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왼쪽)과 추경호 부총리 ⓒ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왼쪽)과 추경호 부총리 ⓒ연합뉴스

지난 7월 6일(현지시간)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을 방문해 “미국은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이는 6월 중순 중국을 방문했던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입장과 동일하다. 올해 여름에만 공식 석상에서 미국의 행정부 고위 인사가 디리스킹을 두 번이나 언급한 것이다. 

디리스킹은 무엇이며, 그리고 세계가 어떠한 흐름으로 가고 있길래 미중 관계에서 이렇게 여러 번 강조되고 있는 것인가?

21세기는 의심의 여지없이 미국과 중국, G2 시대이다. 21세기가 시작할 무렵만 해도 중국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고 중국의 공격적인 팽창이 시작된 2010년대부터 패권 다툼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시작은 2013년 처음 제시된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다. 지정학적 확장을 통해 경제·군사·외교·무역 등 전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정책은 사실상 세계의 흐름을 중국으로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패권을 향한 공격적인 도전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미국은 중국의 정책을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

이에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축소하고 미국의 제조업 재부흥 및 경제력을 회복할 전략을 추진함과 동시에 외교 및 군사적으로도 중국을 압박했다. 

먼저,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외교적 및 군사적 차원에서 중국을 압박하고 포위하기 위해 미국, 일본, 호주, 인도로 이루어진 '쿼드'(Quad) 전략을 도입하였고, 바이든 정부부터는 한국, 뉴질랜드 등을 추가시키는 쿼드 플러스(+) 전략으로 확장하였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위협적인 흐름에 맞서 미국은 ‘디커플링’(탈동조화)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경제제재를 실시했고 이는 작년까지만 해도 세계적으로 유효한 정책인 듯 했다.

실제로 미국은 작년에 ‘반도체법’을 공표하면서 반도체 산업에서의 미국의 역량과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에 반도체 제조시설을 짓는 기업들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이러한 조건으로 안보적으로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들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중국을 견제했다. 

이는 반도체 산업에서 선두경쟁을 펼치고 있는 우리나라와 대만에게 부담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통해서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시키고 나아가 반도체 산업에서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이 가능해지도록 만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미국의 정책에 공감하는 측면이 컸다.

중국은 이러한 미국의 정책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중국이 마이크론의 반도체 수입을 금지하면서 중국의 안보적 측면을 내세운 점을 볼 때, 미국에 반발하는 메시지를 보내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하다. 이러한 미·중 갈등으로 인해 반도체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경제가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오히려 글로벌 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3년 들어 디커플링의 영향력은 누그러지고 ‘디리스킹’(위험제거) 전략이 부상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중국으로부터 디커플링하는 것은 유럽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라며 “디커플링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의존’을 낮춰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여나가겠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즉, 더 이상 디커플링 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디리스킹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5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회의 공동성명서에서도 “중국과 디커플링하지 않고 디리스킹하겠다”라는 내용이 언급되었고 말미에 “우리는 자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라고 덧붙이며 중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맞추어 세계 각국과 주요 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태세를 전환하고 협력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장 올해 중순부터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서방국가 정상들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났다는 점이나 스타벅스, JP 모건, 테슬라 등 유수의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중국을 방문해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이 그 예이다. 

심지어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미국 정부조차 최근에는 중국과 디커플링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공식 석상에서 밝히며 화제가 되었다. 세계의 흐름은 왜 이렇게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으로 전환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경제규모가 매우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중국은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개도국이 아니다. 2021년 기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EU를 이미 따라잡았으며 미국의 80% 수준까지 성장했다. 중국의 경제규모가 커지며 대중무역수지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중국의 경제나 무역상황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면 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은 서방 국가에게도 바로 타격이 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경제 측면에 한해서는 중국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유도하고 돕는 것이 자국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한편, 같은 맥락에서 디리스킹은 결국 ‘탈(脫)중국’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EU 전체를 보면 중국과의 교역량은 비EU 회원국 중에서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독일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는 2022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처럼 많은 서방국가들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중국 경제가 악화되면 연쇄적으로 세계 경제가 어려워진다. 선진국들이 이런 기조에 계속 끌려다닐 수는 없기 때문에 중국과의 무역관계는 원만하게 유지하되, 서서히 중국 이외 국가들과의 교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글로벌 상황은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난 6월, 주한 중국 대사는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라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바 있다. 미국과의 날카로운 신냉전이 누그러지는 추세에 우리나라에게는 중국 특유의 '전랑외교'(늑대전사 외교: 중국 외교관들의 공격적인 외교 스타일을 뜻하는 용어)를 하는 것은 한국을 업신여기는 태도이다. 

그러나 한국 역시 미국, EU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디리스킹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사를 초치하거나 공식 석상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등의 기본적 대응은 필요하지만 굳이 중국을 직접적으로 자극할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디리스킹이나 대중 외교 방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미일 군사동맹이 추진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유지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다면 동아시아에 팽배한 긴장감도 어느 정도는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제1수출국이다. 비록 올해는 중국의 경기침체와 반도체 수입 하락으로 인해 제1위 자리를 미국에게 넘겨주었지만, 여전히 중국의 시장 규모는 거대하고 잠재력이 크다. 따라서 현재의 주요 수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출 품목 구조를 재편성해서라도 중국과의 수출에 손놓아서는 안된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며 이런 국가와 대립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불리하다. 세계경제 규모 2위의 나라와 경제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곧 자충수인 것이다. 

서방 국가들이 말하는 디리스킹이란 이제부터 중국과 친하게 지내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전과 마찬가지로 군사·안보 측면에서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되 경제적으로는 원만하게 지내며 얻을 것을 취하자는 태도에 가깝다.

손자병법에 ‘이우위직(以迂爲直) 이환위리(以患爲利)’라는 말이 있다. ‘다른 길을 찾음으로써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고난을 극복해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라는 뜻이다. 

중국에 대해 미국이 태도를 전환함에 따라 지금 우리나라의 입장이 난처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은 무엇인지, 이 고난을 어떻게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현명하게 극복하는 방법을 궁리해야 할 시기가 왔다. 

이 기회를 이용해 중국에 대한 과도한 무역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동, 남미, 동남아시아 등 국가들에게로 눈길을 돌려보자. 수출대상국 뿐만 아니라 수출품목을 다변화하는 것이 향후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핵심이다.

● 조하현 연세대 교수 프로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 금융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경제가 사회현상 뿐 아니라 정치적 흐름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제의 광범위한 영향력과 다채로운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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