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러시아의 공세가 주춤하고 전선이 정체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과거 러시아에 빼앗긴 크름반도를 수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드론 공격을 하며 압박하고 있지만, 러시아 역시 물러날 생각이 없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전쟁에 가담했다 반 푸틴 쿠데타를 일으켰던 용병 집단 '바그너 그룹'의 예브게니 프리고진 창립자가 돌연 사망했다. 쿠데타 이후 두 달만이다. 정적을 거침없이 제거해 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사주했을 것이라는 서방 사회의 의심도 더욱 커지고 있다. 프리고진이 사라진 상황에서 앞으로 러시아가 어떻게 이번 전쟁을 이어갈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져간다.

러시아 용병단 바그너그룹 대원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2인자 드미트리 우트킨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러시아 용병단 바그너그룹 대원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2인자 드미트리 우트킨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프리고진이 탄 전용기는 모스크바 북부 트베리 지역에 추락했다. 전용기가 급작스럽게 30초간 추락한 후 폭발하는 장면은 유튜브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자작설, 격추설 등 다양한 추측도 확산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뒤늦게 프리고진의 사망을 인정하면서 상황은 정리됐지만,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은 쉽게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프리고진은 뉴스메이커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그의 등장은 전황을 좌우할 요인으로 파악됐다. 러시아 정부군을 대신해 세계 각국에서 활동해온 바그너 그룹의 전력은 그런 예상을 낳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푸틴을 향해 부대를 진격시켰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프리고진은 쿠데타 실패 후 푸틴의 제거 대상 명단에 오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푸틴과 프리고진이 어색하게 상황을 정리한 배경부터 의문을 자아냈다. 푸틴이 정적을 제거했던 과거에 비춰 볼 때 프리고진 제거는 시기의 문제일 뿐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프리고진의 미래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예상했을 정도다. 바이든의 경고는 한달여 만에 현실이 됐다. 프리고진의 사망에 대한 반응은 자연스럽게 푸틴 배후설로 이어진다. 바이든은 프리고진 사망이 놀랍지 않다고 했다. 아울러 푸틴이 배후에 없는 일은 러시아에서 많지 않다면서 푸틴 배후설에 군불을 땠다. 답을 알지 못한다고 했지만, 푸틴에 대한 공격으로 읽히는 발언이다. 언론들의 시선도 비슷하다. 미국 시사주간 디애틀랜틱은 러시아의 독재자에게 도전한 프리고진이 공개적으로 처형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푸틴은 여전히 느긋하다. 두 달 전 자신에게 저항해 쿠데타를 일으킨 프리고진의 사망에 대해 가족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아울러 당국이 사건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프리고진은 왜 지금, 러시아 영토에서 제거된 것일까. 이는 먼저 푸틴이 러시아 내부에 보내는 경고라는 분석이다. 러시아인, 특히 러시아 엘리트층에 크렘린궁의 주인인 푸틴에게 저항하지 말라는 신호인 셈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 의지와 러시아 공항 등에 대한 공격으로 동요할 수 있는 민심을 차단하려는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리고진이 탑승한 비행기가 2만8000피트 상공에서 추락한 것은 미사일 격추나 내부 폭발 외에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 국방부는 격추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바그너 측은 해당 항공기가 러시아군 방공망에 격추됐다고 주장했다. 내부 폭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대낮에 비행기가 수직으로 추락하고 폭발하는 장면은 전용기를 즐겨 사용하는 러시아 부호들에게도 섬뜩한 경고다. 언제든 다음 차례는 나일 수 있다는 불안감은 푸틴의 철권통치를 확인해 주는 좋은 수단이다.

푸틴이 프리고진을 암살한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추정된다. 프리고진이 사망한 직후 러시아는 '아마겟돈 장군'으로 불리던 세르게이 수로비킨 항공우주군 총사령관의 직위 해제를 발표했다. 수로비킨은 프리고진의 측근으로 반란을 사전에 알고도 묵인했다는 혐의로 구금됐고 프리고진의 사망에 맞춰 해임 사실이 공개됐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데 대한 푸틴의 냉정한 평가이며 향후 군 병력을 재편해 전쟁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고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마침 프리고진 사망 직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에게 빼앗긴 크름반도를 되찾겠다는 야심을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전히 러시아의 점령하에 있는 다른 모든 지역과 마찬가지로, 크름반도를 탈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침공해 크름반도를 차지했다. 푸틴은 크름반도를 차지한 후 자신의 치적으로 강조해 왔다. 향후 갈등이 우크라이나 본토에서 크름반도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젤렌스키가 나서자 미국도 거들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크름반도는 곧 우크라이나이며, 우리는 러시아의 불법 합병 시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의 발표 후 우크라이나군은 크름반도에 상륙하는 특수작전을 수행해 목표를 달성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믿는 구석은 공군력이다. 서방이 지원하는 F-16이 전선에 투입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에 이어 노르웨이가 우크라이나에 F-16을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과 그리스는 F-16 조종사 훈련을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미국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데는 조심스럽다. 모스크바에 6일 연속으로 드론 공격이 이어지자 미국 국무부는 러시아 내부에 대한 공격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나섰다. 우크라이나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공격 주체가 우크라이나라는 추정을 하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 국무부의 입장은 러시아 본토에 대한 공격이 자칫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확전될 것을 우려한 반응이다. 러시아는 서북부 노브고로드주의 솔치2 공군기지에 배치된 장거리 초음속 전략 폭격기 투폴레프(Tu)-22M3이 최근 드론 공격을 받아 파괴되자 나토 회원국인 루마니아와 인접한 우크라이나 서남부 항만을 또 다시 공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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