향 응답자는 33%에 그쳤다. 76%가 그렇다고 답한 공화당 성향 응답자와는 큰 차이가 난다. 스테파니 커니 민주당 전략가 역시 헌터의 기소가 미국인들의 관심밖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바이든도 이런 상황을 인식한 듯 “나는 아들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소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헌터 리스크가 해소될 수 있다는 전망도 하고 있다. 혐의 인정으로 사건이 종료되면 대선 기간 중 재판이 열리는 최악의 상황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껏 바이든의 재선 전략에서 중요한 부분은 헌터가 아니었다. 고령 논란 극복이 가장 큰 과제다. 재선 시 퇴임하면 86세다. 지난 2월 AP-NORC 공무 연구 센터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원 3명 중 1명만이 80세가 넘은 바이든의 연임을 지지하기도 했다. 바이든 캠프는 고령 논란 대응이 핵심 과제였지만 헌터를 관리해야 하는 추가 과제를 안게 됐다.

이에 대해 커니 전략가는 “MAGA 세력(공화당 내 극단주의 세력)들은 이번에도 헌터에 집착하겠지만 그들은 바이든의 유권자가 아니다. 우리의 재선 전략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다르다는 것이다.

공화당 인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공화당 유력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가 다음 대선에 영향을 미칠 상황에서 헌터는 놓칠 수 없는 공략 카드다. 하원 공화당 의원들은 헌터와 바이든 대통령의 비즈니스 관계, 법무부와 FBI가 헌터를 보호하려 했는지에 대한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상원의원들은 특별검사도 요구한다.

트럼프에게도 반전을 노릴 기회다. 트럼프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람들은 법무부와 헌터 바이든 사기에 열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대선 경선 참여를 선언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역시 헌터에 대한 비방 대열에 합류했다. 디샌티스는 “헌터가 워싱턴의 엘리트 계층과 연결되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투옥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바이든이 심각한 정치적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인정한다. 어쨌거나 선거전이 끝날 때까지 공화당에 공격받을 여지를 줬기 때문이다. 리스 스미스 민주당 전략가는 내년 대선에서 이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누가 공화당 후보가 되던 개싸움(Dog fight)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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