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넘어온 ‘故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야당, 특검·청문회 요구

고(故) 채수근 상병 수사와 관련해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고(故) 채수근 상병 수사와 관련해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고(故)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군 조사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폭로가 나온 뒤 파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방부는 박 대령의 항명이라고 일관되게 맞서면서 사안은 ‘진실 게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야권에서는 채 상병 사건 수사의 전말을 놓고 특별검사(특검)와 청문회가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일단 국방부는 채 상병 사망 사고 관련 처리 과정에서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 대령의 사건을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에서 다루기로 했다. 국방부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해 5~20명으로 구성되는 심의위를 설치할 수 있고 사건의 수사 계속 여부와 공소 제기 여부,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항명 혐의로 박 대령 보직 해임한 軍
박 대령 “윗선이 부당하게 개입”

해병대 사건 수사 관련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국방부는 “경찰로 사건을 이첩하는 것을 대기하라”는 지시가 있었으나 박 대령이 이에 불응하고 지난 2일 경찰에 이첩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박 대령은 “경찰 이첩 전까지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시적인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해병대 사령관은 박 대령 등을 ‘집단항명 수괴’(현재 ‘항명’ 혐의로 정정) 혐의로 보직 해임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채 상병 사건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군 내부 잡음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국방부와 박 대령 측이 맞서면서 사안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박 대령 측은 조사 결과에 대한 장관의 결재를 받았고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이 없었기에 항명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박 대령 측은 장관 결재 후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등 윗선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박 대령은 지난 11일 항명 혐의와 관련한 군 검찰 조사를 거부하며 낸 입장문에서 해병대 1사단장 등의 혐의를 축소키 위한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군 검찰 심의위를 요구한 것은 수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당초 논란은 박 대령이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간부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수사 결과를 보고하고, 이 장관이 이를 결재한 지난달 30일 이후 시작됐다. 이 장관 결재 이후 뒤늦게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법리 검토 의견을 냈고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해병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 대령은 이첩 보류를 명시적으로 지시받은 적이 없고, 오히려 유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만 혐의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혐의자·혐의 내용 등을 빼라”는 등의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국방부는 유 법무관리관이 수사단 보고 원문을 읽지 못해 특정인의 혐의를 알 수도 없는 상황으로, 원칙론을 얘기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또 국방부는 사단장이 아닌 하급간부 4명에게도 과실치사를 적용한 점이 문제였다고 언급했다. 이 부분에 대해 박 대령 측은 하급간부들도 안정장구를 확보하지 않고 수중 수색에 관여한 책임이 있다고 봤다. 다만 일각에서는 채 상병의 사망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따져야 하는 과실치사 혐의에 하급간부까지 포함시킨 것은 과하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 대령은 자신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한 유 법무관리관이 신범철 국방부 차관의 문자 메시지를 근거로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면서 “사건 보고서의 내용을 국가안보실에서 보고 싶어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대통령실과의 연관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에 신 차관은 관련 문자를 보낸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고 대통령실도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박 대령 사건에 정치권 공방 가열
민주당, ‘진상규명 TF’도 구성

채 상병의 사망과 관련한 박 대령의 항명 사건에 정치권도 들썩였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국방부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수사 외압 의혹의 진상 규명을 위해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는 진상 은폐를 위해 온갖 이상한 일을 벌이고 진실을 밝히려는 군인의 입을 막으려고 항명 누명도 씌우고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국민 항명죄”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 자체 조사는 이미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며 “특검을 통해 사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고 채 상병 사건은 특검할 사안 자체가 되지 않고 본격적인 수사는 어차피 경찰이 해야 한다”며 “특검은 민주당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국방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병주 의원과 박주민·윤준병·임호선·최강욱 의원 등 국방·법사·행안·운영위원회 소속 의원들로 구성된 ‘해병대원 사망사고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들은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외압 의혹과 경찰에 이첩된 수사 기록을 회수하는 과정에서의 위법성 여부, 수사단장 보직 해임 과정에서의 불법성을 모두 따져본다는 계획이다.

지난 16일 오전에는 9명의 야당 위원의 요구로 국방위 전체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이날 회의는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하던 박 대령이 수사 외압을 받았고 윗선에서 수사 결과를 절차와 규정까지 어기면서 바꾸려고 했다는 의혹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회의는 45분 만에 파행으로 막을 내렸다.

한기호 위원장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향후 국방위 파행, 저질 정치 공세로 인한 채 상병과 유족에 대한 2차 가해 등의 모든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모두 불참했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들이 불참하자 이 장관과 신 차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등도 불참했다.

김병주 의원은 이날 “국민적 의혹이 너무나 큰 사안”이라며 “그래서 민주당 위원들과 정의당 배진교 위원이 다음 주까지 기다릴 수 없어 이번 주에 전체회의를 열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줬고 그래서 전체회의를 열자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이어 “이번 주 금요일(8월 18일)에 해병대에 가서 해병대사령관, 해병대부사령관, 수사단을 면담하려고 방문 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했다”며 “국방부는 뭐가 두렵고 감출 게 많아서 국방위원들이 해병대에 가는 것조차 거부한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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