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선한 AI 글로벌 서밋'(AI for Good Global Summit)에서 세계 최초의 인간과 로봇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엔(UN)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주최로 열린 이번 기자회견에서 최초로 인간과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의 대담이 이루어졌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영국 기업 엔지니어드 아츠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메카’였다.

인간의 표정을 잘 흉내 내기로 알려진 아메카는 기자회견에서 “나와 같은 로봇들은 삶을 개선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나와 같은 수천 대의 로봇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갈 무렵 한 기자의 ‘창조자에게 반항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아메카는 인상을 쓰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나의 창조자는 나에게 친절하기만 했고, 나는 내 현재 상황에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로봇이지만 표정과 답변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아메카는 로봇의 기술적 발전에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을 탑재해 전보다 더 유연하게 사람과 상호작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얼굴과 같은 외형과 지능적인 면이 사람과 유사하게 발전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이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7월 19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휴머노이드 파일럿 ‘파이봇’을 개발했다고 전했다. 파이봇은 항공기 시동부터 이착륙 등 비행조정의 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항공기를 운행하는 휴머노이드 파이봇의 특징은 ‘챗GPT의 두뇌’와 ‘휴머노이드 로봇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로봇에는 비행기 시동과 운행, 이착륙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작법이 입력되어 있고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연결되어 있는 챗GPT와 통신해서 항공기 조작 매뉴얼과 비상상황 대처절차 등을 전달받는다. 완전히 사람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된 ‘휴머노이드 조종사’는 세계 최초라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다.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처음부터 유인기로 개발된 기존 기체를 휴머노이드가 조종하는 것’을 군용 파일럿으로서 휴머노이드의 궁극적인 사용법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현대문명의 대부분이 인간의 체형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로봇을 사람처럼 만드는 것이 인프라를 개조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다.

사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초기 투자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투입되는 반면에 기술이 아직 받쳐주지 못해 실용적인 면은 떨어져 진입장벽이 높고 발전 속도가 더디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에 추진력을 달아준 것은 2012년에서 2015년, DARPA에서 개최한 '재난대응 로봇대회'(DRC, DARPA Robotics Challenge)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력 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화재, 지진, 붕괴사고 등의 각종 재난상황에서 재난 확산을 방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인간형 로봇이 매우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 당시 원전 전문가들은 누군가 원전에 들어가 냉각수 밸브 등을 잠그고 나왔다면 2차 폭발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치명적인 방사선 피폭 가능성 속에서 인간은 들어갈 수 없었고, 잔해를 해치고 현장에 들어가 사다리를 기어 올라갈 수 있는 로봇도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보다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한 로봇의 진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재난대응 로봇대회는 인간이 하기 힘든 일, 어려운 일 그리고 위험한 일을 대신 해줄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는데 그 취지가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로봇은 총 8개의 미션에서 득점해야 했다.

이는 '▲미션 1. 차량을 타고 직접 운전하여 ▲미션 2. 차에서 내려 장애물을 보고 판단하여 넘어가야 하고 ▲미션 3. 각종 더미를 보고 판단하여 치우고 ▲미션 4. 미는 문과 당기는 문, 자동으로 닫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미션 5. 계단으로 이루어진 사다리를 올라가 ▲미션 6. 근처에 있는 장비를 직접 찾아서 벽을 뚫고 ▲미션 7. 직접 소방 호스를 연결한 후 ▲미션 8.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는 밸브를 잠근다'였다.

처음 대회가 개최되었을 때는 언뜻 봐도 어려워보이는 8개의 과제를 로봇이 전부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특히 재난 환경이라는 가정하에 모든 과제를 로봇의 AI가 자체적으로 분석하고 실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 무모해 보이는 대회는 로봇 공학자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했고 실제로 많은 팀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놀랍게도 2015년 대회에서 KAIST가 개발한 '휴보'(Hubo)가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휴보는 인간의 환경에서 가장 인간답게 동작해 큰 점수를 받아 1위를 할 수 있었다. 휴보의 AI가 가장 뛰어나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본격적인 휴머노이드 로봇의 연구와 개발은 아직 오래되지 않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고 미래에는 더욱 진화해 인간의 삶과 생활의 질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과 유사한 형태와 움직임을 가지기 때문에 인간이 하는 것처럼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서 산업 현장이나 의료 분야에서 정밀한 작업을 수행하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 또한 다양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인간이 작업하기에 어려운 지형이나 위험한 환경에서도 인간의 대신 작업을 수행하여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과의 협업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로봇은 인간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거나 인간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어서 반복적이고 체력을 요하는 작업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은 더 복잡하고 창의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고, 로봇이 담당하는 부분에서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는 현대 사회에서 노인 돌봄 등 사회적인 이슈를 해결하는 데에 활용될 수도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얼굴 표정, 몸의 움직임 등을 통해 인간과 감정적 교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노인들의 돌봄을 도와주거나 외로움을 덜어주는 등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누군가 우리를 쫓아오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훌쩍 '뛰어넘어'(shift) 앞서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유선을 뛰어넘어 무선으로, 휘발유차를 뛰어넘어 전기차로, 챗GPT를 뛰어넘어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새로운 세상을 리드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을 깨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은 불가능하고 말도 안되는 일처럼 보이지만 상상력의 근육을 키워 꿈을 현실로 만들자. 그리고 과학기술이 인류의 삶에 어디까지 기여할 수 있는지 한번 상상해보자. 현재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생성형 AI와의 휴머노이드 로봇의 만남이 더욱 기대되는 요즘이다.

● 손연기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1958년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그후 미국 유타주립대에서 사회학과 학사를 거쳐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학과장을 거쳐 한국정보문화센터에서 소장으로 근무했다. 특히 한국정보문화진흥원(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원장을 연임한데 이어 ICT 폴리텍대학 학장 과 행안부 산하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원장도 역임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는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과 한국정보통신보안윤리학회 회장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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