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한국농구연맹(KBL)이 고양 데이원스포츠(이하 데이원)를 회원사에서 제명했다. 데이원은 지난해 출범 이후 선수단 임금 체불 등 재정적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KBL이 끝내 칼을 빼든 셈이다.

1997년 국내 프로농구 출범 이후 리그 참가 구단에서 제명된 것은 데이원이 처음이다. 이번 퇴출로 2023~2024 프로농구는 9구단 체제로 운영될 위기에 놓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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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원의 불안한 과정, 선수단 임금 체불

데이원은 지난 2021~2022시즌 종료 후 고양 오리온을 인수하고 캐롯손해보험과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했다. 이후 '고양 캐롯 점퍼스'라는 이름으로 KBL에 입성했다.

일각에서는 데이원에 대해 의심하는 시선이 있었다. 네이밍 스폰서를 받는 데이원이 구단 자생력을 갖췄는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이에 대해 허재 데이원 스포츠총괄 대표는 지난해 8월 팀 창단식에서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안다. 지켜봐 주신다면 튼튼한 구단이라는 걸 보여주겠다. 너무 우려 안 하셔도 된다. 걱정을 조금만 덜하셔도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데이원은 지난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가입금 15억원 중 1차분 5억원을 겨우 납부했다. KBL에서 가입금 미납 시 정규리그 참가 불허 방침을 밝히자 데이원은 그제야 5억원을 지불했다.

데이원은 나머지 가입비 10억원을 납부하는 것도 연기했다. 또 모기업 대우조선해양건설의 경영난으로 지난 2월부터 선수단에 대한 월급도 밀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정규리그 종료 직전 캐롯손해보험과 네이밍 스폰서십 계약도 종료됐다.

데이원 선수단은 어려움 속에서도 시즌 막판까지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하며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가입비 미납 사태 속에, 데이원은 6강 플레이오프에 참가할 자격도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KBL이 데이원 측에서 3월말까지 가입비를 완납하지 못한다면, 데이원의 플레이오프 참가를 불허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데이원은 어렵게 가입비를 완납해 ‘봄농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데이원 선수단은 6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4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며 고양팬들에게 '감동의 봄농구'를 선사했다. 하지만 데이원은 끝내 선수단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못했다.

ⓒ스포츠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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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원 결국 제명, ‘9구단 체제’ 위기 성큼

KBL은 지난 16일 서울 논현동 KBL센터에서 이사회와 총회를 열어 고양 데이원을 회원사에서 제명했다. 지난해 출범 이후 줄곧 재정적 문제를 일으킨 데이원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KBL은 10구단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인수 기업을 찾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최근 남자 프로농구단 유치 계획을 밝힌 부산시와 긴밀한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방안도 내세웠다.

새로운 인수 기업을 찾지 못할 경우, 데이원 소속 선수 18명 전원을 대상으로 특별드래프트를 실시할 계획을 밝혔다. 프로농구가 9구단 체제로 돌입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9구단 체제는 많은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구단 1개가 줄어들면, 프로농구의 전체적인 규모도 그만큼 작아진다. 매주 프로농구가 열리는 연고지가 하나 사라질뿐더러, 홀수구단 체제에서 경기 일정을 구성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KBL리그가 고수하던 6강 플레이오프 제도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9개 구단 중 무려 6개 구단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면 정규리그의 가치가 훼손된다. 이로 인해 프로농구의 플레이오프 제도가 바뀌게 될 경우, 프로농구팬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 10구단 체제, 6강 플레이오프를 즐기던 농구팬들이 새로운 플레이오프 제도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9구단 체제로 진입한다면, 아마추어 선수들의 프로 진출 기회도 그만큼 줄어든다. 이는 아마농구계에게 치명적인 결과로 다가올 수 있다. 아마농구계부터 치명상을 입는다면, 프로농구는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게 되고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허재. ⓒ스포츠코리아
허재. ⓒ스포츠코리아

‘농구대통령’ 허재도 퇴출

KBL은 16일 “리그를 훼손하고 팬들을 실망시킨 데이원 경영총괄 박노하, 스포츠총괄 허재 공동대표에게 이번 사태에 상응한 행정적, 법률적 책임을 적극 물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KBL은 향후 허재를 구성원으로 등록해달라는 요청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허재는 KBL리그에서 지도자나 구단 대표, 협회 임원 등을 맡을 수 없게 됐다. 사실상 허재가 프로농구에서 퇴출된 셈이다.

허재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기아자동차의 전성시대를 이끈 ‘농구대통령’이다. 화려한 드리블과 돌파, 정확한 슈팅으로 팀의 해결사 역할을 맡았다. 강동희, 김유택 등과 함께 실업농구에서 기아자동차의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허재는 프로농구 출범 이후에도 맹활약을 펼쳤다.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1997시즌 기아 엔터프라이즈를 챔피언에 올려놓았다. 프로농구 원년우승의 타이틀을 기아에게 안겨줬다. 1997~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선 준우승을 거두고도 MVP를 수상했다. 눈두덩이가 찢어졌음에도 상대 진영을 돌파해 득점을 올리던 허재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허재는 1997~98시즌 후 나래 블루버드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점차 노쇠화를 겪었지만 2002~2003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2003~04시즌 정규리그 우승으로 족적을 남긴 뒤, 은퇴했다.

허재는 감독으로서도 한 획을 그었다. 2005~06시즌 전주 KCC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리빌딩에 성공해 2008~09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2009~10시즌 챔피언결정전 준우승, 2010~11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기록했다. 하승진, 전태풍 등 프로농구에 새로운 스타도 탄생시켰다.

이처럼 허재는 국내 프로농구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현재도 허재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허재의 두 아들 허웅, 허훈 역시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최근 인기 하락으로 위기를 맞은 국내 프로농구를 그나마 지탱하고 있던 것이 허재와 허웅, 허훈 부자의 인기다.

그러나 허재는 이번 사태로 인해 KBL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농구팬들도 그를 신뢰했던 만큼 더 큰 배신감과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프로농구를 지탱하던 대스타가 추락한 것이다.

출범 이후 최초로 리그 참가 구단을 퇴출한 KBL. 데이원 선수들은 임금을 받지 못했고 데이원의 스포츠총괄 대표 허재는 ‘농구대통령’의 명예를 잃었다. 9구단 체제로 돌입할 가능성도 커졌다. 프로농구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스한 위클리 : 스포츠한국은 매주 주말 '스한 위클리'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김희옥 KBL 총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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