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선수로 히다 이어 LPBA 평정
온라인 3D게임으로 당구 시작

프로당구 선수 히가시우치 나츠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히가시우치 나츠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히가시우치 나츠미(42·일본) 선수는 대표적인 '친한파'로 불린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한국어, 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4개국에 능통한 재원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하이원리조트 LPBA 챔피언십'에서는 첫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히다 오리에(SK렌터가) 선수에 이어 일본 선수로는 두 번째 우승 기록을 남겼다. 우승 소감을 말할 때 한국어가 빼곡히 적인 메모를 펼쳐 보이며 유창한 한국어를 선보여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LPBA 원년 멤버였던 그에게도 팬데믹 사태는 큰 장애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어렵게 선택한 한국행인 만큼 일본 내 거처를 정리하고 절치부심, 결국 LPBA 정상의 자리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산체스 빌리어드 클럽에서 히가시우치를 만나 그가 걸어온 당구인생의 여정을 들어봤다.

◆ 일본 국적의 프랑스 태생
    온라인 3D게임으로 당구 시작

히가시우치는 일본 국적이지만 나고 자란 곳은 프랑스다. 이로 인해 모국어인 일본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영어에 능통하다. 여기에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한다.

“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살았습니다. 지금도 가족들은 모두 프랑스에서 살고 있어요. 한국어를 처음 접하게 된 건 고등학교 때 한국인 친구 덕분이에요. 그래서 간단한 인사 정도는 할 줄 알았거든요. 그때부터 한국 문화를 접하기도 하면서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가 있었어요.”

도쿄외국어대학에 진학한 히가시우치는 운명처럼 한국어학과를 선택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그가 당구인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로 이어진다.

“대학교 재학 시절 연구실에 가면 재일교포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온라인 당구 게임을 자주 하셨어요. 옆에서 보니 재미있어 보여서 저도 배웠거든요. 그런데 제가 완전 그 게임에 빠져버렸어요. 게임을 즐기다 보니 실제 당구를 쳐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미치게 됐죠.”

온라인에서 3D 게임으로 당구를 즐기던 히가시우치는 한국에 연세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오면서 실전 당구에 도전했다.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당구를 칠 일이 없었을 것이다.

“2005년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오면서 4구를 배웠어요. 그때는 본격적으로 당구를 치기보다 조금씩 즐기는 정도였어요. 1년 정도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당구에 취미를 갖게 됐죠. 그러다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일본은 4구를 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집에서 도보로 10~15분 정도 되는 거리에 당구장이 하나 있었는데 3쿠션 대대만 있었거든요. 당구를 치고 싶은 마음에 그때부터 3쿠션을 배웠어요.”

프로당구 선수 히가시우치 나츠미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히가시우치 나츠미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그렇게 히가시우치는 자연스럽게 당구인의 길로 들어섰다. 꾸준하게 구력을 늘린 그는 당구장에서 만난 선수의 권유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급기야 2012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4회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일궈내 주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3쿠션 선수로 입문한 지 4년에 불과한 구력이었기 때문이다. 구력에 비해 운도 많이 따라줬겠지만 큰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가 우승을 거머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상대 선수는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 준결승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때 정말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가 너무 좋아서 컨디션이 최고조였거든요. 제 스스로 놀랄 정도로 정말 만족스러운 경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 '희망'이 없어 당구 접을까 고민
    한국 프로리그 출범 소식에 도전

세계 3쿠션 대회 우승과 함께 촉망받는 선수로 거듭난 히가시우치는 본격적으로 당구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온전히 당구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당구를 포기하고 은퇴까지 고민하던 히가시우치에게 마침 '낭보'가 들려왔다.  한국에서 2019년 PBA가 출범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당구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 여겨 은퇴를 미루고 원년 멤버로 합류했다. 막연한 '꿈'으로만 여겨졌던 프로당구에 대한 열망이 한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히가시우치는 ‘친한파’로 알려질 만큼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터였다. 유창한 한국어와 함께 한국음식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그렇지만 내성적인 성격의 그에게 한국은 타국이었고 한국행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김종율 김치빌리아드 대표였다. 당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던 히가시우치에게 김 대표는 LPBA 합류를 권유했고 고바야시 료코(39), 하야시 나미코(45)와 함께 한국행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일본 당구 선수들도 한국처럼 당구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저도 당구용품 유통회사에서 일을 병행하면서 선수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가 한국에 프로당구가 출범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당시 당구를 그만둘까 생각했거든요. 그때 김종율 대표님이 적극적으로 한국행을 권장해 주시면서 후원도 해주셨어요. 지금도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많이 도와주시는데 너무 감사해요. 저에게는 가장 큰 은인이죠.”

하지만 LPBA 적응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리그 때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야 했던 그는 국내 선수들에 비해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2주 간 격리 기간을 피할 수 없어 연습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체력 관리도 쉽지 않았다. 컨디션 조절 자체가 어려웠고 이는 성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성적이 나오지 않다 보니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왼쪽 위)2012년도 세계여자선수권 우승때 제일 친한 지인들과 함께. (오른쪽 위)2019년 PBA출범 직후 LPBA 일본 원년 멤버 선수들과 함께. 코바야시 료코/하야시 나미코/히가시우치 나츠미 (아래) 전라남도 봄나들이 여행. 히가시우치 나츠미/박수향 선수 남편/박수향 선수/하야시 나미코 ⓒ히가시우치 나츠미 선수 제공
(왼쪽 위)2012년도 세계여자선수권 우승때 제일 친한 지인들과 함께. (오른쪽 위)2019년 PBA출범 직후 LPBA 일본 원년 멤버 선수들과 함께. 코바야시 료코/하야시 나미코/히가시우치 나츠미 (아래) 전라남도 봄나들이 여행. 히가시우치 나츠미/박수향 선수 남편/박수향 선수/하야시 나미코 ⓒ히가시우치 나츠미 선수 제공

그때 또 다른 도움의 손길이 그를 찾아왔다. 박수향 선수가 거처를 내준 것이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어려움을 겪던 히가시우치는 2021년 11월부터 한국에 둥지를 마련한 뒤 본격적으로 연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박수향 도움으로 한국생활 정착
    부담감 버린 '무심' 타법으로 우승

그동안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던 히가시우치는 한국 생활이 안정된 이후 심기일전을 거듭하며 연습에 매진했다. 인고의 땀을 흘린 만큼 결과도 따라와 2022~2023년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에 열린 2022~2023 시즌 1차 대회 ‘경주 블루원리조트 LPBA 챔피언십’에서 5위를 기록했다. 이어 4차 대회인 10월 ‘휴온스 LPBA 챔피언십’에서 준결승에 올라 3위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오름세를 탔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시즌 5차 대회인 '하이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백민주(크라운해태) 선수를 세트스코어 4대 1로 제압하고 2022년 마지막 대회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우승했을 때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어요. 여러 가지 일이 바쁘다 보니 연습시간도 부족했고 사실 좀 불안했거든요. 그냥 마음을 비우고 경기에 임하다 보니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우승하고 나서 (박)수향 언니가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제가 힘들 때 다방면으로 많이 도와줬거든요.”

히가시우치는 우승으로 가는 길목인 준결승에서 맞붙은 김보미(NH농협카드)와의 시합을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다. 말 그대로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기사회생을 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저에게는 이 경기가 터닝포인트가 된 경기였어요. 준결승전에서 처음에 세트스코어 2대 0으로 지고 있었어요. 3세트에서도 김보미 선수가 10점을 치고 마지막 매치포인트만 남겨둔 상황이었고요. 4점에 그친 저는 사실 그냥 졌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지더라도 최대한 점수를 내자는 생각이었거든요. 조금씩 흐름이 넘어오는 게 느껴지면서 부담감도 없어지고 긴장감도 풀어졌어요. 뭔가 서두르는 마음도 없어지고 차분해지면서 집중력도 높아졌고요. 3세트를 극적으로 역전하고 나자 잘하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정말 저에게는 천운이었다고 생각해요.”

프로당구 선수 히가시우치 나츠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히가시우치 나츠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흐름은 결승까지 이어졌다. ‘무관의 강자’로 불리며 만만치 않은 실력을 소유한 백민주와의 결승에서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준결승전에서 무심(無心)의 경지에 오르자 결승에서도 그 상태가 유지가 됐죠. 제가 약간 멘탈 쪽으로 약하거든요.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성적으로 보답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계속 성적을 내지 못하니까 부담감으로 초조함이 앞서기 일쑤였죠. 그걸 준결승전에서 극복하고 나니까 초조함도 없어지고 그 덕분에 결승전에서도 좋은 밸런스가 유지됐어요.”

◆ "조재호·히다 선수가 롤모델"

히가시우치는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많은 연구를 한다. 특히 한국 선수들 중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선수로 조재호(NH농협카드) 선수를 꼽았다. 일본에서 우연히 조재호의 당구를 보고 그의 당구 스타일을 롤모델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여자 선수 중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히다 오리에 선수를 지목했다.

“한국 선수들을 보면 배울 점이 많은 선수가 많아요. 그 중에서도 조재호 선수의 스타일이 저는 제일 멋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일본에서 무슨 대회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번 오셔서 경기하는 걸 봤거든요. 그때 맨 앞자리에서 스트로크하는 걸 봤는데 정말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인상적이었어요. 여자 선수 중에서는 히다 오리에 선수가 동경의 대상이죠. 어렸을 때부터 꾸준하게 당구를 치던 선수인 만큼 일본 여자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히다 선수를 보며 많이 배웠을 거예요.”

우승 커리어를 쌓은 히가시우치에게 다음 목표는 올해 3월 열리는 월드 챔피언십 우승이다.

“늘 우승이 목표죠. 특히 3월에 열리는 월드 챔피언십에서 꼭 우승하고 싶어요. 지금의 상승세가 그 때까지 계속 이어지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시합 때마다 페이스북이나 개인톡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팬들이 계세요. 그렇게 관심을 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하다는 말 꼭 전하고 싶어요. 물론 TV로 응원해주시는 팬들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성적으로 팬들에게 보답하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양한 표정으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프로당구 선수 히가시우치 나츠미.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다양한 표정으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프로당구 선수 히가시우치 나츠미.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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